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따리 꽁꽁 봉해버리고 ‘고려장’ 택했다
보따리 꽁꽁 봉해버리고 ‘고려장’ 택했다
  • 서용좌 전남대 명예교수·소설가
  • 승인 2015.09.15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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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좌의 그때 그 시절 ② 보따리장수

최근 대학구조조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강의실이 ‘취업준비반’으로 변하고 있다. 여기에 각종 평가지표들이 강의실을 꽁꽁 옭아맨 채 끊임없이 감시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강의현장이 절실한 시점이다. 원로급 교수의 생생했던 강의실 풍경을 재조명해 고등교육이 진정으로 추구해야할 것들이 무엇인지, 끊임없는 평가와 경쟁 속에 대학이 놓치고 있는 건 없는지 돌아본다.

 

▲ 일러스트 돈기성

여름의 정점에서 산업수요에 맞게 학사구조를 조정하는 대학에 정부가 많게는 300억원까지 지원하겠다는 ‘청년 고용절벽 해소 종합대책’이 나왔다. 무슨 종합선물세트도 아니고, 명실공히 대학은 취업준비과정이 될 모양이다. 

대학생은 취준생의 다른 이름이다. 학문과 교수에 대한 ‘합리적인’ 평가기준이란 곧 취준생의 취업률이다. 오늘날 합리적인 일이란 같은 일을 하면서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을 일컫게 됐다. 강의라는 같은 일을 하면서도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강사는 필히 교수가 돼야 한다. 

같은 교수로서도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교수는 필히 논문을 많이 써야 한다. 성과급에는 돈만이 아니라 자긍심도 달려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저자 문제나 표절 논란이 필히 따른다.

합리적인 교수라면 각각 하나씩 논문이 아니라 둘이서 두 개의 공동논문을 제출하는 것이 좋다. 원래는 ‘선함’인데 여기서는‘유리함’이다. 보직 또한 이타심과 봉사점수라는 두 선의 염기서열이 ‘창조’해낸 가치 중의 하나다.

그래봤자 그 성공은 표면적 평가요, 잠정적인 판가름일 뿐이다. 강단에 서는 사람들 마음 속 저 깊은 곳에는 허무의 심연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강의가 끝나기 무섭게 빠져나가는 학생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교수란 보따리장수 다름이 없다는 확인이다.

유용한 첨단지식을 파는 경우라 해도, 토플러의 말마따나 그것은 어느 시점에서 ‘무용지식(obsoledge)’이 된다. ‘검색’은 살인적 권위로 지식사회를 뭉개고 말았다. 와중에 문학사나 강의하다보면 이 낡은 물건짝을 팔러 다니는 신세가 처량해지곤 한다. 그걸로 밥을 먹으니 조용해야 하는가, 그건 다른 문제다. 보따리장수라 하더라도 제 물건이 무엇인가는 알려야 할 것 아닌가. 내 고민은 내가 파는 물건이 외국문학이라는 데 있었다. 

‘문학작품은 인류의 최고의 자산들 중의 하나이고 거기에 시대와 국경은 없습니다.’ 

옳다, 그렇게 강의 할 수 있었을 동안은. 시금석이란 변한다고, 학생들이 대들면, 시금석은 불변이므로 시금석이라고 우겼다. 학생들은 점점 (독일)문학이 주는 양분을 흡수하지 못했다. 훌륭한 ‘스펙’을 위해 집어 삼킨 유용한 지식들로 영양과잉 상태에 이른 뒤로는, 문학 같은 것은 ‘갈아 먹여도’ 못 먹었다.

독일문학 작품들을 갈아 먹인다는 말은 번역본으로 읽는 것은 기본이다. 정신만 읽어도 되니까. 한국 작품을 전채요리로 맛보게 하는 것도 포함된다. 그러다가 또 꼬인다.

“일본이 그렇게 일찍 망할 줄 몰랐었다니, 그게 변명이 됩니까? 영원할 줄 알고 충성했다니, 더 기가 막히죠!”“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하사 우리의 자랑. 조선 경기도 개성 사람 인씨의 둘째 아들 스물한 살 먹은 사내…… 원수 영미의 항공모함을 그대 몸뚱이로 내려쳐서 깼다고 칭송을 바쳐요? 가미카제가 돼 승천하라니! 이런 정신 나간 사람이 생명파라뇨! 생명이 뭔데요?”

이렇게 대드는 학생 때문에 강의는 그만 삼천포로 빠진다. 그래도 교수를 당황하게 하는 학생들은 훨씬 나았다.

보따리 풀기가 나오면 끝도 없다. 1919년 베를린에서 ‘프롤레타리아 예술동맹’이 결성 된 이래 ‘프롤레타리아 극장’은 노동자의 의식고취를 목적으로 놓고 사회민주주의 계열의 ‘폴크스뷔네(민중무대)’과 경쟁을 벌였지요. 그 무렵 우리나라에선 ‘카프’라는 약자로…. 한국인 독문과 학생들이 카프와 카프카의 구별에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학생들은 어떤 정보에도 무감각을 드러냈다. 교수가 풀어놓는 보따리 내용물은 오직 기말고사 답안지 작성에 필요할 뿐임을 그 눈빛들을 보면 안다. 그런데 아예 눈빛을 볼 수 없는 시기가 닥쳐왔다. 어떤 보따리를 풀어도 그들의 관심을 돌릴 길이 없었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이 아니라, 애타는 환상에 젖어있다. 높은 학점, 최고의 스펙, 빠른 취업이 가져다 줄 무한 행복. 세계가 한 뭉텅이로 글로벌 스탠더드에 입각해서 글로벌경제로 살아가고 있는 시대에, 나는 그들의 경제마인드를 어찌할 길이 없었다.

결론은 스스로 보따리를 꼭꼭 봉해버리는 일, 자발적인 고려장이었다. 사형집행일을 앞둔 사형수들에게도 기어코 ‘미리’ 자살하려는 강한 욕망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많은 자살자들은 사회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은 느낌 때문에 자살한다.

서용좌 전남대 명예교수·소설가
전남대 독일언어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하인리히뵐학회장, 한국독어독문학회부회장 등으로 활동했다. 『도이칠란트·도이치문학』등을 썼다. 퇴임 후 소설집 『반대말·비슷한말』, 장편소설 『표현형』 등을 내고 PEN문학활동상, 광주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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