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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탓하랴?
누구를 탓하랴?
  • 교수신문
  • 승인 2015.10.12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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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민경찬 논설위원/연세대·과실연 명예대표
▲ 민경찬 논설위원

지금 중국과 일본은 일종의 흥분에 싸여있다. 특히 중국은 해외유학도, 박사학위도 없는 순수 토종 연구자 투유유 교수(85세)가 4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중국 전통의약으로 노벨상을 받은 것을 큰 자랑으로 여긴다. 중국인들은 100% 중국의 힘으로 이뤄낸 쾌거를 자부심과 함께 ‘중국 굴기’의 상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 달 전승절 열병식으로 고무된 중국인들의 애국심과 자신감은 현재 최고조로 상승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은 지난 5일 다양한 기생충 예방약을 개발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오무라 사토시 교수(80세)에 이어, 6일 중성미자에 질량이 있다는 사실을 밝힌 가지타 다카아키 교수(56세)가 노벨 물리학상을 받아, 2년 연속 물리학상을 받게 돼 더할 수 없는 축제 분위기다. 우리 정부, 대학, 연구소, 교수, 연구자 그리고 우리 사회는 이들 수상자들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투유유 교수는 1969년 국가 전략차원에서 말라리아 치료제를 개발하라는 지시를 받아 목적, 목표가 뚜렷한 연구에 몰입하게 된다. 이 연구팀은 약초표본 190개를 실험했지만 모두 실패했고, 개똥숙은 191번째 찾아낸 100% 치료 약초였다. 이는 현대과학과 전통의학을 결합시킨 결과다. 그런데 투유유 교수의 업적이 그 암울했던 문화대혁명 기간에 이뤄졌다는 점과 일종의 정치 같은 ‘관시(關係)’를 넓히는 데 관심을 갖지 않고 오직 연구에만 몰두한 비주류 연구자라는 점에도 유의해야 한다. 오무라 사토시 교수도 지방대 출신으로 공고의 야간교사를 지낸 비주류 연구자로서,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열정으로 한 우물을 파고들었다.

21명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만들어낸 오늘의 일본은 130여년에 걸쳐 쌓인 기초과학 투자와 연구전통, 장인정신을 그 바탕에 깔고 있다. 가지타 교수가 받은 물리학상의 배경에는 메이지 유신 시절인 1900년대 초 노벨상을 받은 독일 물리학자들의 연구실에 보낸 일본인 연구자들이 있으며, 2002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그의 스승 고시바 마사토시 교수가 있다. 또한 40여 년 전인 1983년부터 우주 입자 검출기에 정부가 1천수백억원을 투입했기에 가지타 교수의 연구도 가능했다.

한편 오무라 교수는 ‘일본 세균학의 아버지’라는 기타사토 시바사부로(1853~1931)가 세운 연구소가 모체인 대학에서 40년간 재직했다. 일본은 서구를 모방하기보다는 자신 만의 추격 전략을 만들어왔다. 한 예로, 물리 분야 중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되는 이론물리나 소립자 물리에 집중해 1949년 소립자 물리이론으로 유카와 히데키 교수가 일본 최초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된다. 이러한 흐름에서 앞으로 일본의 노벨상 행진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기초과학에 100년 이상 장기적으로 묻지마 투자하는 정부, 실패를 수없이 거듭하더라도 마음껏 한 우물을 팔 수 있도록 오랫동안 기다려주는 사회, 단순 호기심을 가지고 모두가 포기하고 가망 없다는 연구에 20년 이상 매달리는 연구자의 집념, 그리고 출신, 학벌, 학위, 성, 유행, 연줄, 권위 등을 넘어서는 고품격 문화, 우리는 언제나 가능할까. 노벨상 발표 시즌만 되면 들끓다가 몇 주 지나면, ‘빨리 성과 내라’, ‘영수증 보자’ 등에 시달리고 자주 바뀌는 정책에 적응하며 또 다시 연구비 확보를 위해 여기 저기 뛰어다녀야하는 우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은 결국 연구자가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연구자들이 먼저 성찰하며 새롭게 도전해야만 한다. 어떤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인간 정신 승리의 본을 보여주며 인류의 삶과 행복에 기여한 노벨 수상자들, 이들이 오랫동안 추구해온 가치, 정신, 문화를 배워야 한다. 이제 겨우 20여년 지원받기 시작한 한국의 기초과학, 그동안 엄청난 발전을 이뤄가고 있지 않은가. 우리도 할 수 있다!

민경찬 논설위원/연세대·과실연 명예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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