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7 03:50 (수)
위기 속에서도 머리 맞댄 학자들
위기 속에서도 머리 맞댄 학자들
  • 송상용 한림대 명예교수/ 전 국제고려학회 서울지회 &
  • 승인 2015.10.13 15: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술대회 참관기_ 빈에서 다시 만난 남과 북
▲ 코리아의 무형문화재에 대하여’를 주제로 열린 전체세미나. 왼쪽부터 리혜정(북한 사회과학원 원장), 김현(한국학중앙연구원), 공명성(북한 사회과학원), 에드워드 슐츠(하와이주립대 총장), 송남선(오사카경제법과대학).사진제공=홍윤표 교수

제12차 코리아학 국제학술토론회가 지난 8월 20일부터 이틀 동안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렸다. 1990년 오사카에서 출범한 국제고려학회(회장 돈 베이커 브리티시 콜럼비아대·한국사)의 유럽지부와 빈대학 동아시아학연구소(소장 라이너 도르멜) 한국학과가 공동주최한 이 모임은 유럽에서는 런던에 이어 두 번째 열린 학술대회였다.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149명의 코리아학자들은 언어, 역사, 철학·종교, 예술·민속, 사회·교육, 문학, 정치, 과학·기술, 경제 분야에서 117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코리아학 국제학술토론회는 2년 주기로 나라를 오가며 열린다.

한국 62명을 비롯해 일본(24명), 중국(15명), 북한(12명), 미국(11명), 오스트리아(8명), 독일(4명), 네덜란드(2명), 영국(2명), 뉴질랜드(1명), 루마니아(1명), 불가리아(1명), 슬로베니아(1명), 아일랜드(1명), 인도(1명), 칠레(1명), 프랑스(1명) 순으로 규모를 달리해 학자들이 참여해왔다. 해외교포까지 합하면 백여 명의 코리아 학자들이 어울린 학술잔치였다.

주요 참석자에는 강희웅(하와이대·한국사), 정광(고려대·국어학), 에드워드 슐츠(하와이대 총장· 한국사), 송남선 전 회장(오사카경법대·언어학), 김진우(일리노이대·언어학), 홍윤표(전 연세대· 국어학), 황상익 서울지회장(서울대·의학사), 리혜정 조선사회과학원장 등이 있었다.

베이커 회장은 개회사에서 분단을 극복하고 중립화 통일을 이룬 오스트리아에서 배우자고 강조했다. 북한의 발표에는 선군정치가 빠질 수 없었지만 「특수경제지대의 창설과 개발실태」(김철준), 「아리랑의 곡명과 곡수」(공명성 민속학연구소장) 같이 새로운 것도 있었다. 한국 쪽에서는 「남북관계에 대한 집합의식의 변화」(박명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장), 「인문학적 사유와 통일인문학의 패러다임」 (박영균 건국대·철학)이 눈길을 끌었다.

이번 회의에서는 조선왕조실록의 활용 현황을 둘러싼 국사편찬위원회(이순구, 김현영)와 조선사회과학원(송현원, 정웅철)의 토론이 유익했다. 코리아의 무형 (비물질) 문화재에 관한 심포지엄에서 리혜정 조선사회과학원장과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장(김현 한국문화교류센터 소장 대독)의 기조연설과 토론을 통해 남북 협력에 합의하는 성과를 올렸다. 한반도에서 위기가 고조되던 때에 이뤄진 뜻 깊은 결실이었다.

이번 학술대회를 마련한 국제고려학회는 남북관계가 아직 원만하지 못했던 1990년  8월 5일 오사카에서 시작했다. 일본을 비롯한 해외 코리아 학자들이 주도했고 우여곡절 끝에 남북의 학자들이 자리를 같이 했다. 당시로는 대단한 성과였다. 그 뒤 코리아학 국제회의는 중국, 미국, 일본을 돌며 2년마다 열렸다. 1998년 국제고려학회 서울지회에 이어 2000년대에 들어서 평양지회도 결성됐다. 남북에 지회를 둔 유일한 국제학회라 할 수 있다.

2002년 서울에서 열린 코리아학 국제학술토론회에는 총련계 (김철앙, 현원석, 임정혁 등) 학자들이 참가했다. 같은 해 조선대에서 열린 재일본조선인과학기술협회가 주관한 통일과학 심포지엄에는 남북 과학기술자들 50여명이 만나 우리나라 자생식물과 과학기술정보를 주제로 토론했다. 이 모임은 한국 과학기술부와 북한 과학원이 후원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남북과학기술교류위원장이었던 나는 박찬모 포항공대 교수와 함께 초청손님의 자격으로 참관한 바 있다.

2004년에는 평양에서 코리아학 국제학술토론회가 열렸다. 서울에서 백여 명이 논문과 비자 신청서를 보내고 직항 편으로 갈 예정이었지만, 갑자기 초청이 취소됐을 때의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한반도에서 동포끼리 학술적 의제로 만나는 것이 그렇게 어렵단 말인가. 악화된 남북관계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남북관계의 악화로 이  평양 모임은 제3국 학자들만 받아들여 진행했다. 그 해 정신문화연구원(2005년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 명칭이 변경됐다)이 조직한 베이징 대체 학회는 평양측이 보이콧해 반쪽 모임으로 치러졌다.

그러나 이듬해인 2005년 8월 중국 선양(瀋陽)에서 열린 제7차 코리아학 국제학술토론회는 대성황이었다. 서울 식당과 평양 식당을 번갈아 찾으며 남북이 함께 한 압록강 변 고구려 유적 답사는 마냥 즐거웠다. 그러나 2년 뒤 평양에서 만나자던 기약은 큰 수해 피해를 입어 대회 자체가 무산되는 바람에 2007년 8월 런던(제8차 코리아학 국제학술토론회)에서 다시 모일 수밖에 없었다. 규모는 반으로 줄었지만 토론은 진지했고 분위기는 우호적이었다. 심양에서는 북에서 과학자 몇 사람이 와 과학기술분과를 꾸몄고 평양에 줄기세포 전문가를 보내 달라는 부탁도 있었다. 런던에서는 국제고려학회 평양지회 과학기술부 회장을 맡고 있던 유례성 박사(과학원)가 그쪽 활동상황을 보고했다. 그 다음 개최지는 상하이(2009년 제9차), 밴쿠버(2011년 제10차), 광저우(2013년 제11차)였다.

이번 국제고려학회 총회에서는 연재훈 런던대 교수(언어학)를 차기 회장으로 선출한 다음 2년 뒤 국제학술토론회 후보지로 평양과 뉴질랜드(오클런드대)를 차례로 뽑았다.

 송상용 한림대 명예교수/ 전 국제고려학회 서울지회 과학기술분과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