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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간결하게 담아낸 전설적 고전
우주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간결하게 담아낸 전설적 고전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10.26 14: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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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시즌2 고전읽기_ 36강. 오세정 서울대 교수의 ‘스티븐 호킹 『시간의 역사』’

‘문화의 안과 밖’ 시즌2 고전읽기 36강은 5섹션 ‘근대 사상과 과학’의 마지막 편이다. 시즌2 고전읽기는 이제 6섹션 ‘근대·현대 소설’을 남겨두고 있다. 지난 17일(토) 진행된 36강에서는 오세정 서울대 교수가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A Brief History of Time)』(1988)를 집중 독해했다.
오세정 교수는 서울대 물리학과를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학장 및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기초과학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기술의 대융합: 21세기 창조의 원동력은 어디에서 오는가』(공저), 『20년 전 전망과 20년 후 미래 설계』(공저), 『우리는 미래에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 창조 사회의 학문과 대학』(공저), 『과학이 나를 부른다』(공저) 등이 있으며 국내외에 다수의 학술 논문을 발표했다. 제6회 한국과학상(1998)을 수상했다.?
살아있는 석학이자 새로운 우주론의 제안자이기도 한 스티븐 호킹은 1942년에 태어나 2009년까지 영국 케임브리지대 루커스 수학 석좌교수로 재직한 영국의 이론물리학자다. 우주론과 양자 중력 분야에서 탁월한 학문적?인 업적을 남겼는데, 대표적으로 로저 펜로즈와 함께 일반 상대론적 특이점(singularity)에 대한 정리를 증명했으며, 블랙홀이 열복사를 방출한다는 사실(이는 ‘호킹 복사’ 혹은 ‘베켄슈타인-호킹 복사’로 불린다)을 밝혀냈다. 호킹은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과, 미시 세계를 설명하는 현대 물리학인 양자역학을 결합한 최초의 물리학자 중 한 사람이다.
『시간의 역사』는 영국 런던 <더 선데이 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최고 기록인 237주 동안이나 실려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88년에 초판이 발간된 이후로 40개 국어로 1천만 부 이상이 팔려나간 20세기의 전설적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 책은, 스티븐 호킹이 불과 200여 쪽의 적은 분량에 우주와 물질, 시간과 공간의 역사에 대한 방대한 이야기를 간결한 형태로 담아내 일반 대중에게 알기 쉽도록 전달한 우주과학서다. 이날 강연의 주요 내용을 발췌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 빅뱅 이론
우주가 시간에 따른 변화가 없는 靜的인 상태인지 혹은 끝과 시작이 있는 動的인 상태인지는 오래전부터 논의돼 온 철학적, 과학적 문제였다. 물론 20세기 이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적인 우주론을 믿었다. 그런데 20세기 들어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호킹, 펜로즈 같은 우주 이론물리학자들의 연구 결과로 인해 이것이 호킹이 말한 대로 “유한한 과거에 시작됐고 한정된 미래에 끝마칠지도 모를 역동적이고 팽창하는 우주란 개념으로 대치”됐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미국의 천문학자 허블의 실험에 의해 증명되기에 이른다. 허블의 발견이 함축하는 대폭발(빅뱅) 가설은 그 후 1970년 펜로즈와 호킹이 공동으로 발표한 논문에서 “만약 일반 상대성 이론이 타당하고 우주 안에 우리가 관측한 만큼의 물질이 있기만 한다면, 대폭발의 특이점(singularity)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증명함”으로써 확실한 이론적인 근거를 얻게 됐다. 반세기 동안 여러 이론과 실험의 증거가 쌓여 가면서 수천 년 전부터 많은 사람이 믿어 왔던 정적 우주론이 깨어지고 우주가 시간의 시초를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 명확해진 것이다. 하지만 대폭발(빅뱅) 이론이 학자들 사이에 널리 인정되기까지에는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다. 우선 아인슈타인부터 일반 상대성 이론이 동적인 解를 갖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해 일반 상대성 이론식에 인위적인 우주 상수(cosmological constant)를 도입해 정적인 해를 갖도록 한 일이 있다. 그만큼 우주가 정적이라는 것을 확신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후 빅뱅 이론의 신빙성을 결정적으로 높여 주는 두 가지 일이 발생해 결국 빅뱅 이론이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하나는 우주에 있는 수소와 헬륨 양의 비율을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던 일이고, 다른 하나는 우주 배경 복사(cosmic microwave background radiation)의 발견이다.

