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4 16:45 (수)
제798호 새로나온 책
제798호 새로나온 책
  • 교수신문
  • 승인 2015.09.23 14: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 바로 이것이 과학에서 엄청난 중요성을 가지며, 오직 이것으로만 편향을 무효화하기를 소망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과학에서 권력구조는, 그것이 아무리 비공식적이라도 어떤 억제와 균형의 체계에 종속되어 있어 어떤 학술지나 학회에서 거부되는 것이 다른 데서 채택될 수 있기만 하다면, 과학 공동체의 일반 복지에 봉사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아마도 더 중요한 것은 데릭 프라이스가 우리 시대의 ‘보이지 않는 대학’이라고 부른, 고도로 유동적인 과학자들 사이의 개인적인 관념의 교류에 의해 구성되는 그 어떤 것임이 분명하다. 시장에서 관념의 자유로운 경쟁이 필수적으로 참을 희생시킨다는 것은 이와 같은 과정이 모든 사회적 선의 근원이라는 더 일반적인 믿음과 같이 신화일 수 있다. 자유와 통제 사이의 갈등은, 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어떠하든 과학에서는 실존적 딜레마다.”
- 에이브러햄 캐플런 전 미국철학회 회장, 『탐구의 실행: 행동과학 방법론』(권태환 옮김, 박경숙 감수, 현실문화, 2015.8) 중에서

■ 미완의 프랑스 과거사: 독일강점기 프랑스의 협력과 레지스탕스, 이용우 지음, 푸른역사, 520쪽, 29,500원

일제강점기가 한국 현대사에서 돌이키고 싶지 않은 아프고 부끄럽고 혼란스러운 시기인 것과 마찬가지로, 독일강점기는 프랑스 현대사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수치스럽고 복잡하고 분열적인 시기다. 분명 대처 방법은 달랐지만 ‘강점기’의 기억이 끊임없이 환기되고 분출되고 재분출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그리 다르지 않다. 프랑스에서는 2014~15년 파리 도심 한복판에서 ‘독일강점기 대독협력’을 가리키는 ‘협력’ 전시회가 열려 독일강점기에 대한 기억을 되살렸다. 여전히 지속되는 ‘미완’의 과거사다. 여러 해 전부터 독일강점기 프랑스의 대독협력과 레지스탕스 및 전후의 과거사 청산 문제를 연구해온 저자는 이 책에서 프랑스의 ‘지나가지 않은 과거’ 독일강점기에 주목했다. 저자는 대독협력자와 그에 대한 처벌 문제(1부), 홀로코스트와 그에 대한 비시 정부의 협력 문제(2부), 나치 독일과 대독협력자들에 맞서 싸운 레지스탕스 관련 문제(3부) 등을 살피면서 독일강점기 프랑스 과거 청산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심화시킨다.

■ 비정규 사회: 불안정한 우리의 삶과 노동을 넘어, 김혜진 지음, 후마니타스, 256쪽, 14,000원

‘비정규직 철폐’를 주장하는 저자의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은 것은 15년 넘게 비정규직 운동에 천착해 온 전문성과 현장성이 책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모두가 자신의 일은 아니라고 여기며 외면했던 우리 사회의 실상을 드러낸다. 오늘날 비정규직은 일을 해도 가난하다. 아프고 다쳐도 어김없이 출근해야 하며, 시간과 공간에 대한 자율성을 갖지 못한 채 일한다. 최소한의 기준인 ‘근로기준법’조차 적용되지 않는다. 비정규직이 늘어날수록 사람들은 기업에 예속되고 이윤 중심 활동에 제동을 걸 힘은 점차 사그라진다. 또한 이들은 사회적 차별에 놓여 있다. 세월호 참사로 사망한 단원고 교사 중 두 명의 기간제 교사는 순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차별은 죽음 이후에도 존재한다. “비정규직은 거스를 수 없는 고용 형태가 됐으니 차별을 줄이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저자는 설사 임금 및 고용조건이 정규직과 비슷한 수준이 되더라도 해고될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차별은 사라질 수 없다고 말한다.

