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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당연구 총서’가 ‘六堂學’으로 一步 진전하려면
‘육당연구 총서’가 ‘六堂學’으로 一步 진전하려면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09.16 14: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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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 『최남선과 근대 지식의 기획』 육당연구회 지음|현실문화|576쪽|32,000원

‘총서’의 구성에 새겨진 틈의 문제. 즉, ‘모노그라프’ 기획이 여전히 결여돼 있다. 특히 제2권도 그간 연례 학술회의에서 발표한 것들을 취합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좋게 말하면 “육당 저술의 다양함처럼 학제 간 영역을 넘어 언문학 분야를 총합한 연구 논문집”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여전히 ‘총서’로서는 미완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하는 게 적확할 것 같다.

 

한국 근대 지식의 거인이 누구냐고 했을 때, 그 목록에 육당 최남선을 올리는 데 이견은 없을 듯하다. 2009년에 『최남선 다시 읽기: 최남선으로 바라본 근대 한국학의 탄생』(육당연구회 지음, 현실문화 刊)이 나왔을 때, 이 책은 ‘육당연구 총서 제1권’이란 딱지를 붙이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 ‘육당연구 총서 제2권’으로 『최남선과 근대 지식의 기획』이 출간됐다. 늦은 감은 있지만, ‘최남선 다시 읽기’는 한국 근대 문화사와 지성사뿐만 아니라 근대 지식 그 자체의 형성과 성장을 읽어낼 수 있는 의미 있는 작업으로 평가할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듯, 한국에서 근대 지식의 구성은 복잡한 역사적 과정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육당의 행적은 다방면에 걸쳐 있다. 그는 동서고금의 학문에 박식했던 학자였고, 신체시를 개조한 시조시인이었으며, 신문물과 신문화를 빠르게 받아들여 계몽을 외친 문화운동가였다. 신문사를 꾸리고 논설을 쓰던 언론인이었으며, <소년>, <청춘> 등의 잡지와 ‘육전소설’ 등을 비롯해 많은 책들을 펴낸 출판사 경영인이자 동시에 뛰어난 편집자였다. 그뿐인가. 3·1운동의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민족대표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만큼 육당은 다양한 학제간 영역을 넘나들며 과거의 유산들을 새롭게 번역하고 민족의 정통성을 보존하고 선양하는 한편, 새로운 문명·문화를 도입하며 근대를 기획했던 문제적 인물이다.

말년의 그가 보여준 ‘친일행적’ 또한 지성의 반면교사 사례가 된다. 그의 친일행적은 역사적 사실로 규명해야할 부분이지만, 이것 때문에 그가 시도했던 ‘근대의 기획’, 한국 근대 지성사에 드리운 그의 족적을 폄하하는 건 곤란하다. 육당연구회가 ‘최남선 다시 읽기’를 내세운 것도 이러한 사정 때문이리라. “최남선이라는 문제적 텍스트를 깊이 읽어내 넘어서지 않고서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에 이르는 근대 시기의 한국 사회 및 지성사에 대한 질문에 제대로 된 대답을 내놓을 수 없다”는 이들의 지적은 십분 공감할 수 있다.

‘최남선, 계몽에서 근대적 지식으로의 이행을 사유할 때 반드시 넘어서야 할 문제적 텍스트’로 규정한 육당연구회가 내놓은 제1권 『최남선 다시 읽기』가 육당을 한국학, 미디어, 사상, 신화와 정치 측면에서 조명했다면 2015년의 제2권 『최남선과 근대 지식의 기획』은 1권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구체적 영역을 탐색하는 데 시선을 맞췄다. 시가 담론, 고전정리사업, 비교사상사, 민족문화와 세계문화, 출판 등으로 깊어진 게 그렇다.

이번 총서 2권 출간에 참여한 이들은 김용직(서울대), 서철원(서울대), 윤설희(건양대), 이중구(서울대), 김남이(부산대), 임상석(부산대), 이상현(부산대), 이준환(창원대), 최재목(영남대), 류시현(광주교대), 전성곤(북화대), 윤영실(교토대), 조재룡(고려대), 박진영(연세대), 이경현(서울대), 김영남(성균관대), 고정일(소설가), 최명주(육당 손녀, 마리아장학회 회장) 등이다. 국문학, 철학, 불문학, 역사학 등이 참여했다.

제4부에 수록된 「변증법적 세계관의 한 실험방식: 번역, 그리고 최남선」에 나타나는 조재룡의 문제의식은, 조심스럽게 읽어나가야 하지만, 어쩌면 총서 제2권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는 이렇게 썼다. “식민지의 지식인이라는 선명한 의식이 한켠에 존재하는 동시에 자신이 근대적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사유, 즉 조선에 들여오고 많은 이들에게 보이고 싶어했던 거개의 사상과 문학을 갖고 있는 장소가 바로 일본이라는 모순적인 상황으로부터 빚어진 비극적 세계관과 맞서 최남선은 어떻게 싸움을 해나간 것인지를 물어야 한다.” 이 탐색이야말로 ‘육당연구 총서’가 놓일 수 있는 자리가 아닐까.

그러나 이 책의 출간은 두 가지 점에서 성찰을 요청하기도 한다.

먼저, 육당 최남선이란 근대의 거인에 관한 본격적인 학제적 접근이 2000년대에 와서야 가능했다는 것. 이는 그간 ‘한국학’ 혹은 ‘국학’의 연구자나 연구환경 등 기본토대가 매우 척박하고 빈약했음을 방증하기도 한다. 육당 자신이 일구고 개척한 영역이 시가, 언어, 역사, 사상, 출판 등 다양했음을 기억한다면 ‘학제적’ 연구는 좀 더 일찍 시작했어도 좋았다.

다른 하나는 ‘총서’의 구성에 새겨진 틈의 문제. 즉, ‘모노그라프’ 기획이 여전히 결여돼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제2권도 책의 머리말에도 나와 있듯, 그간 연례 학술회의에서 발표한 것들을 취합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이것은 좋게 말하면 “육당 저술의 다양함처럼 학제 간 영역을 넘어 언문학 분야를 총합한 연구 논문집”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총서’로서는 미완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하는 게 적확할 것 같다.

이 두 가지 측면은 서로 모순된다. 학제적 접근을 내세웠지만, 기획을 통한 공동연구의 그물에서 육당 지식의 전모를 읽어내는 작업이 아직 답보에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특히 제2권 『최남선과 근대 지식의 기획』은 ‘머리말’을 제외하면, 전체 논문의 視座를 엮어주는 논의가 하나도 없다. 이건 무성의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런 무성의는 육당의 논저 목록을 비롯해 최근까지의 연구 논문 전체 리스트를 부록으로 담아내지 못한 데서도 드러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제2권의 디딤돌 같은 역할과 의미가 퇴색하는 건 아니다. 실제 육당연구학회 최박광은 “글들을 한데 엮고 보니 앞으로 할 일들이 더 또렷하게 보이는 듯하다. 연구 총서 제3권부터는 지금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논의한 것들을 토대로 삼아 ‘육당학’을 더욱 심화해 나아가는 것이 본 학회의 목표다”라고 밝혔다. ‘육당학’의 모습이 조만간 윤곽을 드러낼 것이라는 시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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