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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과 責務
침묵과 責務
  • 이영수 발행인
  • 승인 2015.09.21 1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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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이영수 발행인
▲ 이영수 발행인

두 가지 설문조사를 환기해보겠습니다.

하나는 올해 <교수신문> 창간 23주년 기념 설문조사입니다. ‘지금, 대학교수로 살아간다는 것’이란 설문조사에 교수들의 80%가 교수 위상이 낮아졌다고 응답했습니다. 나아가 교수들은 자신들을 지식인이 아닌 ‘지식기사’라고 규정했습니다. 당시 이를 보도했던 1면 기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2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대학교수의 위상이 낮아지고 있음을 절감하는 교수가 급증했다.”
 
또 다른 하나는 <교수신문> 창간 22주년 기념 설문조사입니다. ‘교육부 대학구조개혁 평가 인식조사’라는 제목의 이 설문조사는 대학 기획·교무처장과 교수회 회장, 대학평가 전문가 등을 대상으로 진행한 것이었습니다.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학구조개혁 평가’에 대해 이들은 어떤 의견을 내놨을까요?

87.4%가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 평가는 모든 대학을 하나의 잣대로 평가해 대학의 개별 특성과는 반대로 오히려 ‘획일화’하고 있다고 응답했으며, 66.3%는“정부 주도의 획일적 대학평가는 대학의 질적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지나간 설문조사를 다시 복기하는 것은 두 설문조사의 응답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교수들 스스로 전문적인 지식인으로서의 위상 변화를 체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부가 주도하는 대학구조개혁평가와 같은 접근이 오히려 대학의 질적인 발전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진단을 내놓을 정도로 ‘문제 상황’을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난 18일(금) 1천여 명의 교수들이 국회 앞에서 전국교수대회를 열었습니다. 전국교수대회에 참가한 교수들은 △국립대 선진화 방안 철폐 △국립대 총장선출 자율성 보장 △대학평가제·구조개혁법 폐지 △사립학교법·시간강사법 폐지 등을 요구했습니다. 교수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대학 자율성 회복을 촉구했다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특히 ‘대학평가제·구조개혁법 폐지’와 같은 문제제기는 만시지탄은 있지만, 중요한 교수사회의 발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철폐’, ‘폐지’와 같은 단어들만으로는 지금의 ‘문제 상황’을 넘어서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철폐’, ‘폐지’라는 말이 가리키는 ‘제도’에는 ‘동의된 침묵’이 일정부분 내포돼 있을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한 우리 교수사회의 성찰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용기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드높은 정신의 문제입니다.

저는 이러한 ‘문제 상황’ 인식과 관련, 다시 한 번 우리 교수사회 내부의 성찰과 새로운 실천의 필요성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바로 이 지면을 통해 “그러면 어디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을 것인가. 장기적으로 자리를 지키며, 궁극적으로 교육과 연구 성과를 책임져야 하는 교수 개인에게서 찾아야 한다. 이는 교수의 명예와 공인 의식을 발동하는 일이다”(<교수신문> 796호 「대학정론」, 민경찬 논설위원), “제도와 규제를 탓할 일이 아니다. 교육부의 비정상으로부터 대학의 자율성을 지켜내는 일도 교수들의 막중한 책임이다”(<교수신문> 797호 「대학정론」, 이덕환 논설위원)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수들 스스로가 새로운 희망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는 외부의 어떤 강제들로부터 대학의 자율성을 지켜내는 일도 포함될 것입니다. 물론 교수사회는 다양한 진폭을 지닌 특수한 사회인지라, 한층 더 미시적인 다양한 의견과 주장, 철학, 방법론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언제까지나 교수의 위상이 낮아지고 있다고 푸념하면서 무기력하게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대학 환경이 너무나 빨리 변화하고 있고, 설익은 ‘실용주의’가 대학을 지배하면서 웅숭깊은 사유로 단련된 대학의 철학이 침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영수 <교수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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