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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들은 왜 침묵하는가
교수들은 왜 침묵하는가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5.09.21 1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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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저당잡은 ‘평가’에 갇힌 상아탑 … ‘돌파구’ 안 보인다

지난달 부산대 고현철 교수가 총장직선제를 요구하며 대학본관에서 투신했다. 이 사건을 바라보는 교수사회의 시선은 두 가지로 극명하게 나뉘었다. 함께 힘을 합치지 못한 데 따른 미안함과 부끄러움으로 애도하는 교수와 현실과 동떨어진 감성주의자라는 차가운 시선과 무관심이다. 

특히 후자와 같은 현실인식은 비단 고 교수사건에만 국한된 건 아니다. 대학구조개혁 평가와 성과연봉제, 고강도의 교수업적평가, 취업알선 등 정부와 대학본부에서 일방적인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반복됐다. ‘최고 지성’에서 ‘샐러리맨’으로 변해가는 교수들. 그들은 왜 본인들의 신분과 처우문제까지도 입을 열지 않는 걸까.

▲ 일러스트 돈기성

“예전엔 교수가 사회적으로 존경 받는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월급쟁이·생활인으로 돌아가버렸어요. 동료교수들과 연구실에 모여서 토론하던 문화는 사라졌습니다. 최근 대학구조조정, 성과연봉제 등 정부정책으로 인해 교수들은 실적내는 데 모든 시간을 써야 해요. 신문 볼 시간이 없는데 사회비평을 어떻게 합니까.”(부산대 교육학과 A교수)

2015년, 교수사회를 지배하는 단어는 ‘생존’이라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하다.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 교육부 주도의 대학구조조정이 5년째 이어지는 동시에 교수들은 세계가 인정하는(!) 논문을 매년 써내야 하는 실정이다. 인문·사회계 교수들조차 연평균 2~3편의 논문을 요구받는 실정이다. 교육과 연구 외에도 상당한 공력이 투입돼야 할 △입시 △학생 면담 △산학협력 △취업 알선 등 부가업무도 전국 교수들의 공통분모다.

교수는 해당분야의 최고 전문가로서 사회의 각종 문제와 갈등을 진단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아왔지만 최근엔 교수들의 입이 급속히 얼어붙는 경향이 감지된다. 교수들은 더 이상 ‘최고 지성’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고, ‘생활인’ ‘연구직 직장인’이라는 말을 공공연히 할 정도다. 이런 발언은 불안심리에 기인한 것으로, 정치·사회 이슈에 발언을 삼가는 것은 물론이고 대학 내부와 동료들이 겪는 어려움, 심지어 자신의 신분과 처우문제까지도 침묵케 만드는 주요인으로 꼽힌다.

대학정책 열심히 따라가는 게 교수로서 현명한 삶(?)

2010년을 전후로 교육부가 대학구조개혁정책을 내놓으면서 대학의 정원을 감축하고 퇴출까지 시키겠다고 수차례 공언했지만 교수들은 그저 상황을 지켜볼뿐 최근까지도 제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일부 교수단체에서 성명을 내고 교육부를 항의방문 했지만 단발성 이벤트에 그쳤고, 총장협의회 차원에서도 항의했지만 그때 뿐이었다. 추진동력이 없기 때문이다. 당시 교수들은 ‘우리는 서명할 테니 대표가 가서 해결하고 오라’는 식의 소극적인 행동을 취하면서, 실리는커녕 한층 더 강화된 제도적 옥죄임을 반복적으로 당해야 했다.

대구지역 사립대 이공계의 B교수는 “정부나 대학의 일방적인 의사결정에 대해 한 마디라도 비판을 하면 두고두고 시달린다”며 “지금 조금 비겁한 게 나중에 편하다는 인식이 교수들 사이에 팽배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말해봤자 변하는 건 없다. 무시·보복은 있어도 개선은 없으니 교수들이 입을 닫게 된다. 게다가 불합리한 의사결정과정이나 교육정책에 관해 용기 내 말하려고 해도 나만 피해받는 게 아니니 참 애매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한때 ‘최고 지성’이라는 기대를 받아오던 교수들이 스스로 “우린 지식을 파는 셀러리맨일 뿐”이라고 주장 하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교수들은 왜 사회이슈는 물론이고 자기문제까지도 좀처럼 입을 열지 않을까. 교수들은 ‘무력감’을 첫손에 꼽았다.

포스텍의 C교수는 “일단은 살고봐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교수들이 공동선, 공공의 이익, 공동체이런 단어들을 이상적이고 공허하게 느끼는 건, 이것들을 위해 싸웠을 때 돌아오는 건 생존과 직결되는 불이익(업적평가, 감봉, 학과구조조정)”이라며 “이런 상황을 10~20년이나 지켜봐 왔으니 교수들이 패배의식과 냉소주의에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교수 개개인의 평가가 학과평가와 연동돼 있는 탓에 언제 어떤 방식으로 소속(학과)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강박 속에서 교수들은 묵묵히 ‘각자도생’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다.

교수업적평가는 소속뿐 아니라 연봉에도 반영된다. 최근엔 정년이 보장된 정교수라고 예외는 아니다. 실제로 지방의 한 사립대는 교수를 실적에 따라 등급을 나눠 연봉을 책정하는데 같은 연차의 정교수 간 연봉격차가 4천만원에 달하기도 했다. 

