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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가는 사립대 총장선임제도
거꾸로 가는 사립대 총장선임제도
  • 이재 기자
  • 승인 2015.09.15 15: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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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국민대 총장선임제도 손질 … 구성원은 반발

교육부가 국립대의 총장직선제를 폐지시키기 위해 전방위적인 압력을 가해온 것으로 드러난 가운데 사립대 곳곳에서도 학교법인이 총장직선제를 폐지시키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최근 학교법인 연세대학교는 연세대의 총장선출과정에서 교수회의 인준투표를 폐지한다고 공식 발표했고, 일부 대학도 학교법인의 입맛에 맞는 총장을 선출하기 위한 제도 개정을 서두르고 있어 마찰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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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수 현 총장의 임기만료가 6개월여(2016년 3월) 앞으로 다가온 국민대가 대표적이다. 학교법인 국민학원은 지난 6월 이사회회의에서 총장선출과정 중 ‘총장후보자평가위원회’를 ‘총장후보자추천위원회’로 개정하기로 했다.

총장후보자평가위원회는 이 대학 교수회의 주관 아래 진행되는 과정으로, 총장후보자들이 정견을 발표한 뒤 교수들의 투표에 따라 순위를 매기는 절차다. 반면 총장후보자추천위원회는 대학 내 각 구성원들이 추천한 교수 10명을 추천위원으로 삼아 후보자를 평가토록 하는 것이다. 기존 절차에서 교수들의 투표를 삭제해 법인의 영향력을 높이는 것이다. 

학내에서는 이미 반대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이 대학 교수협의회는 기존의 평가위원회를 유지하라는 입장을 수차례 밝혔고, 직원노동조합이나 총학생회는 보다 '민주적이고 투명한 절차'로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조합은 특히 개정을 통해 총장선임과정에 직원이 참여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총동문회장이자 국민학원에 개방이사로 참여하고 있는 윤종웅 이사는 이사회회의에서 “10인의 추천위원회가 제대로 된 후보평가를 내릴 수있는지 의문”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국민대의 총장선임절차 개정이 마찰을 빚는 배경은 이뿐만이 아니다. 대학 구성원 일부는 이사회가 총장선임제도를 개선하려는 목적이 현 유지수 총장의 재임에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들은 개선안에서 총장의 연령제한 조건이 삭제된 것이 유지수 총장의 재임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행 국민대 총장선임제도에 따르면 총장후보는 총장의 임기를 마친 뒤 정년(65세)이 지나지 않아야 한다. 유지수 총장은 1952년생으로, 다음 총장에 선출될 경우 임기가 끝나는 2020년에는 68세가 된다. 현행 제도에 따르면 후보 자격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사회에서 논의된 개정안에 따르면 총장으로 선임될 경우 정년이 자동으로 연장되므로 유지수 총장 역시 재임에 제한이 없어진다. 

공교롭게도 현행 총장을 연임시키기 위한 총장선임제도변경은 연세대와 같다. 연세대는 지난 7일 이사회회의를 열고 총장선임과정에서 인준투표를 삭제하기로 결정했다. 인준투표는 이사회가 결정한 총장후보에 대해 교수와 직원들의 의견을 묻는 절차다. 인준투표에서 부결되면 총장이 될 수 없어 사실상 직선제나 마찬가지다. 연세대는 이절차가 총장의 독립성을 해친다며 폐지를 일방적으로 결정했다. 

총장직선제를 운영하던 대학이 간선제로 바꾸거나 간선제를 운영하던 대학이 공모제를 채택하는 것은 이미 사립대에서는 흔한 사례다. 주요 사립대 가운데 총장직선제를 운영하는 대학은 한국외대 등 손에 꼽을 정도에 불과했다. 또 다른 문제는 총장선임과정에서 구성원의 목소리가 배제된다는 것이다.

주요 사립대 28곳을 살펴본 결과 총장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한 대학 15곳 중 교수와 직원, 학생이동등한 비율로 참여한 곳은 계명대, 조선대 등 두 곳에 불과했다. 대신 법인이 추천하거나 학교법인 이사가 직접 후보추천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한 대학은 건국대, 광운대, 고려대, 국민대, 동국대(조계종), 서강대(예수회), 숭실대, 영남대, 원광대, 이화여대, 인하대, 한양대 등 12곳이었다. 교수와 직원은 대부분 참여가 가능했지만 대표자 수가 두 배 이상 벌어지는 경우도 흔했다. 

반면 국민대, 대구대, 영남대, 원광대, 이화여대, 인하대, 한양대 등 7곳은 총장후보추천위원회에 학생대표가 참여할 수 없는 구조다. 이밖에 경희대와 단국대, 명지대, 성균관대, 성신여대, 세종대, 아주대, 중앙대, 한남대 등 9곳은 학교법인이 총장임면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최근 이사회 회의를 통해 인준투표를 폐지한 연세대와 총장선임제도 개정에 나선 국민대까지 포함하면 11곳이 대학 구성원의 합의 없이 총장을 학교법인이 임명하는 셈이다. 

이처럼 국내 사립대의 총장선임제도는 법인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가운데 일부 교수들의 견제나 참여가 이뤄지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이 때문에 사립대 총장 선임시기가 되면 항상 법인의 일방적인 총장선임과 이에 반발하는 교수·직원·학생의 대립구도가 만들어졌다.

박순준 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이사장은 “(사립대에서조차) 총장직선제는 고사하고 총장후보 자격을 명문화하자는 의견도 묵살돼왔다. 학교법인의 입맛에 맞는 총장만 임명됐다. 이런 부조리를 뿌리뽑기 위해서는 총장 선임 때 후보를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하고, 이런 것들로 학교법인의 건전성을 평가할 수 있는 사립대 학교법인 평가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재 기자 jae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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