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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동향 : ‘평화와 발전을 위한 세계 과학의 날’ 학술행사 엿보기
학술동향 : ‘평화와 발전을 위한 세계 과학의 날’ 학술행사 엿보기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2.11.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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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기술에서 과학 문화로
한국과학문화재단(이사장 최영환)이 지난 8월 전국 성인 남녀 1천13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 ‘2002 과학기술국민이해도 조사’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과학은 양가적이라는 결과를 보여줬다. ‘과학기술이 우리 삶을 안락하게 만들고 더 많은 기회를 줄 것에는 동의하지만, 비인간적인 삶을 만들며, 지구를 파괴할 것이다’ 또는 ‘과학자를 신뢰하지만 내 자녀가 과학자가 되는 것은 그리 달갑지 않다’라는 식의 믿음과 불신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과학문화의 정착’이라는 과학계의 과제를 확인시키는 결과였던 셈이다.
그런 까닭에 지난 8일 서울 롯데호텔에서는 한국과학문화재단과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한국위원회(사무총장 김여수)가 공동주최한 제1회 평화와 발전을 위한 세계 과학의 날 행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학문화’와 ‘과학과 언론’, ‘평화와 발전을 위한 과학과 여성’이라는 학계가 당면한 세 가지 주제를 동시에 다뤘기 때문이다.

과학 기술에서 과학 문화로
우선 눈에 띠는 것은 이번 행사의 주제이다. “과학기술이 전쟁이라는 말 대신 평화와 어울리기 위해서는 어떤 전환이 필요한지 고민해야 한다”는 소흥렬 포항공대 교수(철학)의 말처럼 ‘평화와 발전을 위한’이라는 수식어는 과학계가 고민하는 방향성을 보여준다. 남성의 과학에서 여성의 과학으로 전환을 시도하는 노력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과학의 날 기념학술대회의 최대 화두는 단연 과학문화였다. ‘과학’과 ‘문화’라는 낯설지 않은 두 단어의 조합이지만, 심층의 의미는 달라진다. 문화로 분류되지 않았던 것을 문화 속으로 편입하고자하는 적극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정광수 전북대 교수(과학학)와 박준호 과학문화연구센터 연구원, 이문규 전북대 교수(과학학)는 ‘과학문화의 개념과 의의’라는 제목의 발표에서 “과학문화는 과학이 문화라는 자각을 담는 개념”이라고 정의했다. 과학적 지식의 탐구라는 협의의 개념에서 벗어나 합리적인 태도 등의 광의의 개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개념 확장을 의미하는 것이다.
‘과학과 언론’ 심포지엄에서 프랑스의 석학 피에르 파야르 교수는 과학기술은 대중과 소통해야 하며 그 범위는 단순한 정보전달이 아니라 윤리의 문제에까지 확장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김학수 서강대 교수(신문방송학)는 ‘과학문화와 언론의 역할’이라는 발표문에서 “교훈적인 가르침이 방송의 오락프로그램을 통해 전달될 때는 매우 효과적이다”라며 “언론매체와 과학기술 사이의 간접적 연결고리가 될 수 있는 인력 양성”을 강조했다

과학계, 여성 진출 난항 여전
이같은 토론이 진행될 때 다른 한쪽에서는 여성과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모혜정 이화여대 교수(물리학과)는 기조강연에서 “여성들이 과학의 정책결정자나 연구자로 참여한다면, 과학은 공격보다는 평화를, 개발보다는 조화를, 파괴보다는 치유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될 것”이라며 “21세기 과학발전의 모델은 평화, 조화, 치유를 지향하는 과학과 활용에서 찾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같은 기대에도 불구하고 여성과학인력이 토로하는 현실은 각박했다. 최순자 인하대 교수(화공생명공학부)는 ‘여성과학자가 본 과학기술계’라는 발표에서 “여성부 신설, 여성인력 채용목표제 도입 결정 등 현정부처럼 여성인력을 활용해 국가의 경쟁력을 활성화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인 것은 처음이다”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변화의 노력을 높이 산 것.
그러나 윤정로 한국과학기술원 교수(인문사회학부)는 ‘여성의 눈으로 본 과학기술’에서 “정부출연연구소의 여성연구원의 비율이 1995년 5.1%에서 2001년 11.1%로 늘어나 지속적인 증가 추세를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규모가 미미할 뿐 아니라, 전공 분야의 편중, 하급직 및 임시직 집중 등 전통적으로 여성의 과학기술계 진출에 있어 나타나는 구조적인 문제점들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객석에서 튀어나온 말처럼 “왜 여성의 문제를 논의할 때 남성은 참여하지 않는가”하는 문제이다. 과학의 대명제가 평화의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설득력있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이를 구체화할 수 있는 여성-남성 과학자의 화해와 포용이 드문 것은 이번 심포지엄에서 거듭 확인된 문제였다.
임현묵 유네스코 과학팀장은 “여성과학자가 과학 분야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자리를 구상했으나, 현실적으로는 과학계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낮아 현실 개선을 요구하는 자리가 된 것 같다”라며 “앞으로 지속적인 논의가 필요함을 절감했다”라고 전했다.
한편 김여수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이번 행사를 “제약 없이 성장하는 과학을 성찰하고, 과학과 시민의 거리를 좁히는 계기가 됐다”라고 평가했다.

이지영 기자 jiyou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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