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21:45 (토)
갈등과 편견
갈등과 편견
  • 김춘옥 단국대 명예교수·언론학
  • 승인 2015.09.15 11: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원로칼럼] 김춘옥 단국대 명예교수·언론학

경영학 교수 “이봐 , 싸우면 양쪽이 다 손해야”
의류학과 교수 “야, 옷 찢어질라”
아동교육학과 교수 “아휴, 애들이 보고 배울라”
신문방송학과 교수 “남들이 보고 있다는 거 몰라”
신학과 교수 “우리 기도합시다…”
경제학과 교수 “이런 돈도 안 되는 녀석들”
법학과 교수 “너희들 다 구속영장 감이야”
사진학과 교수 “야, 인마 니들 다 찍혔어”

교수사회에 내재해 있는 갈등의 가장 큰 원인은 각각의 전공이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편견 때문이라고 누군가 주장했다. 조금은 무책임하고 피상적인 이 주장에 따르면 교수들은 전공에 따라 사안을 달리 인식한다는 것이다. 즉 교수들이 갖고 있는 이성적 판단의 패러다임은 일차적으로는 그들이 전공에 따른다는 것이다. 감성적 패러다임이라는 것도 있다면 성장환경, 유전자 등이겠지만. 앞서 인터넷에 떠도는 학생들이 싸우는 모습을 본 교수들의 조금은 과장된 모습을 소개해봤다.

언론인에게는 사회정의 실현이라는 임무가 주어진다. 명목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받아들이겠다. 기업인들이 사안을 판단하는 패러다임은 이익을 극대화 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그런데 교수들에게 주어진 학문연구와 제자육성이라는 임무는 칸트의 진리 찾기와 마찬가지로 추상적이고 ‘우주적’인 가치처럼 보인다. 교수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는 너무 크고 넓고 깊어 구체적인 행동가치를 규정하기 어려워서일까. 교수들에게는 추구해야할 공통의 가치가 없어 보이다.

교수들이 갖고 있는 편견은 뿌리가 깊고 고쳐지지 않는 ‘견고한 성벽’과도 같아 그들 사이의 갈등은 당연한 것이고 고칠 수 없는 것이라고 누군가는 말한다. 정확하게 말해 ‘거의 모든 교수(95%)’인지 ‘많은 교수들(80%)’ ‘대다수 교수들(70%)’ '상당수 교수들(40%)' 인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갈등은 대학 내 도처에서 나타나는 것은 틀림없다. 공식적인 통계는 물론 없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이런 우스갯소리도 나돌지 않았나?

‘인문대 소속 교수들은 갈등이 생기면 평생 말도 안하고 등지고 산다. 사회과학 전공 교수들은 면전에서는 예를 갖춘 듯 보이지만 등 뒤에서 칼을 꽂는다. 공대 교수들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한밤 중에 (한강 백사장으로 불러내서) 심야의 결투를 해 끝을 본다.’

선택적 지각이론에 따르면 편견은 인간이 여러 가지 정보 중에서 몇 가지만 선택해서 생긴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정보만을 취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마이클 샌댈 교수의 아들 에덤 샌댈은 『편견이란 무엇인가』라는 저서에서 ‘사전에 이루어진 생각’즉 편견은 진리나 객관성과는 멀리 떨어져 있음을 철학자의 사상을 통해 입증하고 있다. 20세기 사회과학에서 객관성을 불가능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하더라도 편견은 객관성을 방치한 생각이라는 것이다. 칼 포퍼는 어떤 주장이 과학의 범주에 포함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그 주장이 틀릴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해야 한다는데, 편견이란 틀렸다는 것에 대해서 바꾸지 않고 고집을 하는 것으로 정의하면서 반증가능성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또 가다머는 편견이 지식을 생산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편견은 진리나 객관성에 가깝도록 사안을 인식하고 반증 가능성을 높인다면 사라질 것이다. 구체적으로 대화, 수정 을 통해 편견을 없앨 수 있다고 에덤 샌댈은 강조한다. 교수들의 경우에는 더 깊은 학문적 지식을 쌓아 진리에 가깝게 간다면 편견을 없앨 수 있지 않을까. 각각의 학문은 진리라는 깊고 깊은 블랙홀을 통해 서로 통한다니까.

 

 

김춘옥 단국대 명예교수·언론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