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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분단 극복한 통일 독일에서 한국법학의 미래를 진단하다
냉전·분단 극복한 통일 독일에서 한국법학의 미래를 진단하다
  • 교수신문
  • 승인 2015.10.07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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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통일, 헌법’ 국제학술대회를 마치고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과 독일 콘라드 아데나워재단, 헌법이론실무학회는 지난달 16~18일 3일간 고려대에서 국제학술대회를 열고 자유와 통일, 헌법을 주제로 양국의 법적경험의 동질성과 차이점을 논의했다. 사진제공=고려대법학전문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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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독일은 동서냉전의 결과로 분단된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은 1990년 10월 3일 통일을 성취해 이제 25주년을 기념하고 있는데 반해, 한국은 70년째 고통스런 분단을 이어가고 있다. 2015년은 한국과 독일의 학자들이 분단과 통일 그리고 통일후 통합과정에 관한 양국의 경험과 지혜를 나누기에 적절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9월 16일부터 18일까지, 독일 콘라드 아데나워재단과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사단법인 헌법이론실무학회의 공동주최로 고려대에서 ‘자유, 통일, 헌법’을 대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연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콘라드 아데나워재단은 독일통일을 이끈 정당이자 현재도 집권중인 기독교민주당(CDU) 산하의 공익재단으로서, 전 세계 120개국 이상에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가치를 전파하고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과 아데나워재단은 지난 2014년 국제학술교류 목적의 MOU를 체결해 향후 3년간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고, 특히 젊은 연구자들 간의 교류를 적극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그에 따라 작년 10월 25일부터 28일까지 독일학자 5인을 초청한 국제학술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바 있다. 올해는 특히 독일 통일 25주년을 기념하고 한국 통일에 줄 수 있는 시사점을 찾는 자리로서 학술대회를 기획했다.

16일 ‘자유와 통일, 헌법의 정당성’이라는 주제로 학술대회의 막이 올랐다. ‘헌법의 정당성’이라는 테마는 헌법학에 있어서 ‘헌법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닿아 있는 근본문제에 해당한다. 더욱이 분단국의 특수한 사정을 고려할 때 통일국가의 헌법이 어떤 과정을 통해 정당화될 수 있는지는, 분단국의 헌법학자라면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주제다. 토론과정을 통해 확인됐듯, 이러한 문제의식은 미래의 통일을 고민하고 있는 한국의 학자와 이미 통일이 과거의 역사가 된 독일의 학자 간 입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보편적으로 공유되고 있었다.

「분단과 통일, 헌법의 정당성」을 발제한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분단국의 현실을 통해 본 분단국헌법의 정당성을 풀어나간 후, 남북 통일과정과 통일 후의 헌법의 정당화 문제를 제기했다. 김 교수의 발표는 공자의 ‘苛政猛於虎’ 고사로 시작됐는데, 시리아 등 자국의 가혹한 정치를 피해 유럽으로 몰려들고 있는 난민들의 상황이 연상돼 ‘공동체적 삶의 형식’인 헌법의 성공과 실패가 곧 국민의 삶과 연결된다는 점과 국민의 헌법에 대한 믿음이 헌법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는 점을 일깨워 줬다.

두 번째 발제자인 카르스텐 알렉산더 칼라 독일 본(Bonn)대 공법연구소 연구원은 「부분헌법으로서의 기본법으로부터 전체독일의 헌법으로」라는 발표문을 통해, 분단직후 서독지역의 잠정헌법으로 제정됐던 기본법이 통일과정에서 전체 독일에 유효한 헌법으로 전환된 과정을 설명했다. 토론자로 나선 이경주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본과 독일이 패전 후 점령국의 지배 하에 헌법을 제정하면서 흠결했던 정당성 문제를 내용적 정당성을 통해 보완할 수 있었음을, 박진완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독일 통일조약의 국제법적 함의로부터 한국의 통일과정에서 문제될 수 있는 현행 헌법조문들의 해석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했다.

 

통일과정에서의 ‘헌법의 정당성 획득’ 문제 논의

학술대회 첫날이 통일과정에서의 헌법의 성립과 정당성 획득과 관련한 근본문제를 논의했다면, 둘째 날인 17일은 ‘독일통일과 한국통일-통합과 복지’라는 주제 하에 실제 통일과정에서 대두될 현실적인 문제들을 깊이 있게 논의했다. 특히 토마스 쿤츠 튀링엔주 법무부 차관보와 알빈 네스 작센주 복지보건청소년가족부 전 차관은 서독출신의 법률가이지만 통일 직후 동독으로 파견돼 통일과정의 실무적 과제들을 현장에서 직접 담당했던 생생한 경험을 증언해 눈길을 끌었다.

