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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전문가 중심으로 재편 … 한국대학출판협회 역할 확대해야
출판전문가 중심으로 재편 … 한국대학출판협회 역할 확대해야
  • 김정규 한국방송통신대출판문화원 기획팀장
  • 승인 2015.10.06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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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출판부의 미래를 위한 제언

영국 옥스퍼드대 출판부는 직원 6천명, 1년에 신간 6천종을 발행하고 1억1천만 부를 판매해 매출액은 1조4천억 원에 이른다(2015.3. 기준). 이들은 평균 직원수 5명에다 연매출이 10억 원에도 못 미치는 한국 대학출판부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하늘의 태양과 같은, 촛농 날개의 이카로스는 절대로 다가갈 수 없는 그런 존재다. 그럼에도 우리는 옥스퍼드대 출판부를 목표로 하고 싶다. 그러나 너무 높이 날아오르려는 꿈은 자칫 허황할 수 있다. 맞다, 허황한 꿈이다. 이것은 오래 전에 그런 것을 꿈궈 본 적이 있는 대학출판부 근무경력 25년차의 슬픈 독백이다.

지난 25년 동안 우리나라의 대학출판부들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에 패밀리 브랜드 도입과 함께 기획물들을 의욕적으로 출판하면서 잠깐 발전의 기미를 보이기는 했다. 그러나 그도 뚜렷한 성과를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경영조직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니었을까 한다. 경영자인 총장과 출판부장들은 임기제로 임명돼 대부분 인재 양성 같은 인프라 구축보다는 단기성과에 연연할 수밖에 없고, 정책의 일관성은 유지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음으로는 논문지상주의를 꼽을 수 있다. 논문 한 편에 대한 보상이 수천만 원에 달한다. 논문 10편 분량의 학술서 한 권을 출판해 봤자 인세가 백만 원도 안 되는 현실을 감안하자면 연구자들이 느끼는 상대적 빈곤감은 클 수밖에 없다. 학문의 깊이가 느껴지는 학술서 출판은 점차 줄어들고 있으며, 지식은 파편화된 채 학생들의 머릿속으로 주입되고 있다. 통섭적 교육이라는 말이 무색해지고 있는 것이다. 

대학출판부의 전통적인 기능은 대학에서 생산되는 지식과 정보를 매체화(출판)해서 학생과 일반에게 공급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ICT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지식의 생산과 유통 방식에 천지개벽이 일어나고 있다. 대학교육도 진화해 원격교육이 보편화됐고, ‘거꾸로 교실(flipped learning)’이라는 것이 등장해 교실혁명을 예고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외대와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에서 최근 디지털 교재를 활용한 스마트 캠퍼스 구축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는 디지털 교재를 만들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대학출판부가 출판에만 갇혀 있지 말고, 강의실에까지 들어가서 교수자와 학생 사이에서 벌어지는 업무 프로세스의 일부를 담당하라는 말이다. 세계적인 학술전문 출판사인 와일리와 센게이지러닝은 ‘와일리플러스 러닝 스페이스’와 ‘코스메이트’라는 교육용 플랫폼을 만들어 교수자와 학생들에게 혁신적인 서비스를 제공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출판사가 온라인상에 대학 강의실을 지은 것이다. 따라서 대학출판부의 기능과 역할 또한 새롭게 재정의돼야 마땅하다.

세계적인 대학출판부를 목표로 하지 말라고 서두에서 말한 바 있다. 그들은 이미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있고 영어권 시장은 넓어 주어진 조건이 우리와는 다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에게 배워야 한다. 학문 수준과 고등교육시스템에서 우리가 뒤쫓아 가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다만, 너무 높이 날려다 추락한 이카로스의 운명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 환경에 알맞은 새로운 대학출판 생태계를 스스로 만들어 가는 일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대학 내의 메커니즘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대학출판부의 강점을 살려 생산, 유통, 소비라는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필요한 조건들을 업무 주체별로 정리해 보자.
먼저 대학 차원에서 해야 할 일들로 조직과 인사체계의 정비를 들 수 있다. 관료화된 대학조직에서 분리해 출판전문가를 중심으로 시장(저자, 독자) 친화적으로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행정인력을 배치해 임기제로 순환시키거나 출판부를 도서관이나 홍보처에 통합해서 운영하는 인사시스템으로는 많은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둘째, 예산 지원이다. 학술출판은 손익분기점을 넘기기가 어렵다. 따라서 연구예산의 일정 부분을 학술서 집필에 지원해야 한다. 이미 많은 대학에서 이를 시행하고 있긴 한데 그 규모가 너무 작다. 원고공모제를 활성화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셋째, 향후 스마트 캠퍼스 구축 시에 방송대처럼 교재의 개발·판매권을 출판부에 귀속시키는 정책을 채택하면 좋을 것이다. 방송대 출판문화원은 교재 사업의 안정적 수입을 바탕으로 오히려 더욱 저렴한 대학교재를 만들어 내는 선순환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출판부 차원에서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해 보자면, 전문지식을 갖춘 기획편집자 양성이 최우선이다. 이런 전문가들이 확보돼야 저자에게 신뢰감을 갖게 해, 함께 기획하고 출판할 수 있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또한 시장을 꿰뚫어 보는 마케터가 필요하다. 특히 최근 인터넷마케팅 의존도가 높아져 이에 대한 업무숙련이 필요하다.

각 대학출판부의 규모가 영세하기 때문에 한국대학출판협회의 역할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회원사 출자 또는 정부사업이나 기업체 지원 유치를 통해 재정을 확보하고 직원을 채용해 업무를 추진하는 것이다. 공동마케팅의 필요성도 절실하다. 대부분 마케터가 없거나 한두 명이어서 어려웠던, 데이터 분석에 기반한 과학적인 마케팅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서점 교섭력도 높이고 해외시장 공략도 욕심을 낼 수 있을 것이다. 협회가 2014년에 창간한 국내 최초 학술전문 서평지 <시선과 시각>을 독자들에게 신간정보를 신속하게 전달할 수 있는 무상매체로 발전시키는 일도 필요하다.

올해 정부지원으로 한국대학출판협회가 추진하는 ‘학술지식콘텐츠 공유를 위한 DB 및 시스템 구축 사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대학교재와 학술도서를 DB화하고 서비스 플랫폼을 구축해 앞서 언급한 해외 출판사의 사례처럼 맞춤형 교재 수요에 대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업은 지식기반을 구축한다는 의미에서 공공성이 크므로 정부지원사업으로는 적절할 것으로 본다. 교육부나 문체부에서 관심을 갖도록 기획사업 유치활동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김정규 한국방송통신대출판문화원 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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