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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분석 뒤 10년 … 생물학은 누구에게 이익을 주는가
유전자 분석 뒤 10년 … 생물학은 누구에게 이익을 주는가
  • 김동광 고려대 연구교수·과학기술사회학
  • 승인 2015.09.16 14: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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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급진과학으로 본 유전자, 세포, 뇌』 힐러리 로즈·스티븐 로즈 지음|김명진·김동광 옮김|바다출판사|456쪽|25,000원

로즈 부부는 황우석 사건을 상세히 다루면서 우리에게 외부자의 관점을 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황우석의 발견을 내세워 이 분야를 띄우고 연구비를 더 얻어내려 했던 미국의 도널드 케이디와 영국의 수지 레더 등의 열광주의자들에 대해 더 날을 세웠다. 저자들은 <사이언스>의 심사과정을 통과한 논문을 한국의 과학자들이 검증해서 철회시킨 과정을 높이 평가했다.

 

사람의 유전체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인간유전체계획이 끝난 것이 2003년이니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그렇다면 생로병사의 비밀을 모두 풀고 인류를 질병에서 해방시켜주기라도 할 것처럼 요란했던 당시의 약속은 얼마나 실천됐을까. 10주년을 전후로 이뤄진 평가는 대체로 냉정하다.

확실한 줄기세포 시술 광고문이 붙어있다. 이른바 ‘소매 유전체학(retail genomics)’도 세계화 바람을 타고 침 시료에 근거해 개인의 유전체 스캔을 제공해서 최대 100가지 질병에 대한 소인을 밝혀주는 장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2011년 J.P 에반스와 동료 과학자들은 <사이언스>에 실은 「게놈 거품을 빼다(Deflating the Genomic Bubble)」라는 글에서 일부 닷컴 기업들이 일으키고 있는 ‘기대의 거품’을 현실적으로 파악하지 못하면 유전체 연구가 자칫 정당성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세계화로 인한 과학연구의 외주화(outsourcing) 경향은 생의학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생명윤리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의 경우, 오늘날 거의 모든 대규모 생의학 프로젝트들이 직원 내지 컨설턴트로 고용된 전문 윤리학자를 두고 있다. ‘윤리’는 연구자들이 자신의 연구 과정에 내화시켜야 할 무엇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이른바 ‘하청화된 윤리’로 전락해가고 있는 셈이다. <네이처>는 「E로 다이얼을 돌리세요(Dial E for Ethics)」라는 기사에서 미국과 유럽 대학의 생의학 연구자들이 생명윤리가 필요하면 E에 다이얼을 돌리면 된다고 자랑스레 평했다.

사회학자인 힐러리 로즈와 그녀의 남편인 생물학자 스티븐 로즈의 『급진과학으로 본 유전자, 세포, 뇌』는 생물학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러한 현상들을 그 근원에 해당하는 환원주의의 문제에서 시작해서, 다윈의 진화론과 현대적 종합에서부터 인간유전체계획(HGP)을 거쳐 최근의 신경과학 열광주의에 이르기까지의 흐름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하려고 시도했다. 이미 팔순의 나이에 접어든 로즈 부부는 1960년대 급진과학운동(radical science movement)을 주도했던 당사자들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유전자 중심주의와 사회생물학적 설명에 대한 과도한 기대의 거품을 비판적 시각에서 깊이 있게 성찰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다.

급진과학이나 급진과학운동은 그동안 국내에서도 과학사나 과학기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소개하려고 많이 노력했던 분야지만, 아직도 우리에게는 낯설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급진과학운동은 20세기 중반 이후 과학기술에 대한 인식 변화를 잘 보여주는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그동안 과학기술이 인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계몽주의 이래의 낙관적 믿음에 찬 물을 끼얹었다. 특히 1차 세계대전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됐던 독가스와 2차 대전 막바지에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은 그동안 ‘과학=이성=서구 문명’이라는 유럽의 오랜 자부심을 송두리째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원자폭탄의 파괴력을 실감한 아인슈타인과 라이너스 폴링을 비롯한 과학자들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촉구했다. 과학 자체는 문제가 없고 誤用의 문제일 뿐이라는 다소 순진한 발상에서였다.

