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03:35 (토)
시간강사의 눈물
시간강사의 눈물
  • 설한 편집기획위원 / 경남대·정치철학
  • 승인 2015.10.19 13: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딸깍발이] 시간강사의 눈물
▲ 설한 편집기획위원

대한민국의 교수직은 우리 사회에서 직업 만족도와 안정성이 가장 높은 직업 중의 하나로 특권을 누려왔다. 한번 정규직이 되면 65세까지 신분이 보장된다. 많지 않은 강의 시간에 일 년에 넉 달 정도는 가르치지 않고도 월급을 받는다. 급여를 받는 안식년도 있다. 눈치 볼 직속 상사도 없고, 하고 싶은 연구와 강의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사회지도층으로 대접받으며 각종 매체를 통해 높은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런데 이렇게 과분한 대우를 받아온 대학교수 중 교수의 직분에 성실하게 매진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교수라는 직함을 앞세워 교육과 연구보다 바깥일(!)로 더 바쁜 교수가 부지기수다. 전혀 교수답지 못한 자들이 패거리 문화를 형성해 정부, 기업, 정치권 등을 기웃거리며 돈, 권력, 지위를 탐하고 출세를 위해 애쓴다. 교수는 원래 돈과 권력보다는 학문을 탐구하고 명예를 중시 여기는 직업이다. 군사부일체라는 말이 무색해진 오늘날 그래도 선비문화의 전통은 아직 남아 사람들은 교육자를 존중한다. 그러나 청렴강직으로 대변되는 선비의 딸깍발이 정신은 여지없이 퇴락했다.

어디 그뿐인가. 정규 강의도 없고 논문도 쓰지 않는 허울뿐인 교수들이 넘쳐난다. 객원교수, 초빙교수, 특임교수, 석좌교수 등 이름만 화려한 각종 비전임 교원들이다. 고위공무원이나 정치인 출신의 유명인들은 이런 교수 직함을 이용해 신분을 세탁하고 지식인으로 포장한다. 대학은 이들을 학교 홍보와 로비 수단으로 활용한다. 철저한 공생관계에 있는 이들의 거래 속에 공부하고 가르치는 교수 본연의 임무는 실종된 지 오래다.

이런 자들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이는 시간강사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에 종사한다는 점에서는 전임교수와 같은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그 처우는 하늘과 땅 차이다. 이 대학 저 대학을 떠돌아다니며 보따리를 풀어 지식을 파는 시간강사는 최소한 몇 개 이상의 강의를 맡아야 겨우 입에 풀칠을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워킹푸어(working poor)다. 불안정한 지위와 박봉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초단시간 근로자’로 일용 잡급직이나 다름없는 이들에게는 노동권도 보장이 안 되며 노동할 권리도 주어지지 않는다. 철저한 ‘을’ 신세로 대학에 착취당하며 정체성의 혼란 속에 인격적 모멸감까지 받는 것이 시간강사의 현실이다.

시간강사 생활을 거쳤기에 시간강사의 이러한 애환과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많은 전임교수들조차 기회주의적인 속성을 여지없이 드러내면서 시간강사 착취의 공범자가 돼 있다.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약자를 대변한다는 진보적인 교수사회 마저 시간강사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동료 교수들의 과실은 눈감아주나 시간강사 문제에는 침묵하는 전임교수들의 동업자 의식은 그다지 건강해 보이지 않는다.

이 열악한 현실 속에서 대부분의 시간강사들은 정규직 교수의 꿈 하나만으로 자학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정규직 교수 임용은 결코 공정한 게임이 아니다. 실력이나 학문적 성과보다는 연줄이나 정실, 그리고 금력에 의해 교수가 되는 관행이 없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 대학 교수 채용문화의 현 주소다. 과거 어느 때보다 실력과 열정을 갖춘 많은 전문인력이 시간강사로 소모적인 삶을 사는 동안 연구도 하지 않고 이들보다 오히려 전문성이 떨어지는 이들이 대학교수직을 움켜쥔 채 교수 임용에도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다. 그리하여 생활고와 차별대우, 대학비리를 견디다 못해 능력 있는 시간강사들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이 기막힌 현실이 한국대학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시간강사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면서도 합당한 대우는커녕 착취하고 학대하며 절망의 거리로 내모는 현 대학구조 속에서 교육과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질리 만무하며, 고등교육의 질적 성장도 기대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간강사의 삶은 피폐해지고 정규직 교수의 꿈은 환상으로만 남으며 몸과 의식은 점점 더 망신창이가 될 뿐이다. 핵심 이해관계자인 대학과 시간강사 모두가 반대하는 개악 강사법을 왜 시행하려 하는가. 정치권과 교육 당국, 대학은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서라도 이해관계자들의 지혜를 모아 하루빨리 시간강사의 실질적인 신분 보장과 처우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다시 합의 도출해 내야 한다.

바람이 차가워지고 있다. 다가오는 겨울방학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백수 신세로 전락해 또 다시 내일 먹을 밥 걱정으로 고통을 겪어야 하는 시간강사들, 언제까지 그들에게 눈물을 흘리게 할 것인가.

설한 편집기획위원 / 경남대·정치철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