우주의 대폭발(빅뱅)이 일어난 후 우주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는 그 후 핵물리와 입자물리, 우주론 등의 합동 연구에 의해 많이 밝혀졌다. 특히 은하의 형성 과정과 그 안에 있는 별들의 일생에는 당연히 많은 관심이 집중됐고 많은 연구 결과가 나왔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별들은 빅뱅 후 약 4억 년이 지나고부터 형성되기 시작했으며, 그중 지구가 속한 태양계는 지금으로부터 약 46억 년 전에 탄생한 것으로 보인다. 호킹은 『시간의 역사』에서 빅뱅이 일어난 이후 138억 년 동안 수많은 은하가 탄생했다고 기술했다. 각 은하 내에서는 수많은 별들이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하는데, 만일 별의 질량이 태양보다 아주 작은 경우에는 수소-헬륨의 원자핵 반응이 일어나지 못하므로 강한 빛을 내지 못하고 갈색 왜성(brown dwarf)으로 일생을 마친다. 반면 태양과 비슷한 질량의 별들은 수소-헬륨 원자핵 반응이 가능하므로 내부의 핵융합 반응을 통해 백색 왜성(white dwarf)이 된다. 태양보다 질량이 매우 무거운 경우에는 초신성 폭발 등의 과정을 거쳐 중성자별이나 검은 구멍(블랙홀)으로 일생을 마감한다. 스티븐 호킹은 블랙홀의 성질에 대해 의미 있는 업적을 많이 남겼다.

■ 블랙홀
블랙홀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는 빛에 대한 중력의 효과를 모순 없이 설명하는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이 발표된 후에야 이뤄지게 된다. 하지만 블랙홀은 근본적으로 직접적인 실험 관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중요한 성질들은 주로 이론적인 연구에서 밝혀지고 있다. 그중 하나는 존 휠러가 “블랙홀은 털이 없다.(Black holes have no hair.)”라고 표현해 유명해진 ‘털 없는 정리(no-hair theorem)’다. 이 정리에 의하면 블랙홀의 크기와 형태는 질량과 전하, 그리고 회전 속도(각운동량)에만 의존하지 그 블랙홀을 만들며 붕괴된 물체의 원래 성질과는 전혀 관계없다는 것이다. 이 정리가 맞는다면 중력 붕괴로 블랙홀이 만들어질 때 그 원료 물질에 대한 극히 많은 정보가 모두 상실됨을 의미한다. 고전적인 이론에 의하면 블랙홀 안으로부터는 질량을 가진 입자는 물론 빛도 탈출할 수 없다. 그러나 1974년 스티븐 호킹은 양자역학과 일반 상대성 이론을 결합한 이론으로부터, 블랙홀이 복사를 통해 에너지를 방출하고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증발(evaporate)해 없어진다고 주장했다. 즉 블랙홀의 경계인 사건 지평선(event horizon) 부근에서 일어나는 양자역학적 불확정성 원리(Uncertainty Principle)에 의한 양자 요동(quantum fluctuation) 때문에, 블랙홀에서 (반)입자나 광자가 튀어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블랙홀에 대한 종전의 관점을 완전히 뒤엎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많은 반박과 반발에 부딪혔지만, 결국 그 후의 여러 다른 사람들의 연구에 의해 확인돼 지금은 호킹 복사(Hawking Radiation) 혹은 베켄슈타인-호킹 복사라고 불리게 됐다.

