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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에 관한 사유는 ‘욕망’ 처리에 관한 방법론이다”
“道에 관한 사유는 ‘욕망’ 처리에 관한 방법론이다”
  • 교수신문
  • 승인 2015.10.27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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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유가 철학의 욕망 경계와 근대적 분화』 이명수 지음|다른생각|334쪽|20,000원

나는 유가철학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전공의 세분화, 전문화를 위해 중국근현대철학으로 연구의 범위를 확장하면서 ‘욕망’이 유가철학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테제임을 발견하고 마침 한국연구재단의 저술출판 사업의 지원을 받아 연구 성과를 세상에 내놓게 됐다.

이 책은 기존 유가 철학 담론의 패러다임을 벗어나 욕망의 문제를 전면에 부각한다. 인간의 길을 묻는 유가 철학의 ‘道’에 관한 사유는 ‘욕망’ 처리에 관한 방법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단칠정론도 욕망론이었다. 맹자 이후 등장하는 사단과 칠정이라는 도덕 감정에 관한 토론도 몸 차원의 욕망을 넘어 어떻게 인간의 길을 갈 것인가에 관한 고민이었다.

그런데 유가 철학은 시기마다 학파마다 욕망에 대한 접근의 각도를 달리했다. 그 만큼 각 시기에 나타난 담론들마다 욕망의 의미 경계(boundary)와 담론의 목표점으로서 경계(sublimity)가 다양했다. 이 책은 이 같은 점에 매우 유의했고 心, 性, 情, 意로 표현되는 마음, 본성, 감정, 의지와 같이 난해한 용어를 ‘욕망’과 관련해 풀이함으로써 용어의 의미가 어떤 위치에 있고 무슨 뜻인지에 대해, 공자, 맹자 그리고 순자로 대표되는 先秦儒家 철학과 주희와 왕수인, 그리고 그 후학들로 이루어지는 宋明理學의 철학 사유를 통해 밝히고 그 근대적 분화로 나아간다.

 

동아시아적 가치 지향에 관한 성찰

이 책의 방점은 유가철학 욕망 담론의 근현대적 분화에 있다. 유가 욕망론의 근대적 분화는 무엇일까. 그것은 동아시아적 가치 지향·존재 방향·도에 관한 성찰이다. 서구 근대성의 지표인 자본주의·합리적 개인주의 등과 같은 존재 양식을 욕망 국면에서 바라본 것이다. 그것은 전통철학이 합리성에 관여하는 욕망을 비이성으로 여긴 사유에 대한 비판이다. 욕망은 자연적이며 그것이 있어야 이치의 실현이 가능하다는 인식의 전환이었다.

물론 이른바 ‘전근대’에도 이 같은 이치에 대한 자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明代 중기 泰州學派 사상가들은 생활의 ‘일상성’에서 사물의 이치를 찾고, 거기에서 욕망은 불가피한 것으로 인식했다. 명나라 말기의 陽明左派로 불리는 이지(李贄)는 “옷을 꿰매 입고 밥을 먹는 것이 人倫物理다. 옷 꿰매 입고 밥 먹는 것을 빼고 질서나 사물이란 없다.”(『焚書』, 「答鄧石陽)라고 해, 일상의 욕망 속에서 도덕 질서와 사물의 이치를 찾았다. 진확이나 황종희 같은 사람들도 욕망을 터부시하는 입장에 대하여 터무니없다는 생각을 내었다.

이들 전근대 시기 사상가가 개진한 견해를 자본주의의 맹아로 보기도 하는데, 이들의 사상에 담긴 욕망 인식은 근대 전환기의 서구 모더니티 수용과 어우러진다. 대체로 양명학적 소양을 가진 사람들은 주로 중국적이면서 물질적인 메커니즘을 도덕 이치와 따로 떼지 않았다. 그런 방식으로 그들은 反주자학적인 입장을 전개하면서 근대성을 표출했다. 원래 도덕 이성이란 현장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취약한 것인데다, 더욱이 격동기에 그것은 비논리적인 것이고, 개인·국가·민족의 존재 방식이 되기에는 너무나 空論일 수 있다는 인식이 뒤따랐다.