그러나 60년대 이후 우생학을 비롯해서 생물학이 지닌 이데올로기적 편향에 대한 비판이 시작되면서 과학 자체가 국가나 자본의 지배를 정당화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인식에 의해 과학의 이념, 방법론, 인식적 기반, 실행양식 등을 총체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이것은 1960년대를 휩쓸었던 유럽의 68운동, 미국의 반전운동과 평화운동, 대항문화 등 기득권과 불평등을 고착시키려는 기성 지배 체제의 이데올로기를 전복하려 했던 움직임이 과학 분야에서 표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970년 후반 이후 수립된 과학기술사회학 등의 과학기술학도 이러한 급진과학운동의 문제의식과 실천적 움직임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부제 ‘누가 통제하고 누가 이득을 보는가’에서 잘 드러나듯이 저자들은 생물학을 둘러싸고 나타난 그간의 전개과정에서 이득을 보는 쪽이 누구인가를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과학이 발전하면 모든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는 보편성 가정을 하지만, 급진과학은 ‘과학은 보편적인 제도가 아니며 과학이 발전하면서 오히려 불평등이 심화되고, 그 피해가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게 집중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1970년대 이후 생물학으로 인간의 심성과 도덕, 나아가 사회까지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이 크게 유행을 타고 있다.

그러나 로즈 부부는 “누가 생물학적 결정론의 대가를 치르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하면서 이런 흐름들이 결국 누구의 주머니를 불려주는가라는 생명정치의 관점을 촉구한다. 거대제약회사들은 과거에 질병의 범주에 속하지 않았던 여러 가지 특징들을 질병화해 사람들이 매일같이 복용해야 하는 이른바 ‘블록버스터급’ 약품으로 천문학적 이득을 누리고 있다. 반면 황우석 사건에서 잘 드러났듯, 줄기세포 광풍의 희생자는 난자를 매매했던 돈 없는 여성들이었다. 저자들은 1990년대 이후 ‘뇌의 시대’를 선포하고 정신병이나 신경질환의 정복을 넘어 도덕성, 종교적 경험까지 설명해내겠다는 신경과학의 열광주의가 또 어떤 희생자들을 낳을지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로즈 부부는 황우석 사건을 상세히 다루면서 우리에게 외부자의 관점을 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물론 저자들은 한국에서 일어났던 무분별한 도취를 냉정히 비판했지만, 황우석의 발견을 내세워 이 분야를 띄우고 연구비를 더 얻어내려 했던 미국의 도널드 케이디와 영국의 수지 레더 등의 열광주의자들에 대해 더 날을 세웠다.

저자들은 한국의 생명윤리학계가 일찍부터 윤리적 규정을 만들었고, <사이언스>의 심사과정을 통과한 논문을 한국의 과학자들이 검증해서 철회시킨 과정을 높이 평가했다. 서구 언론이 황우석을 둘러싼 애국주의 열풍에 초점을 맞췄지만 “한국 학계는 본보기가 될 만한 방식으로 행동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과학계가 황우석의 논문사기 사건을 사과 상자에 으레 하나쯤 들어있는 썩은 사과로 치부하고 다분히 아시아적 사건이라는 인종차별적 관점을 동원해서 줄기세포를 ‘구해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서점의 과학 코너에 진열된 책들 중에는 사회생물학이나 사회생물학의 우생학적 연상작용을 꺼려 개명한 진화심리학 분야의 책들이 큰 비중을 차지해 왔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과학분야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빠지지 않고 있으며, 최근에는 신경과학이 새로운 열광주의를 낳고 있다.

사회과학이나 인문학에서 이런 주장을 가져다 자기  분야의 설명력을 높이려는 시도도 심심찮게 나타난다. 물론 이런 흐름이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측면도 있겠지만, 로즈 부부가 제기하는 “누구에게 복무하고 누구에게 이득이 되는가?”라는 물음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김동광 고려대 연구교수·과학기술사회학

독문학을 공부하고 뒤늦게 고려대 대학원에서 박사를 했다. 고려대 BK21 플러스 휴먼웨어 정보기술사업단 연구교수로 있다.『사회생물학대논쟁』(공저) 등을 썼고,『부정한 동맹』,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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