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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맛본 구약나물 알줄기
일본에서 맛본 구약나물 알줄기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 생물학
  • 승인 2015.11.02 1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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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141. 곤약
▲ 곤약/출처:볼로그 '쏘쿠베'

일본오사카(大阪)에서 태어나 네 살에 귀환동포로 돌아온 나, 그대로 거기에 주저앉았더라면 재일교포로 살았어야 할 신세였었지. 곤약(崑蒻, 향풀崑 부들蒻)하면 엄마가 생각난다. 그때도 일본사람들이 곤야구(곤약)를 즐겨 먹었던지라 가끔 어머니가 그걸 사먹였던 모양이다.

우리 집사람 곤약요리솜씨가 일품이다. 시장에서 갓 사온, 단단하면서도 흐늘거리는 희끄무레한 묵 같은 곤약덩어리를 긴네모꼴로 조각낸다. 가운데를 세로로 칼집을 내고는 한쪽 끝을 구멍으로 집어넣어 뒤집으니 배꼬인 매자과(타래과)를 닮았다. 거기에다 細片 다시마와 함께 간장·엿기름·땅콩들을 넣어서 바특이 조려 참기름을 붓고 통깨를 뿌려놓으니 정성이 듬뿍 든 맛깔난 조림음식이 된다. 요리에는 조물조물, 주부의 손끝 매운맛이 묻었으면서 숨은 예술성과 과학성이 담겨있는 법.

암튼 필자도 곤약을 일본말로 여겼었고, 집사람은 음식을 하면서도 곤약원료를 잘 몰랐다. 곤약은 구약나물(Amorphophalus konjac)의 땅속줄기(알줄기)를 가루 내어 가공한 것으로 바다풀(海草)인 우뭇가사리로 만든 寒天(agar)처럼 생겼다. 그리고 앞의 구약나물 학명을 보라. 학명의 종소명 konjac에서 ‘곤약’이란 이름이 생겨난 것임을 얼른 알았을 터다!

구약나물은 외떡잎식물, 천남성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아열대성 球根植物이며, 그냥 곤약이라고도 한다. 곤약은 자웅동주로 꽃은 길쭉한 음경을 닮은 것이 길이가 55cm나 된다. 인도차이나(베트남·태국·라오스) 원산인데 그곳에서도 고도 800m나 되는 (평균기온 16℃) 고랭지에 잘 자란다고 한다. 인도차이나·인도네시아·중국·대만·일본 등지에 식용이나 약용으로 많이 재배, 생산하고, 우리나라도 일시적으로 금산 지방에서 인삼 뒷그루(後作)로 재배된 바 있었으나 월동이 되지 않아 이제는 별로 짓지 않는다고 한다.

구약나물의 알줄기(球莖,tuber)는 둥글넓적한 土卵(taro)을 좀 닮았다. 토란처럼 알 가운데에서 나온 잎이 길차게 자라 1m 정도까지 솟는데, 잎자루(葉柄)는 원기둥 모양이고, 연한 녹색에 자줏빛 반점이 수두룩이 난다. 봄에는 긴 꽃자루(花柄)가 나오고, 밑에 2∼3개의 비늘 모양의 넓은 잎이 둘러싸며, 열매는 과육액즙이 많고, 속에 씨가 들었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200여종이나 되는 천남성과 중에서 시체꽃(corpse flower)을 피우는 Amorphophallus titanum라는 식물도 같은 科 아니랄까봐 천남성을 쏙 빼닮을 뿐더러 곤약과 같은 屬(genus)이니 더할 나위 없이 쏙 빼닮았다. 시체꽃은 인도네시아 서부 수마트라의 고유종으로 허우대가 헌걸차서 길이가 3m나 되고, 세상에서 가장 큰 꽃을 피우며, 송장악취를 풍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알줄기를 심은 후 3~4년이면 수확하고, 알줄기 생것을 썰어 말린 후 가루 내어 식용곤약의 원료로 쓴다. 곤약의 주성분은 글루코만난(glucomannan)으로 d-글루코스(d-glucose)와 d-마노스(d-mannose)가 결합한 다당류다.

至味無味라 했던가. 곤약은 특별한 맛은 없으면서도 오독오독 씹히는 식감·질감(texture)이 좋아 즐긴다. 또 영양가가 썩 풍부하지는 않지만 글루코만난 45%, 단백질 9.7% 외에 16가지 아미노산이 7.8%가 들었고, 그 중에서 필수아미노산 7가지가 2.5%이다. 또 여러 종류의 무기물, 소량의 지방이 들어 칼로리는 적지만 食餌纖維(dietary fiber)가 아주 많다.

가루상태의 글루코만난은 물을 흡수해 부피가 늘어나서(澎潤) 풀 같은 교질(colloid)상태가 된다. 이것에 알칼리성인 석회수(limewater)를 넣어 가열하면 응고돼 반투명의 덩어리가 된다. 또 검은 색소나 향미를 넣어 우무묵이나 국수로 만든 것이 식용곤약으로 무침이나 조림에 쓴다.

그리고 글루코만난이 콜레스테롤(cholesterol)을 떨어뜨리고, 부티르산(butyric acid,酪酸)을 생성케해 대장균들의 생태환경을 원활하게 한다. 장운동을 활발케해 배변활동을 도와주기에 변비에 좋다. 또한 열량이 낮으면서 바로 포만감을 느끼게 하기에 비만 예방·체중 감량·당뇨병 식사·덜 먹기에 인기가 있다한다. 그리고 서양에서 한때 어린이용 곤약과자(konjac candy)나 곤약젤리(konjac jelly)가 유행했으나 깨물어도 입에서 쉽게 녹지 않아 아이들을 질식시키는 일이 자주 있어 판매가 금지되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이미 1천500년 전부터 먹어왔고, 미용 및 건강식품으로 엔간히 주목을 받아왔다한다. 한편 중국에서는 오래전부터 漢藥으로 해독·항암·거담·瘀血(몸에 피가 제대로 돌지 못해 한 곳에 맺혀 있는 증세) 등에 썼다고 한다. 또한 국내에서도 건강 및 미용식품으로 수요가 급증하는 추세이고, 특히 요즘 와서 얼굴마사지에 많이 쓰인다고 한다.

아무튼 우리 인간들이 저들 動植物에게 얼마나 많은 신세(빚)를 지고 사는지는 대수롭지 않고 보잘 것 없는 곤약 하나만 봐도 알만하다. 어쨌거나 그래서라도 어머니 지구를 잘 지켜나가야 하겠다. Save the Mother Earth!

그런데 지금도 집사람이 해주는 곤약을 먹을 적마다 ‘엄마, 곤야구 사줘’하고 자꾸 졸랐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어쨌거나 곤약에서 엄마를 만나니 좋다! 헌데 나이를 먹으면 까닭 없이 헛된 눈물이 나고, 엄마 생각에 속절없이 밤잠을 못 이룬다고 한다. 아서라, 잠시 왔다 훌쩍 떠나는 인생인 걸….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 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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