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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한국문학의 자리
프랑스에서 한국문학의 자리
  • 박아르마 건양대·불문학
  • 승인 2015.10.26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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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박아르마 건양대·불문학
▲ 박아르마 건양대·불문학

1990년대 초 프랑스의 대형서점에서 프랑스어로 번역된 한국소설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한 권을 구입한 일이 있다. 프랑스 서점에서 일본이나 중국문학은 서가에서 상당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한국문학의 경우는 지금도 큰 차이는 없지만 소설책 몇 권이 눈 밝은 독자를 기다리고 있는 정도였다. 구입한 책은 프랑스의 악트 쉬드 출판사에서 출간한 이청준의 『이어도』였다. 나는 앙드레 지드 협회 회장을 맡고 있던 논문 지도교수에게 우리나라에도 상당한 수준의 문학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그 책을 선물로 드렸다. 지도교수는 한 학기가 지나서 기회가 되면 제주도에 가보고 싶다는 말로 책에 대한 감상을 대신 전했다.

프랑스에 번역 소개된 한국 문학작품에는 2002년까지 대략 11개 출판사에서 간행된 180여권의 소설과 시가 있었다. 초기에는 이청준, 이문열, 최윤 같은 작가의 비교적 짧은 작품이 소개됐고, 조정래, 박경리, 이승우, 황석영 등으로 작가와 작품수가 대폭 확대됐다. 한국문학은 고전이나 근대 문학보다는 현대문학 중에서도 장편 소설 중심으로 번역되고 있는 추세다. 2000년대 들어와서는 한국문학의 번역과 소개에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고, 그 중심에 한국문학번역원의 역할이 있었다. 과거의 번역 작품이 프랑스의 한국문학 전문출판사와 번역자 개인 간의 계약에 의해 개별적으로 출판됐다면 한국문학번역원의 설립은 ‘번역 지원사업을 통한’ 대규모 번역출판을 가능하게 했다. 번역원 자료에 따르면 2001년에서 2015년까지 프랑스에서 번역된 한국 출판물은 총 98종이고 그 중 소설이 75권으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한국문학의 번역과 소개에 있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던 셈이다.

우리가 영미 문학이나, 프랑스, 러시아 문학을 수용하고 한국문학 발전의 토대로 삼을 수 있었던 것도 수많은 번역작품이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문학 전공자로서 번역을 하고 있는 나도 학술논문을 쓰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번역 작품을 선택해서 읽는다. 말하자면 ‘보편어(영어와 프랑스어)’가 아닌 경우 어느 한 나라의 문학이 알려지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번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극단적으로 말해, 적어도 프랑스에서 한국문학작품은 아무리 많아야 400권이 안 된다는 이야기다.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선택하는 문학전집이나 문고판에 이미 들어가 있어 소개가 아닌 선택을 통해 일반 독자들과 만나고 있는 중국이나 일본문학과는 경쟁 자체가 어려운 형편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번역의 중요성은 간과될 수 없고 한국문학번역원의 역할은 클 수밖에 없다.

지금가지 출간된 75권의 소설을 보면 조정래의 『태백산맥』에서부터 김애란의 『비행운』에 이르기까지 현대의 고전과 최근 출간된 작품이 폭넓게 소개되고 있다. 눈에 띄는 점은 근대 문학과 단편작품이 거의 없고 2000년 이후에 출간된 젊은 작가들이 작품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그것은 프랑스 문학 시장이 장편 소설 중심으로 편성돼 있고 프랑스 출판사 대표의 말처럼 “현대적이며, 느낌이 특별하고 오리지널한 작가, 젊은 세대의 삶을 보여주고, 한국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작품”을 찾다보니 빚어진 현상으로 보인다. 다만 몇몇 작가들의 경우 우리의 ‘문학판’에서도 진지한 논의의 대상이 아닌 작품들이 번역돼 소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요원한 이야기이지만 우리가 외국문학 작품을 찾아내 번역 소개하듯이, 한국어와 한국문학을 잘 아는 외국인 학자 혹은 번역자가 우리문학을 발굴해 번역하는 것도 필요하다. 번역에 있어서도 기획보다는 자발성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반가운 일은 최미경·장 노엘 주떼가 번역한 이승우의 『식물들의 사생활』이 프랑스의 저명한 출판사인 갈리마르의 ‘폴리오’ 문고에 들어갔다는 소식이다. 폴리오 문고에 들어갔다는 말은 작품이 기획이나 소개 차원에서 출간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말하는 ‘보편성’을 지닌 문학으로 일반 대중의 자발적인 선택의 대상이 됐다는 뜻이다. “태평양을 건너온 야자나무가 밤마다 바다를 건너 고향에 다녀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표현되는 작가의 대지적·식물적 상상력을 낯설게 받아들이지 않은 프랑스 독자들에게서 우리문학의 소통 가능성을 찾고 싶다.

지난달 ‘세계한글작가대회’에 참석한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르 클레지오는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한국문학에 대한 자신감과 번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문학이 기획을 통해 독자와 만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작가는 꾸준하게 쓰고 번역가는 좋은 번역을 내놓아야 한다. 저마다 자기 자리를 지키는 일부터 시작하고 볼 일이다.

박아르마 건양대·불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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