고전적인 ‘털 없는 정리’에 의하면 블랙홀은 질량, 전하, 각 운동량의 성질 외의 다른 특징은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중력 붕괴로 블랙홀이 만들어질 때나 외부의 물질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게 되면 원래 물질이 가지고 있던 많은 정보는 모두 상실될 것이다. 그러나 블랙홀은 호킹 복사에 의해 천천히 증발해 없어질 수 있다. 1983년 호킹은 호킹 복사가 블랙홀을 원래 만들었던 물질에 대한 정보는 가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호킹 복사를 통해 블랙홀이 증발해 없어지면 원래 우주 안에 있던 많은 정보가 영원히 사라진다는 것(정보 손실, Information Loss)을 의미한다. 이 문제에 대한 이론물리학자들 사이의 격론이 있었고, 결국 2004년에 호킹은 입장을 바꿔 블랙홀에서 정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선언했다. 또 하나 현재의 블랙홀 이론에서 이슈가 되는 것은 엔트로피(Entropy) 문제다. 물리학에서 에너지 보존 법칙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법칙 중의 하나라고 인정되는 것이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다. 즉 자연의 모든 현상은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가능한 상태가 많은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블랙홀의 경우 호킹 복사가 이러한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과 일치하는지 여부가 논란이 됐다. 블랙홀의 경우 사건 지평선의 총 넓이가 엔트로피와 비례한다고 생각하면 이 문제는 해결되는 듯이 보이나, 그 경우 엔트로피가 블랙홀의 부피가 아니라 면적에 비례한다는 특이한 성질을 인정해야 한다. 이 점에 대해서도 상당한 논란이 있었고, 이 문제 또한 좀 더 시간이 지나야만 만족스럽게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 시간의 화살 그리고 과학과 우주관
대부분의 물리학 법칙은 시간 대칭성(time symmetry)을 가진다. 다시 말하면 시간을 거꾸로 돌려도 그 방정식은 성립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시간의 화살이 한쪽 방향으로만 흐른다고 느낀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 때문이다. 즉 자연계의 현상은 항상 무질서도(randomness or disorderedness)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주 진화 과정에서의 시간의 방향도 이처럼 인간이 느끼는 시간의 방향과 일치할까. 우리가 현재 이해하고 있는 빅뱅과 우주 팽창 이론은 우주의 시간도 역시 인간의 시간과 같은 방향임을 말해 준다. 왜냐하면 빅뱅 초기의 우주는 아주 매끄럽고 질서 있는 상태라고 생각할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팽창하고, 인플레이션에 의해 미세했던 밀도의 불균일성이 점점 커지면서, 은하, 별과 같은 존재가 형성된 현재와 같은 울퉁불퉁하고 무질서한 상태로 변화한 것이다. 즉 우주의 시간도 열역학적 시간과 같은 방향으로 흘러왔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매우 흥미로운 질문의 하나는 만약 우주가 팽창을 멈추고 수축을 시작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열역학적 시간의 화살이 방향을 바꿔 무질서가 시간에 따라 줄어들까. 질문은 왜 열역학적 시간의 방향이 우주론적 시간의 방향과 같을까 하는 질문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즉 왜 우리가 우주의 수축 단계가 아니라 팽창 단계에 살고 있을까라는 질문인 것이다. 호킹은 이에 대해 ‘약한 인간 원리’를 들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지적 생물이 살아가는 데는 뚜렷한 열역학적 시간의 화살이 필요하다. 인간은 살아가기 위해 식량―질서 있는 형태의 에너지―을 소비해서 이것을 열―무질서한 형태의 에너지―로 변환해야 한다. 그러므로 지적 생물은 우주의 수축 단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이 열역학적 및 우주론적 시간의 화살이 둘 다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까닭을 설명해준다.”(『시간의 역사』, 227~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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