■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연구, 한석환 지음, 서광사, 400쪽, 27,000원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 전개된 그의 수사학 구상을 몇 가지 주요 주제 중심으로 분석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설명을 시도한 결과물. 수사학은 고대철학적 의미의 ‘실천’, ‘정치’, ‘인간적인 것’의 차원에 속하며,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인간적 삶의 세계에서 공존과 타협을 위해 필요할 수밖에 없는 학문이다. 현재 고전수사학은 물론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에 대한 변변한 연구서가 없는 실정이라 더욱 의미가 깊다.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에 매료되면서 수사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그 뒤 아리스토텔레스뿐 아니라 플라톤의 맥락에서도 수사학의 여러 물음을 꾸준히 다뤘다.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 대해 중립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하는 수사학이 인간적 삶의 세계에서 어떠한 가치를 지니는지, 그리고 수사학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시사점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융의 영혼의 지도, 머리 스타인 지음, 김창환 옮김, 문예출판사, 344쪽, 17,000원

프로이트와 더불어 20세기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이자 ‘분석 심리학(Analytical Psychology)’ 창시자인 칼 구스타프 융의 이론을, 융 심리학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머리 슈타인 박사가 쉬운 언어와 적절한 비유로 설명한 개론서. ‘영혼의 지도’라는 제목이 시사하듯, 저자는 융의 분석 심리학 이론을 지도 제작 과정에 빗대어 그 영혼의 맨 위 표면에 해당하는 자아(ego)에서 출발해 콤플렉스, 리비도(libido) 이론, 그림자(shadow), 아니마/아니무스, 자기(self), 개성화(Individuation), 동시성(synchronicity) 등 점점 더 복잡한 영역들로 탐구해 들어간다. 그 결과는 그저 밋밋한 2차원 평면 지도가 아니라 융 심리학을 입체적이고 역동적으로 보여주는 3D 지도이다. ‘융의 영혼의 지도를 30년 가까이 연구해 정제한 결실’이라는 자신에 찬 서론이 허언이 아님을 충실한 내용으로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 은유로 본 기억의 역사: 플라톤의 밀랍판에서 컴퓨터까지, 다우어 드라이스마 지음, 정준형 옮김, 에코리브르, 368쪽, 17,500원

이 책에서 은유는 기억의 역사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해주는 유용한 도구로서 재발견된다. 그런데 왜 ‘은유’인가? 기억은, 아니 마음의 세계는, 비유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여러 시대에 걸쳐 철학자와 심리학자들은 기억을 이해하기 위한 방편으로 은유를 사용해왔다. 이 책은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런 기억의 은유를 찾아나서는 여정이다. 기억 이론의 역사는 기억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은유의 역사이기도 했다. 플라톤의 ‘새장’, 아우구스티누스의 ‘동굴’과 ‘궁전’, 플러드의 ‘기억 극장’, 카루스의 ‘미궁’, 프로이트의 ‘신비스런 글쓰기 판’, 그리고 현대에 와서 기억의 은유는 신기술에 경도된다. 기억을 수식하고 심지어 대체하는 현대의 신기술에 투영된 은유들은 기억과 망각에 대한 인류의 생각을 반영한다.

■ 인민, 마거릿 캐노번 지음, 김만권 옮김, 그린비, 268쪽, 19,000원

그린비 프리즘 총서 20번째 책으로 출간된 『인민』은 영미권에서 인민을 체계적으로 다루는 거의 유일무이한 연구서다. 이 책은 인민이라는 개념을 설명하고자 한 폭넓은 유럽 사상을 집약하고 있으며, 인민이라는 단어가 내포한 다의성 및 그와 결부된 다양한 문제를 해명한다. 더불어 과거에 대한 설명에 그치지 않고 지구화 시대에 새롭게 확장된 인민의 의미와도 씨름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인민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정치적 쟁점과 인민 주권의 역사, 정치가들의 이해관계 등을 살펴보며 지금껏 확실히 모습을 드러낸 적 없었던 인민의 다양한 얼굴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인민』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마거릿 캐노번은 서구 학계에서 이미 한나 아렌트에 관한 연구자로 정평이 나 있다. 아렌트 연구와 더불어 인민과 이들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대중영합주의(populism)에 관심을 두고 있는 캐노번은 정치 이론이 ‘인민’과 ‘민족’을 진지하게 사유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역설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