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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금속활자와 동반 출토 … “北宋 필승의 도활자보다 앞서 만들어져”
고려금속활자와 동반 출토 … “北宋 필승의 도활자보다 앞서 만들어져”
  • 김대환 문화재평론
  • 승인 2015.10.20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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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환의 文響_ (16) 世界最古의 高麗陶活字

세계 最古의 목판본은 1966년 경주 불국사 석가탑에서 출토된 「無垢淨光大陀羅尼經」(국보 제126호)으로 남북국시대 신라(8세기전반)에서 제작된 것으로, 중국보다는 100여년이나 앞선 것이다. 세계 最古의 금속활자본은 1377년 간행된 「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로 독일 ‘구텐베르그의 금속활자본’보다 훨씬 일찍 제작된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얼마 전 세계 最古의 금속활자인 ‘證道歌字’가 발표돼 우리나라는 ‘세계 最古의 금속활자로 인쇄한 책’과 ‘世界最古의 금속활자’를 모두 보유한 나라가 됐다. 우리민족은 문화수준의 척도가 되는 인쇄부문에 있어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유한 文化民族으로 세계인들의 부러움을 받게 된 것이다.

나무로 만든 목활자는 어떠할까. 일반적으로 1298년 원나라의 왕정이 木活字本인 『旌德縣志』를 편찬했다는 記錄 속의 『정덕현지』와 1302년 티베트계의 西夏國에서 간행된 『華嚴經』이 제일 오래된 木活字本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는 1397년에 태조 이성계의 명으로 발행한 『開國原從功臣錄券』이 現存하는 가장 오래된 목활자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1397년부터 처음으로 木活字本을 인쇄한 것은 아니다. 고려시대에도 목활자본이 있었을 텐데 戰亂으로 많은 문화재가 소실됐을 것이다. 그로인해 임진왜란 이전에 간행된 典籍類는 현존유물이 매우 희귀하게 됐다. 1302년 西夏國에서 목활자본 『화엄경』을 최초로 제작하기도 전에 高麗國은 이미 금속활자본(1234년 詳定古今禮文)을 편찬하고 있었다. 이런 정황으로 미뤄 생각하면 목활자 역시 고려인이 세계최초로 개발하고 사용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금속활자보다 목활자를 먼저 사용했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세계 最古 ‘高麗 木活字本’의 발견도 기대해 볼만하다.

금속활자와 목활자 다음으로 陶活字에 대한 면밀한 연구도 필요하다. 도활자란 점토질의 흙을 잘 반죽해 활자크기로 성형하고 일정시간 그늘에 말려서 글씨를 조각한 후에 도자기를 굽듯이 가마에서 燒成해 만든 활자다. 북송의 심괄이 엮은 책 『夢溪筆談』에 의하면 11세기 초반에 필승이라는 평민이 점토를 빚어 얇은 동전 모양으로 만들어 글자를 새겨서 불에 구워 도활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것이 최초의 도활자라고 하는 근거다. 그러나 이때 만들어진 도활자나 도활자본은 남아있지 않다. 실체는 없고 기록만 있는 셈이다. 이 기록만으로 중국이 최초의 활자를 만들었다고 주장하지만 실체가 없어서 설득력이 약하다.

기록보다는 현존하는 유물의 실체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전공자의 대부분은 실체도 없는 중국의 도활자를 최초로 발명된 활자로 인정해 그것이 활자의 근간을 이루게 됐고 다음으로 고려 금속활자가 북송 도활자 이후의 형식으로 재질만 바꿔서 발명됐다고 생각하는 결론에 봉착하게 된다. 과연 중국에서 도활자를 세계최초의 활자로 창안한 것일까.

우리나라의 도활자는 조선시대인 17세기에 처음으로 제작해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東國厚生新錄』에는 통제사 李載恒이 황해도 해주 병영에서 근무할 때 도자기 만드는 흙으로 도활자를 직접 제작한 것과 도활자의 제작방법 등을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이때 이 도활자를 ‘土鑄字’라고 불렀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때 제작한 활자나 판본은 남아있지 않다.  『승정원일기』의 土活字印刷術에 관한 새로운 기록을 분석한 論文으로 조선시대 도활자의 창안자는 권부(1662~1739)이고 창안 시기는 영조 5년(1729년) 이전으로 해석한 사례도 있다( 박문열, 「한국의 土活字印刷術에 관한 硏究」, <서지학연구>, 2008).

우리나라 도활자본으로 전하는 책은 『三略直解』, 『經史集設』, 『玉纂』, 『東溟先生集』이 있고 모두 조선후기에 간행된 책들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도활자는 모두 조선시대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200여점이 소장돼 있고 상주박물관에 2점, 성암고서박물관과 개인소장 몇 점이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경북 상주의 농가 밭에서 소량 출토되기도 했다.

