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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힘이 세다
진실은 힘이 세다
  • 최정식(필명 최화) 경희대·철학과
  • 승인 2015.09.25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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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최정식(필명 최화) 경희대·철학과

진실은 힘이 세다. 지금 북한에 살면서 탈북하는 친척의 도움으로 자기 대신에 자신의 단편집을 밖으로 탈출시킨 작가 반디의 바로 그 단편집 『고발』이 조갑제닷컴에서 나왔다. 조갑제닷컴이라면 벌써 읽기도 전에 읽을 필요도 없다고 제쳐 둘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무엇이 당신을 이토록 편벽되게 만들었는가? 이데올로기? 그것의 거짓됨을 이 책은 고발하고 있다. 카톤의 호소를 빌어 외치고 싶다. “북한의 김정일 체제는 무너져야 한다(Tyrannis Kimii delendum est)”고. 그 모든 것이 진실임을 이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진실의 힘은 세다.

1960년대 김승옥의 『염소는 힘이 세다』가 아니라 이제 반디의 『고발』은 “진실은 힘이 세다”고 외치고 있다. 『염소는 힘이 세다』에 비하면 『고발』은 몇 천 배, 몇 만 배 더 큰 진실의 힘으로 “이제 거짓은 그만 둘 때”임을 고발하고 있다.

『고발』이라는 이 짧은 단편집은 조정래의 열 몇 권짜리 장편 『태백산맥』을 쓸데없는 수다로 만들어버린다. 농담으로, 우스개로, 결국 거짓으로 만들어버린다. 이것이 진실의 힘이다. 우리가 군사정권에 억눌렸을 때 『태백산맥』은 무조건 다르다는 이유로 어떤 다른 길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것이 보여준 길은 군사정권보다 훨씬 더 지옥의 길임을 『고발』은 보여준다.

『고발』은 그 어떤 이데올로기도 거짓임을 고발한다. 그러기에 『태백산맥』 뿐 아니라 마르크스도 한갓 유령에 불과함을 고발한다. “구라파에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돌아다닌다.”는 ?공산당 선언?의 그 유령 말이다. 그 털북숭이의 그림을 보고 어린아이는 놀라 경기를 일으킨다. 유령이니까. 유령이 어떻게 세상을 바꾸고, 개선시킬 것인가. 그러니 유령이 그런 힘이 있다고 주장한 자는 그런 힘이 없음이 드러난 후에도 그렇다고 우길 수밖에 없다. 그런 자는 유령보다도 더 유령스럽게 사람들에게 출몰한다. 그는 아무 힘이 없으므로 무서워진 나머지 이번에는 사람들의 감정을 통제하려든다. 그것이 지금 북한 땅에서 이뤄지고 있음을 『고발』은 고발한다. 어린아이는 털북숭이와 나란히 걸린 김일성의 사진을 보고도 경기를 일으킨다. 그것을 보지 못하게 하려고 커튼을 친 일가족은 ‘유령의 도시(평양)’에서 쫓겨나간다.

『고발』의 특이한 점은 참으로 아름다운 구성과 문체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작가의 글이란 아무래도 그가 사는 곳과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기 마련이라 이렇게 삭막한 곳에서 삭막한 사람들과 어울려 살다 보면 어딘지 모르게 삭막한 미의식과 문체를 띠지 않을까 하는 애초의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작품이어서 또 한 번 감탄케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것이 바깥에서 쓴 위작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거기서 살다 나온 사람이 탈북한 후에 쓴 것이 아닌가 의심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읽다보면 의심은 자연히 풀리게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꼭 들어야 할 것은 듣지 않는 묘한 귀먹음이랄까 어리석음이랄까가 있는 것 같다. 천재는 위대한 작품을 내놓았는데도 사람들이 알아주질 않으니 제 가치를 발휘하지 못 하는 것이다. 이것은 커다란 잘못이다. 마치 고흐의 그림을 보고도 그림 이상하게 그렸네 하고 지나치는 것과 비슷하다. 필자가 알기로 우리나라는 박홍규라는 위대한 형이상학자를 배출하고도 그를 전혀 알아보지 못 한다. 이것은 아마 일반대중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사이에 있는 전문가들이 게을러서 일어난 일이 아닐까 한다.

이번에 반디라는 위대한 작가가 나타났다. 그런데도 문학평론가라는 작자들은 아무 말 않고 침묵하고 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철학자인 필자가 나선 것이다. 이런 작품을 그냥 놓아둬서는 안 된다. 방방곡곡 누구나 읽어서 북한의 실상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통일이니 뭐니 논해도 제대로 된 시선으로 일을 처리할 것이 아닌가. 아니, 그 이전에 우리나라 문학사를 정리하려고 해도 이런 대작을 무시하고 할 수는 없다. 미국에서 몇몇 사람이 모여 솔제니친과 같이 노벨문학상을 주자는 운동을 하는 것 같은데 그것은 그것대로 추진하더라도, 우리는 우리대로 이 작품을 소화하려 해야 할 것이다. 이 정도로 강한 진실을 드러내는 작품이 있었던가? 이것은 정녕 100여년 한글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품이다. 진실은 힘이 세다.

 

 

최정식 경희대·철학과(필명 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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