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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왜곡의 유불리, 따져나 봤나?
역사왜곡의 유불리, 따져나 봤나?
  • 서용좌 전남대 명예교수·소설가
  • 승인 2015.10.26 13: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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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좌의 그때 그 시절 ⑤ 새옹지마

나는 사람들이 인간사 새옹지마라고 말할 때마다 싫었다. 매사를 결과적으로 유불리로 따져 말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갑자기 내 인생 새옹지마 한 줄기가 떠오른다. 때는 아주 옛날로 거슬러 간다. 

▲ 일러스트 돈기성

제1공화국 시절, 어떤 포병장교의 졸업식에 오는 대통령을 위해 화동들이 동원됐다. 열 명쯤으로 기억에 남은 여중생 아이들이 꼬까옷 한복을 특별히 차려 입고 큰 군용차를 타고 비행장에 도착했다.

학생들이 정부(?) 행사에 동원되는 것은 당연지사였던 시절이었고, 우리들로서도 싫을 턱이 없었다. 교복 아닌 한복을 입고 교정을 탈출하는 일은 거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학교 운동장과는 비교도 안 되게 까마득히 넓은 벌판에 꼬마 인형막대기처럼 박혀있는 것이 군인아저씨들이라 했고, 그 앞쪽으로 안내된 우리들도 인형처럼 서 있었다. 우리들 앞 단상에는 움직이는 인형아저씨 하나가 막대 같은 것을 들고 우쭐대고 있었다. 아, 저 사람이 대통령 아들인가 보다. 우리는 그런 말도 조잘댈 수 없을 만큼 한 사람씩 떨어져 서 있었다. 20분쯤 지나면 헬리콥터가 도착할 예정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이 내가 본 그 거대한 식의 전부였다.

눈을 뜬 것은 친구들이 내 몸을 흔들고 아우성일 때였다. 나는 옷이 다 풀린 채로 차량에 누어있었다. 햇빛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진 나는 군 앰뷸런스에 태워졌지만, 아이 하나쯤에 대한 후속 조처가 내려오지 않은 채로 그 식은 진행됐다. 의무병은 일단 내가 숨을 쉬도록 옷을 풀어 놓았던 것이고, 나는 꽃다발을 건네주고 온 친구들의 울음 섞인 걱정 소리에 깨어났다. 나는 살아났고, 그대로 앰뷸런스에 누운 채 학교로 돌아왔다.

쯧쯧, 대통령에게 꽃다발 줄 기회를 놓치고 쓰러진 아이. 불쌍하다는 동정은 큰 이익을 가져왔다. 나는 졸업할 때까지 대저 운동장에서 면제돼, 체육시간이거나 조회시간에 양호실에서 얼쩡거릴 수 있는 행운을 거머쥔 것이다. 나중에 어른이 돼서는 또 그 일을 훈장처럼 달고 다녔다. 나는 선천적으로 독재자에게 꽃을 바치려 태어난 것이 아니었단 말이지…. 운명적으로 반독재자야!

독재에 대해서 원론적으로 찬성하는 사람은 없다. 자신이 독재자이거나 그 독재의 꿀물로 살아가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그런데 요즈음 나는 독재자의 어떤 행동을 높이 살 수 있다면, 독재라는 판결에도 집행유예 같은 무엇이 있어야 한다고까지 생각하게 됐다. 심지어 내가 그때 꽃다발을 드렸더라면… 하는 심정이 들게끔 그는 엄청나게 중요한 족적을 남겼다는 생각이다.

1948년 8월 15일 이승만 초대대통령은 ‘정부 수립 대통령 기념사’에서 “대한민국 30년 8월15일 대통령 이승만”이라고 끝맺음을 했다. 따라서 그해 9월 1일 발행된 대한민국 관보 1호에도 ‘대한민국 30년 9월 1일’이라고 날짜가 적혔다. 이것들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간단히 헌법정신을 준수했다. 헌법 제3조의 본문은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이다. 영토의 범위가 한반도 전체와 부속도서로 규정된 것은 대한민국이 한반도에 현존하는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간접적인 선언이자, 한반도의 대한제국 정통성을 계승함을 역설한 것이다. 

정부 수립에 임해서 대통령은 대한제국의 정통성을 계승하는 대한민국 건국 시점이 1919년임을 확인했고, 독립운동 30년 역사를 대한민국 안에 품고 출발함으로써 항일독립운동의 정당성과 역사성을 천명한 것이다.

역사 교과서가 국정화된다는 서슬에 땅도 공기도 얼어붙었다. 역사를 전공한 적이 없는 사람도 역사학자들에게 질문 같은 것은 해도 된다면, 최근의 수상쩍은 건국관, 1948년 대한민국 건국설을 주장하려는 역사관의 입장에게 묻고 싶다. 

▲ 서용좌 전남대 명예교수·소설가

첫째, 만일 ‘1948년에 건국’했다면 대한민국은 헌법 3조 영토조항을 한반도 남쪽 절반이라고 개정해야 하는가?

둘째, 한반도 북쪽에서 역시 ‘1948년에 건국’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똑같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인데, 그건 흔히 폄하하는 종북사관은 아닌가? 무엇보다 독립운동 30년은 역사의 허무로 스러지는 것인가? 

유불리에 능한 이 나라 두뇌들이 이렇게 양심 윤리 도덕을 넘어 세계사에서도 불리한 일을 감행하면서까지 얻기를 기대하는 이익, 기껏 새옹지마의 그 이익이 무엇일까. 그것도 국정 역사책으로 대못까지 박아가면서 얻으려는 이익이 뭘까. 낡은 머리로는 심히 궁금하여 ‘짓나니 한숨’이오.

서용좌 전남대 명예교수·소설가
전남대 독일언어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하인리히뵐학회장, 한국독어독문학회부회장 등으로 활동했다. 『도이칠란트·도이치문학』등을 썼다. 퇴임 후 소설집 『반대말·비슷한말』, 장편소설 『표현형』 등을 내고 PEN문학활동상, 광주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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