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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未完일 문제작 … 그는 왜 학문과 결별했을까?
영원히 未完일 문제작 … 그는 왜 학문과 결별했을까?
  • 조영일 문학평론가
  • 승인 2015.10.13 14: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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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존재론적, 우편적: 자크 데리다에 대하여』 아즈마 히로키 지음|조영일 옮김|도서출판 b|422쪽|25,000원

이 책은 외견상 학문적인 저작으로 보이지만 내용은 반대다. 프랑스 ‘현대사상에 매혹된 자기 자신’을 분석하고 있는 책이다. “나는 왜 그동안 현대사상에 끌렸던 것일까?” 그리고 갑자기 (데리다에 대한) 학문적 작업을 포기함으로써 책을 끝맺는다. 즉 이 책은 미완으로 끝나고 있다.

 

이번에 출간된 아즈마 히로키(東浩紀, 1971년생)의 처녀작 『존재론적, 우편적』(1998)은 한국의 인문독자들에게 그동안 ‘幻의 書’로 간주돼 왔다. 그것은 가라타니 고진 이후 일본사상계를 대표할 만한 저자의 대표작이라는 평판과 20대 중반의 나이에 그것도 자크 데리다에 대해 쓴 책으로 놀라운 성공을 거뒀다는 출판계의 풍문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그것이 오랫동안 번역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물론 이 말에는 약간의 어폐가 있다.

왜냐하면 이 책의 일부(제1장)는 오래 전 네티즌들에 의해 웹에 공개번역이 됐을 뿐 아니라, 일본에 유학 중인 한 대학원생은 친절하게 그 책을 요약해 올리기도 했다(비록 2장에서 중단됐지만). 따라서 ‘나온다나온다’는 말만 무성할 뿐 출간되지 않았던 이 책의 내용은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다. 사실 이 정도의 관심이라면, 온전한 번역본 출간 후에는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질 법도 하다. 하지만 언론은 물론 네티즌이나 리뷰어들도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침묵을 지키고 있다.

내게 이 책의 번역출간을 수시로 독촉한 한 문학평론가는 이 책이 출간이 되자마자 바로 읽기 시작했는데, 도중에 읽기를 그만뒀다고 한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자신이 막연히 기대하던 책이 아니었다는 것과 둘째는 뜻밖에 강한 집중을 요하는 책이어서 읽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의 이런 소감은 나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이 책에는 대중적 성공과 다소 충돌하는 부분이 존재한다(참고로 이는 아사다 아키라의 『구조와 힘』도 마찬가지다). 사실 일반 독자(어느 정도 훈련된 독자포함)가 읽기에 이 책은 다소 난해한 측면 있다(특히 3, 4장). 그럼 전문독자들이 읽으면 어떨까. 다소 난처해하지 않을까 한다.

아즈마 히로키는 최근 가장 많이 회자된 사상가 중 한 명인데, 주의할 점은 이런 주목이 아카데믹한 것과 거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그는 철학연구자(전공자)라기보다는 서브컬처 비평가 내지 이론가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한국에서의 관심도 주로 이런 측면에서이다. 사실 그는 현재 우리가 참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서브컬처 이론가가 아닐까 한다. 물론 그 이전에도 서브컬처에 주목한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연구대상으로서의 서브컬처였고 연구자 자신도 하이컬처적인(아카데미한) 연구를 한다고 생각했다.

 

교수직 그만두고 출판사 차림 서브컬처 비평가

▲ 아즈마 히로키 사진출처=http://gqjapan.jp/more/business/20120125/azuma

하지만 아즈마 히로키는 달랐다. 어디선가 고백한 것처럼 그는 서브컬처 비평을 하기 위해 잠시 하이컬처에 잠시 몸을 담았을 뿐이다. 실제로 그는 몇 년 전 대학교수를 그만두고 출판사를 차렸다. 출판사를 하다 교수가 되는 경우는 한국에서도 낯설지 않지만, 그 반대는 거의 없지 않을까 한다. 오늘날 이른바 학문(학술)이란 대학을 벗어나면 생존하기 힘든 생물이다. 한국의 경우는 더욱 그러한데, 학문에 대한 지원이라고 했을 때, 그것이 항상 대학에 대한 지원으로 귀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존재론적, 우편적』에 대한 그 동안의 관심은 무엇보다도 학문적인 측면에서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통념에 따르면, 이 책은 그의 유일한 학술저작으로 하이컬처 비평가였던 시절에 쓴 것이다. 실제 이 책은 박사학위 논문으로 제출된 것이기도 하다. 박사학위 논문이 단행본으로 출간되는 것이야 한국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기에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이 책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는 느낌을 준다. 즉 애당초 원고가 연재된 것은 가라타니 고진과 아사다 아키라가 편집하던 <비평공간>이라는 잡지였고, 이를 수정 가필해 단행본화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따라서 후기에서 이 두 사람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지도교수, 심사위원들의 이름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박사학위를 받기가 힘들다, 최근에는 많이 나아졌지만….”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일본의 대학에서 박사학위는 그동안 중요한 것이 아니었고 임용에 필수조건도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최근에는 바뀌었다고 하지만, 현재 50대 연령의 교수 중에도 박사학위가 없는 사람이 꽤 된다. 얼마 전 가라타니 선생이 방한했을 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일본에서 박사학위란 원래 ‘외국인용’이었다는 것이다(그 자신도 석사가 최종학위다). 그런데 유학생들이 귀국 후 취직 때문에 박사학위에 강한 집착을 보였고, 그것이 일본 대학의 분위기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정작 일본인들은 박사학위 취득을 세속적 행위의 전형이라 해 경멸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말이다.

 

현대사상에 대한 탐색 또는 학문과의 결별기

그러나 한국의 대학은 굳이 없어도 되는 사람들에게도 학위를 따도록 압박을 가했다. 예컨대 이어령은 뒤늦게 단국대에서 박사를 받았고(1987) 유종호도 마찬가지다(서강대, 1991). 그리고 김윤식, 조동일의 자부심은 각자의 분야에서 新制 박사학위 제1호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예술분야를 제외하고 교수 대부분이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아마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심지어 학위가 없으면 시간강의조차 하기 힘든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학위집착과 학문발전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앞으로 한번 따져볼 문제가 아닐까 한다.  

이 책은 적어도 외견상 학문적인 저작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내용은 실은 정반대다. 앞서 전문독자가 이 책을 읽으면 난처해 할 것이라고 말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이 책은 20세기 후반을 풍미한 프랑스철학 중심의 현대사상, 그 중에서도 데리다의 철학을 “그는 왜 이런 난해한 글을 썼는가?”라는 물음 하에서 분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런 ‘현대사상(철학)에 매혹된 자기 자신’을 분석하고 있다. “나는 왜 그동안 현대사상에 끌렸던 것일까?” 그리고 갑자기 (데리다에 대한) 학문적 작업을 포기함으로써 책을 끝맺는다. 즉 이 책은 미완으로 끝나고 있는데, 아마 영원히 미완일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저자가 하이컬처를 하다 서브컬처로 전향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정말 그에게 ‘전향’ 같은 것이 존재했다고 한다면, 이 책은 바로 그런 방향전환을 위한 ‘전향서’로서 읽혀야 한다. 즉 학문(아카데믹한 학술작업)에 대한 비판이자 그에 대한 결벌서로 읽을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책을 읽을 때 계속 염두에 둬야 할 질문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그는 왜 학문과 결별한 것일까?”

 
조영일 문학평론가

필자는 서강대 국문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저서로는 『가라타니 고진과 한국문학』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근대문학의 종언』, 『네이션과 미학』, 『세계사의 구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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