오전 세션에서는 구동독지역인 튀링엔주에 파견돼 현재까지 사법조직의 재건과 불법청산 업무를 담당해온 토마스 쿤츠 차관보가 민주적 법치국가로의 통합과정에서 전체주의국가(동독)에서 훈련되고 활동했던 법률가들을 어떻게 수용했는지, 민주주의를 경험하지 못했던 동독지역 주민들이 갑작스럽게 이뤄진 통일과정에서 느꼈던 환호와 뒤이은 당혹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는지 등 민감한 주제들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두 번째 발제자인 방승주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통일국가의 진정한 통합을 위해 국가불법 청산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오후 세션에서는 알빈 네스 전 차관이 독일통일의 가장 큰 현실적 문제였던 동독지역의 사회보장제도 구축을 담당했던 경험을 상세하게 보고했다. 동독체제의 붕괴와 동독주민들의 통일에의 열망을 견인한 것은 주로 서독의 눈부신 경제성장과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동경이었다. 통일 직후 독일정부는 동독주민의 대량실업과 서독과의 임금격차, 생활수준 차이를 줄여나가면서 내적 통합에 노력해 왔는데, 아직 격차가 완전히 해소되지는 못했지만 통일 독일정부가 섬세함과 포용성을 가지고 사회보장정책을 입안하고 점진적·단계적으로 적용한 것은 실로 경탄할 만한 것이었음을 알게 해줬다.
이어서 김재영 변호사가 남북통일을 대비한 「통일비용의 재원과 조달방법」을 발표해, 결국 통일비용 문제가 가장 현실적이고 어려운 문제가 될 것임을 공감하게 해줬다. 마지막 발제자 이재희 고려대 법과대학 강사는 「통일시 남북한 주민들의 정치적 평등권 보장」을 발표했다. 그는 분리와 차별이 아닌 ‘통합’의 관점에서 어떠한 제도적 노력이 가능할지를 상세히 거론해 양국 학자와 실무가들의 많은 주목을 받았다. 16일과 17일 이틀간의 발표와 토론내용은 올해 10월 중 창간될 예정인 <통일법연구>에 수록된다.

‘정치적 자유의 제도화’라는 주제 하에 진행된 18일 학술대회에서는 독일과 한국의 정치적 자유의 현실과 제도의 차이가 극명하게 대비됐다.

오전 세션에서는,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가 한국에서는 정치적 중립성을 이유로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적 참여의 권리가 전면적으로 부인되고 있으며, 헌법재판소도 이를 수차례 합헌으로 결정했다고 설명하자, 공무원과 교사의 정당 가입과 활동 등 정치적 권리가 보장되고 있는 독일의 학자와 공무원들은 상당히 생소하게 여기며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정치적 자유와 선진적 법률제도

오후 세션에서는 필자가 「한국에서의 정당설립의 자유」를, 독일의 다니엘 문딜 박사가 「독일에서의 정당설립의 자유」를 각각 발표했다. 독일에서는 정당설립에 국가개입이 일체 금지되고 있는데 반해 한국의 경우 정당설립에 까다로운 법적 요건과 등록절차를 요구함으로써 정당설립이 극도로 제한되고 있는 점이 대비됐다. 토론을 맡은 독일측 법률가들이 한국에 정말 그러한 법률이 존재하는지 질문을 던지며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던 데서 짐작할 수 있듯, 양국의 정당법제는 결코 접점을 찾을 수 없었다.

이번 학술대회 마지막 발제자인 김효연 박사(고려대 법학연구원)는 아동·청소년의 정치적 참여의 확대방안이 세계적으로 논해지고 있는데 반해 한국의 경우 19세미만의 청소년에게 선거권 행사는커녕 정당가입과 활동, 선거운동의 자유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어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제도개선이 시급하다는 인식을 갖게 했다.  18일의 발표와 토론내용은 내년 3월 중 발간될 <헌법연구> 제3권 제1호에 수록될 예정이다.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독일에는 이미 역사가 된 분단과 통일이 우리에게는 여전히 미래과제로 남겨져 있다는 현실, 시민들의 정치적 자유와 민주주의의 구체적인 모습은 선진적인 법률제도의 정착유무에 달려있다는 점이 선명하게 부각됐다.

그러나 이번 행사에서는 양국의 제도적·문화적 간극을 노출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한 자리에 모이기 힘든 양국의 경험이 풍부한 법률가와 신진학자들, 실무가들의 진지한 토론 속에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구체화했으며, 해결방법을 찾는 데 앞으로도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

 

윤정인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연구교수·헌법학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기본권이론, 자유의 철학, 인간의 존엄과 자유의 관계에 대해 근본적인 관심을 갖고 있다. 최근에는 정치적 행위의 헌법적 의미, 정당제도 등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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