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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와 '사이버' 강의
톨스토이와 '사이버' 강의
  • 이연도 서평위원/중앙대 교양학부·철학
  • 승인 2015.10.12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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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이연도 서평위원/중앙대 교양학부·철학
▲ 이연도 서평위원

‘예술’ 관련 텍스트를 읽는 수업에서 ‘톨스토이’가 내린 예술에 대한 정의를 소개하며 경험한 일이다. 프리젠테이션 자료 화면에 수염이 덥수룩한 만년의 톨스토이 사진을 띄우고 학생들에게 의례적인 질문을 던졌다. “이 할아버지 누군지 아시죠?” 순간 강의실에 흐르는 어색한 침묵. ‘설마’하고 몇 사람을 지적해서 물어보았다.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 이어지고, 한 학생이 용기 내어 대답했다. “고흐?” 학생들도, 물어본 나도 실소를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대학생들의 독서력이 갈수록 떨어진다는 얘긴 진작부터 들어왔지만, 막상 현실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하긴 독서하지 않는 세태에 대한 푸념은 진작부터 있어왔다.
   
“요즘 사람들은 책 읽기가 일상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높고 멀어 실천하기 힘든 것으로 생각한다. 공부와 독서를 다른 이에게 미루고 자포자기하는 일을 당연하다 여기니, 참으로 슬픈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율곡의 『擊蒙要訣』의 서문에 나오는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책 읽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렇더라도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이 톨스토이를 처음 접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교육 현실이 얼마나 희극적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학생들이 책을 읽지 않는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는 현재 초·중·고 교육에서 주로 사용되는 동영상 강의의 폐해도 한 몫을 한다. 교육이란 언어적 내용 이외에도 분위기, 표정 등을 통한 선생과 학생 간의 상호 교감 과정이 중요하다. 교육 기회를 제대로 갖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사이버’ 강의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이를 정상적인 교육 현장에서 장려해선 안 되는 이유다. 학생들이 고전을 단편화된 영상으로 이해하고, 그 줄거리를 아는 것을 그 책을 읽은 것과 동일시하게 된 것도 그 부작용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현실에서 최근 대학에서조차 표준화된 동영상 강의를 이른바 ‘교수학습 개발’이란 명목으로 지원하고 있는 것은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 발간된 서경식 교수의 『내 서재 속 고전』(한승동 옮김, 나무연필, 2015년)은 대학 교양과 고전 교육에 대해 허심탄회한 얘기를 실어놓았다.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그의 글쓰기는 이미 정평이 나있지만, ‘나를 견디게 해 준 책들’이란 부제가 붙은 이번 책은 그 제목만큼이나 무겁고 또한 진지하다. 최근 숱하게 쏟아져 나오는 서평서들과는 그 시각이나 깊이가 다른 책인데, 막상 책 제목에 얽힌 그의 술회는 교수를 직업으로 가진 이들의 공감을 자아내는 유머가 있다. 이 책의 말미에 수록된 저자와 젊은 연구자들의 대담에는 우리 시대의 교육 현실에 대한 여러 흥미 있는 얘기가 담겨있다.

“일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세대 차이를 꽤 현실감 있게 받아들이게 됐어요. 인터넷 및 스마트폰의 보급 이후 학생들이 긴 문장을 읽거나 쓰는 걸 힘들어 합니다. 매체 환경의 변화로 정보가 빠르게 확산되는 등의 장점도 있겠지만, 지식의 파편화·단편화 현상이 대두되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고요. 저 같은 구세대가 ‘고전과 교양’을 논할 때 젊은 세대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겠다 싶었습니다.” 저자의 문제 제기는 한국의 대학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과제다. 일본의 우경화와 지적 야만에 학문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라는 그의 고민 역시 우리 사회의 현 상황과 맞물려 있다.
   
이 책에서 서 교수가 소개한 에피소드 하나. “어떤 학생이 제 강의를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본다고 하더군요. 강의에 참여하는 게 아니라 강의가 재미있으면 듣고 그렇지 않으면 언제든 전원을 끄듯 한다고요. 실생활을 영화 혹은 컴퓨터 화면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학생들은 실제로 벌어지는 전쟁도 게임처럼 이해할 거예요. 이게 세계적인 추세라면 기술 발전으로 인한 인간의 리얼리티 상실로도 볼 수 있을 겁니다. 전쟁의 발발이나 원전 사고도 이와 무관하지 않겠지요.” 청명한 가을, 一讀을 권한다.

이연도 서평위원/중앙대 교양학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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