교수들은 정부와 대학본부에 밉보였다간 당장 급여 손실부터 감수해야 하고, 이 손실은 소속학과의 존립 여부를 판가름하는 쪽으로 책임이 전가되고 있다고 말한다. 대학 내부의 교수업적평가체계는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평가를 중심으로 한 각종 재정지원사업 평가에 모두 연동되기 때문에 교수들은 서서히 입을 닫고 실적쌓기에 급급하게 됐다.

이처럼 생존게임이 교수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가운데 수많은 교수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매년 벌어지고 있다. 2011년 건양대 전자정보공학과 교수가 교양학부로 학과를 이동할 것을 통보받았는데 이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듬해엔 대전대 한문서예학과 교수가 취업률을 고민하다 목을 맸다. 지난달엔 부산대의 한 교수가 교육부의 총장직선제 폐지정책을 반대하며 본관에서 몸을 던졌다.

동료교수들의 자살이 끊이지 않지만 교수들은 서로 눈치만 보는 분위기다. 대학 민주화를 외치며 투신한 교수를 향해 “총장직선제 때문에 목숨을 내려놓은 건 너무 정치적인 선택이 아니었냐”는 투의 비난마저 들리는 건 교수사회가 그만큼 심각한 도덕불감증에 빠져있다는 증거다.

“우리 대학 A등급 나왔다" 자랑 … 등급·서열문화 체화한 교수들

교육부는 2023년을 기점으로 대학구조개혁 평가를 종료한다고 예고했다. 평가가 끝난다고 학문자율성이 시작되는 건 아니다. 이 기간 동안 ‘교수 TO’ 1만여 개가 없어질 거라는 통계청의 분석은 교수들에게 다시 한 번 생존게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각인시켜준다.

국공립대 교수들은 2012년만 해도 교육부의 국공립대 선진화정책에 반대하며 ‘교육부 장관 퇴진운동’을 벌였다. 최근엔 교육부가 전국 200여 개 대학을 대상으로 등급을 매겨 재정지원을 끊고 퇴출시키는 정책을 밀어붙이는데 그 누구도 ‘교육부 장관 퇴진’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오히려 총장들은 앞다퉈 “다음 평가를 잘 받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당시 교육부 장관 퇴진운동을 주도했던 이병운 부산대 교수는 교육부가 게임이론(분리정책)을 쓰고 있다고 말한다. 이 교수는 “평가가 잘 나온 대학과 못 나온 대학이 있다. 평가가 아무리 불공정하고 불합리하다해도 잘 나온 대학의 경우엔 평가를 비판하는 데 동조할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북대의 D교수는 이런 상황을 실제로 목격했다. D교수는 “얼마 전에 한 학회에 갔더니 교수들이 서로 ‘몇 등급 나왔냐’며 얘길 나눴다. A등급 대학의 소속교수가 자랑하듯 말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교수들도 신뢰할 만한 평가가 아닌 줄 알면서도 스스로 등급·서열의 굴레에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구조조정 불가피론’을 내세우며 대학정책을 충실히 이행해야한다는 교수들의 주장엔 대학의 현실이 예전과 달라지고 있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1995년 5·31 교육개혁조치로 인해 대학 수와 입학정원이 순식간에 늘면서 대학의 기능과 문화가 달라졌다는 분석인데, 이는 1990년대 한 차례 대학개혁을 단행한 일본도 비슷한 현상을 겪었다.

일본은 1990년을 전후로 대학정원 규제를 완화하면서 사립대가 우후죽순 생겨났지만 당시 학령인구는 감소세로 돌아서고 있었다. 대학의 진입장벽이 낮아져 보편교육이 가능해졌다는 평가를 내렸지만 얼마못가 대학의 질적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심각하게 제기됐다.

요시미 순야 도쿄대 교수는 저서 『대학이란 무엇인가』(서재길 옮김, 글항아리)에서 밝혔듯 일본 역시 ‘대학의 놀이공원화’라고 부르며 대학교육의 질을 우려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 같은 시장원리를 수용했다. 

이에 관해 요시미 교수는 “애초에 대학에서 진지하게 배울 생각이 없는 학생이 늘어나면, 학생의 ‘상식’또한 변화해 대학은 ‘학문’과는 무연한 ‘테마파크’가 될 수밖에 없다. 자유로운 대화나 엘리트 양성기관이라는 말에 걸맞지 않게 이제 대학은 ‘학력’획득만을 목적으로 취직 전의 젊은이들이 들어와 잠깐의 휴식을 즐기는 관문이 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매년 상당한 수준의 업적평가를 요구받으면서도 교육과 연구, 보직에 이르기까지 ‘만능’을 기대하는 대학의 평가문화 속에서 교수들은 지쳐가고 있다. 어느덧 제자들에게도 학문탐구란 말 대신 취업전략을 가르쳐야 하는 교수들. 그러나 일부 교수들 사이에서 “사회가 변하고 대학의 기능도 달라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교수 본연의 역할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해야할 때”라는 의견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

1989년 연세대출판부가 펴낸 신입생을 위한 길라잡이 『대학의 뜻』에서도 학문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 대학과 교수들이 정치 개입에 맞서야 하는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에서 이규호 전 연세대 교수는 ‘대학과 학문의 자유’라는 글을 통해 “학문이 경제나 정치의 요청에 따라서 그의 연구를 조정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한 실용적인 합목적적인 학문연구에는 한계가 있다”며 “정치권력이 교육과 대학에 개입하는 것을 거부하는 대신에 대학의 공동체를 이루는 교수들과 학생들도 정치의 자율성을 상대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됐다. 이러한 대학과 정치 사이의 일종의 ‘신사협정’의 경향은 서구 대학의 역사뿐 아니라 옛 성균관의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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