동아시아 근대기로 볼 수 있는 19세기 중엽 이후 시대 상황을 볼 때, 서구는 데카르트와 베이컨으로 대표되는 유럽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을 토대로 근대 이성으로 이미 나아갔다. 진리에 대한 과학적 접근과 자본주의로의 이행을 거쳐, 이제는 남의 땅, 동아시아를 넘보는 제국주의로 변해 있었다. 이때까지도 동아시아는 고리타분하게 ‘도’를 외쳐대면서 그것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진리라는 꿈에서 헤매고 있었다. 제도나 단순한 정책노선에 불과한 ‘도’를 성인이 제정한 이치라고 선전하는 지도층이 만연돼 있었고, 일반인들도 덩달아 이들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 그 중심에 유교적 지식인들이 있었다. 여기서 욕망은 죄악시 되고 사람들의 삶은 비물질적이며 정신적이어야 하는 것처럼 왜곡됐다.

이런 와중에 이른바 서구 충격이 가해지고 세상 물정을 아는 사람들은 근대적 메커니즘, 즉 자본주의적 모더니티를 전개했다. 그 대표적 사상가, 이른바 변법사상가로 강유위·담사동·양계초·엄복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도덕론에서 그렇게 강조하는 의리에 대해 인식의 패러다임을 달리했다. 재물이나 자본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나 욕망을 펼치는 것도 의리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들은 공평하게 추구된다면, 물질적 욕망도 의리이자 도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유가 철학 욕망론의 근대적 분화란 국가적 지도 노선으로 이념화돼 왜곡돼 온 욕망 인식의 전환이기도 하다. 공자·맹자·순자로 대표되는 선진 유가 철학의 견해에서부터 주자학적 세계관에 이르기까지 욕망 토론에서, 사상가들은 도, 즉 이치는 누구나가 공유하면서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사유했다. 사람의 잘못된 욕심에 의해 바람직한 인간의 질서가 가려지지나 않을까 하고 매우 걱정했지만, 이런 고민은 동아시아 문화사에서 정치 도구화됐다. 시간의 변화와 무관하게 백성에 대한 교도 수단이 된 점이 없지 않다.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과정에 도가 이념화 되고 사물을 희구하는 인간의 욕망은 몹쓸 것으로 내몰렸다.

 

모더니티 이성에 대한 고민도 균형 있게 다뤄

그렇지만 근대적 이성의 인식 과정에서 욕망은 이치를 실현하는 역동성, 즉 운동적 요소가 된다. 진정한 유교적 가르침은 욕망을 추구하게 하는 것이고 시대정신에 맞는 것이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 책은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전개됐다.

아울러 이 책은 도덕론의 각도에서 합리성을 찾는 합리주의와 사물의 이치에서 합리성을 찾는 모더니티 이성에 대해 고민하는 사상가들의 면모를 균형 있게 다뤘다. 동아시아 사상적 전통을 볼 때 도덕의 이치 앞에서 욕망이 굴복되는 것이었다면 현대는 천민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와 같은 왜곡된 물질 이성으로서 욕망에 압도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이 책은 욕망의 문제를 다시 되돌아 봤다.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에 걸쳐 있는 인간의 몸과 마음이 바라는 바의 욕망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해 사유하려 했던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부분적으로 宗白華나 馮友蘭 같은 현대사상가의 ‘意境’을 끌어와 오기도 한다. 그런 방법으로 인간의 궁극 지향점을 논함으로써 초현대성의 메타 담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한다.

 

이명수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동양철학

필자는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인문한국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역서로는 『퇴계 이황이 들려주는 敬 이야기』, 『퇴계학 역주 총서』(공역), 『역주 사단칠정논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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