그동안 우리나라 도활자는 현존하는 유물이나 기록이 모두 조선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당연히 조선후기부터 도활자를 제작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사진 ①’은 필자가 지난 10여년에 걸쳐 40여점의 ‘高麗金屬活字’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함께 확인된 것으로 3점의 ‘高麗陶活字’이다. 현재까지 고려시대 도활자나 도활자본에 관한 기록은 全無하며 유물의 사례도 없었다. 그러나 필자가 조사한 이 고려도활자는 북송의 필승이 최초로 만들었다는 도활자(기록만 있고 유물 실체가 없다)를 넘어서 금속활자처럼 도활자도 고려인이 처음으로 제작했으며 나아가 활자의 創案도 고려인이 했다고 볼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다.

이 고려도활자의 형태는 ‘사진 ②’의 고려금속활자와 같은 모양이며 활자의 뒷면도 금속활자처럼 활자판에 고정시키기 위한 홈이 半球形으로 파여 있다(사진 ③). ‘開’(가로2cm 세로2m 높이1cm 무게6.7g), ‘疆’(가로1.9cm 세로1.9cm 높이1cm 무게6.9g), ‘新’(가로1.8cm 세로1.8cm 높이1cm 무게6.5g)字로 모두 3점이다. 이 도활자들은 고려백자의 胎土처럼 철분을 잘 걸러 내고 높은 온도로 소성해 硬質이다(사진 ④). 도자기에 문양을 새길 때처럼 활자의 모양을 만든 후에 일정시간 건조하고 글자를 조각했다. 글자가 찍히는 활자의 表面은 먹이 스며들지 않도록 미량의 琉璃質이 녹아 있는데 유약을 얇게 시유한 다음에 살짝 닦아낸 것으로 보인다(사진 ⑤). ‘開’자와 ‘疆’자의 활자는 筆劃 사이에 모래흙과 먹(墨)이 뒤엉켜져 있어서 실제로 사용한 것으로 보이고(사진 ⑥), ‘新’자는 깨끗하게 닦아져서 먹의 흔적이 대부분 지워져있지만 미미하게나마 먹의 흔적이 보여 實用한 것으로 보인다. 이 도활자들은 고려금속활자와 동반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며 활자의 필획 사이에 모래와 뒤엉겨서 남아있는 먹(墨)은 방사성탄소연대측정으로 정확한 제작년대의 측정도 가능하다(사진 ⑦ ⑧).    

그동안 활자를 처음 창안한 나라는 중국으로 인식돼 왔다. 북송 『몽계필담』의 실체없는 도활자의 기록때문이었다. 이제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수년전에 발표된 고려금속활자의 방사성 탄소연대측정 결과 1033년~1155년에 제작된 것으로 확인됐다. 함께 출토된 고려도활자의 제작 年代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몽계필담』의 도활자보다 먼저 제작됐을 가능성도 높으며, 무엇보다 ‘사진 ①’의 고려도활자는 실체가 있는 세계 最古의 도활자이며 활자의 창안도 高麗人이 했을 가능성이 확실하다. 이번에 공개한 세계 最古의 ‘고려도활자’는 세계인쇄사의 수정을 필요로 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先祖들이 물려준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라도 잘 보존하고 연구해 그 가치를 제대로 밝혀내지 않는다면, 결코 진정한 우리 것이 될 수 없다. 책상에만 앉아서 다른 사람의 연구논문만 첨삭하며 행동하지 않는 연구자는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를 제대로 밝혀낼 가능성이 없다. 올바른 연구자는 광산에서 광맥을 찾듯이 항상 새로운 연구대상을 찾아 좌충우돌하는 가운데 길이 열리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남권희 경북대 교수가 발표한 ‘證道歌字’의 문화재 지정여부가 아직도 불투명한 상태다. 10여년동안 외롭게 연구한 연구자의 개인적인 성과나 국가적인 차원(國寶, 寶物)을 넘어서 이제는 인류의 문화유산과 직결된 세계적인 문화재로 ‘世界文化遺産의 指定’을 생각할 때다. 그러나 아직도 문화재의 가치를 알지도 못하면서 여러 가지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들어가며 ‘證道歌字’를 가볍게 평가절하 하는 연구자들의 벽에 막혀 국내 文化財指定도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후손의 한사람으로 뼈저린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갈릴레이가 재판정에서 나오면서 한 말처럼 ‘證道歌字’가 國家文化財로 지정되지 않아도 우리 선조가 만든 ‘世界最初의 金屬活字’임에는 변함이 없다.

 김대환 문화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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