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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과학 홀대하면서 ‘受賞’바라는 우리 안의 이중성
기초과학 홀대하면서 ‘受賞’바라는 우리 안의 이중성
  • 김재호 학술객원기자
  • 승인 2015.10.13 14: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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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읽는 과학本色 120. 2015 노벨상
▲ ‘노벨상’ 잔치는 끝났지만 씁쓸하다. 교육풍토와 연구문화 개선만이 수상의 지름길이다. 사진출처= http://www.nobelprize.org

올해 노벨상 잔치가 끝났다. 2015년 노벨 과학상 수상자는 다음과 같다. △생리·의학상에 회충 기생충 감염에 대한 새로운 치료법을 선보인 C. 캠벨(William C. Campbell), 오무라 사토시(Satoshi ?mura) 그리고 새로운 말라리아 치료법을 선보인 투유유(Youyou Tu) △물리학상에 중성미자가 질량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중성미자 진동을 발견한 카지타 타카아키(Takaaki Kajita), 아서 B. 맥도날드(Arthur B. McDonald) △화학상에 DNA복구 메커니즘을 연구한 토마스 린달(Tomas Lindahl), 폴 모드리치(Paul Modrich), 아지즈 산자르(Aziz Sancar)다.

이번 발표에 대해 국내 네티즌들은 우리나라 연구문화에 대해 쓴소리를 내뱉었다. 한 네티즌은 “꿈을 키워야 하는 학생들은 대학가기 급급하고 연구자가 돼도 돈은 없고”라고 성토했다. 다른 네티즌은 “한국은 돈 되는 것에 매달리고, 일본은 미개척 분야를 연구한다”고 지적했다. 과학자로 성장하지 못하는 교육풍토와 과학자가 되더라도 돈과 연구를 연결시켜야 하는 우리의 실정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의견이다.

 

개인의 노력과 유연한 관계망이 필요한 연구세계

노벨 과학상은 갖고 싶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상도, 국가가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다고 당장 탈 수 있는 상도, 과학자 자신이 재능 있고 성실하다고 꼭 수상의 영예를 얻을 수 있는 상도 아니다. 과학이나 다른 연구세계는 국제무대에서 일어나는 엄격한 경쟁 사회 중 하나다. 물리·생물·화학 같은 기초과학은 연구에 오랜 기간이 걸리고 성과가 잘 나오지 않으며 실패할 위험이 크다. 연구자는 충실하고 참을성 있게 연구에 매진하고 결과를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수상자 투유유는 자신의 연구가 300여 차례 시도한 끝에 성공을 거둔 열매라고 밝혔다. 수상자 오무라 사토시는 본질적인 연구를 추구해야 하며 다른 사람을 따라 한다면 결코 그들을 능가할 수 없다고 했다.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많은 일본을 보면, 도쿄대와 교토대 인재가 지방대학으로 이동해 앎의 거점을 전국 각지로 만들기도 했다. 노벨과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이들은 지방의 중소기업에서 과학연구를 하며 지방을 살찌우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일본에서 대기업을 정점으로 중·소기업과의 공존의식이 강해져, 지방의 한 기업으로 해금 세계에서 유일하게 광전자 배증 관으로 뉴트리노 관측 시설을 만들 수 있게 했다.

반면 강한 위계질서를 전통으로 가진 우리나라는 창의성을 요하는 과학계에서 과학자들의 자유로운 사고를 막는다. 학자 개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덧붙여 사회와 국가 전체에서 창의적 연구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지적은 식상하기까지 하다.

과학자들이 흥미를 느끼는 분야에 몰입하게 하는 사회 분위기 역시 조성돼야 한다. 사회는 과학자들에게 기초과학을 중시하고, 독특한 기초과학 실험을 위해 기업의 기술력을 향상시키고 기초과학 실험장비와 시설의 인프라를 조성해줘야 한다. 과학 연구 예산에 있어서도 투자의 규모보다 투자의 지속성이 필요하다. 중국의 경우 1997년 기초과학 육성을 위한 973계획을 내걸었다. 이후 과학논문인용색인(SCI) 논문이 해마다 평균 19%씩 늘었고, 현재 SCI 논문 수는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가 됐다.

일본은 R&D에 대한 투자를 계속해왔다. 2009년에서부터 2012년 말의 정권 교체 때 잠시 연구개발(R&D) 투자에 대한 재검토와 개발투자 축소가 있었다. 국력 감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왔고, 2012년 12월 새 정권이 출범하면서 R&D 투자를 다시 늘렸다. 국내총생산 대비 연구개발비의 비중을 향상시켜 2012년도만 하더라도 자연과학에 3.37%를 뒀다.

한 예로, 2011년 일본 대지진과 불황이 계속됐음에도 일본 정부는 야마나카 신야 교수의 유도만능줄기세포(iPSc) 개발 예산을 깎지 않았다. 덕분에 신야 교수는 201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탔다. 예산의 지속적인 지원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부터 과학기술에 크게 지원하기 시작했고, 21세기에 이르러 과학 기술 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 됐다. 과학기술 연구 대발에 대한 국가의 투자액과 GNP 대비 투자비율, 자연계 연구자의 박사학위 소유자 수, 저명 전문 학술지에서의 연구 논문 수, 초록·인용 문헌 수, 특허 취득 수, 권위 있는 국제 관련 기관의 연감·통계 등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했다.

이 부분은 과학기술 선진국인 일본과 대등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부가 주는 기초과학 연구비가 길어야 몇 년이 되지 않는다. 오랜 연구가 필요한 과학계에 대해서는 있을 수 없는 지원이다.

과학에 대한 지원이 어렵다면 과학 선진국이 이룩한 지식을 얻어다 쓰면 되지 않을까. 김학진 충남대 교수는 한 언론 기고문을 통해 후진국이라고 비용이 많이 드는 과학 활동 대신 선진국에서 생산된 과학지식을 수입해 활용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고 한 바 있다. 과학 생산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경우 지식을 완벽하게 습득하기란 힘들기에, 비용이 많이 드는 과학 활동을 직접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분야가 과학이기 때문이다. 일본 과학자들은 과거에 외국 유학을 많이 떠났지만, 이제는 자국 내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있다. 과학지식은 곧 과학 인력이기 때문에 과학 활동을 직접 수행하는 인력이 앞으로도 절실히 필요할 것이다.

 

노벨상이 전부는 아니다

물론 노벨상은 모든 학문을 대표하는 상이 아니며, 존재하는 수많은 상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수상자 중에는 몇 년 또는 반세기에 걸쳐 몇 번이나 추천자들의 추천을 받아 온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초조해하지 않았다. 과학자들에게 노벨상은 연구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노벨상을 위해 연구를 계획한 것도 아니고, 단지 연구 결과 가운데 일부를 인정받은 것뿐이다. 노벨상이 과학 연구를 대표하는 척도가 아니란 것을 알기에 후보자들은 수상 이후에도 꾸준히 연구를 하고 있다.

노벨상을 정책 수단으로 여기는 태도가 좋지 않다는 것은 국민들도 알지만, 그럼에도 2015년 노벨 과학상 수상에 씁쓸함과 부끄러운 마음이 남는다. 수상을 못해 국력이 약하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다. 기초 과학(자)에 대한 한 나라의 어설픈 대우가 다른 나라에 여실히 보이는 것과, 그럼에도 당당히 과학강국이라고 외치는 우리들의 겸손하지 못한 태도 때문이다.

 김재호 학술객원기자 kimyita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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