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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6호 새로나온 책
제796호 새로나온 책
  • 교수신문
  • 승인 2015.09.07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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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근대 비판은 근대 일본에 대한 비판으로도 통하는데, 양자를 동시에 실천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내재적 발전론은 첨예하게 근대 일본을 비판했지만, 조선과 일본의 동질성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근대로 향하는 속도에는 그다지 차이가 없다고 했다. 그렇다고 한다면 논리적으로 근대 일반은 반드시 비판받아야 할 것이 아닌데, 근대 일본을 비판해야 한다는 것은 조선의 내재적 근대화를 저해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한국 근대사 연구가 근대의 주술로부터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근대를 상대화하기 위해 어떠한 역사인식이 필요한 것인가?”
조경달 일본 지바대 문학부 교수, 『근대 조선과 일본: 조선의 개항부터 대한제국의 멸망까지』(최덕수 옮김, 열린책들, 2015.8) 중에서

■ 거미 현미경 도감, 백운기·정상우 외 엮음, 자연과생태, 488쪽, 43,000원

거미는 전 세계적으로 4만5천여 종, 국내에는 726종이 보고돼 있다. 이 책에서는 한국산 거미를 45과로 분류하고 그중 눈에 잘 띄거나 종 구별에 혼란이 있는 39과 193속의 411종을 선별해 수록했다. 남궁준(1920~2013) 선생은 60여 년간 거미와 동굴생물을 연구하며 우리나라 거미 연구의 발전을 이끌었고, 평생 수행한 연구의 성과를 유산으로 남겼다. 이 책은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그 자료를 대중과 공유하고자 선생이 국립중앙과학관에 기증한 표본 7만7천여 점과 논문, 저서 등을 바탕으로 국립중앙과학관의 연구진들이 재구성한 것이다. 국내 거미 연구 분야는 매우 척박하다. 학생을 배출하는 대학이 거의 없으며, 오래전 거미 연구로 학위를 받은 소수의 전문가들도 곤충 연구 분야의 작은 부분으로 참여해 부속적인 연구를 진행할 뿐 집중적으로 거미를 연구할 수 없는 환경이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나온 이 책은 관련 분야 연구를 자극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 아나키즘, 비애와 분노의 뿌리, 김택호 지음, 소명출판, 276쪽, 19,000원

 <폐허>와 <백조>, 그리고 농민조합 조선농민사의 기관지 <조선농민>과 <농민>에 수록된 농민출신 작가들의 문학작품에 대한 아나키즘의 영향력을 살핀 책이다. 표면적으로 이들의 문학 활동은 공통점을 찾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여러 면에서 대조적이다. 전자는 한국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하게 취급돼 왔으나, 후자는 주로 무명의 농민 출신 작가들의 작품이 다수를 차지한 탓에 주변화 됐다. 학계의 평가도 각기 다른 차원에서 가해져왔다. 저자는 이처럼 전혀 다른 차원에 있는 것으로 인식돼 온 이 두 경향의 문학 활동이 공통적으로 정치 지향적이었고, 아나키즘, 구체적으로 아나코-생디칼리슴이라는 조합주의가 그 자양분으로 작용했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저자는 이들의 동인지 활동이 핵심 동인들의 일본 유학시절이었던 1910년대, 일본 아나키스트들의 동인지를 통한 인적 네트워크 구축 방식과 관계가 깊다고 말한다.

■ 유령의 역사: 중세 사회의 산 자와 죽은 자, 장클로드 슈미트 지음, 주나미 옮김, 도서출판 오롯, 464쪽, 25,000원

프랑스 아날학파를 이끌어가고 있는 저명한 역사가 장클로드 슈미트의 책. 유령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고 유령에게도 역사는 있다. 저세상에서의 죽은 자들의 운명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산 자들이 결정한다. 그래서 시대와 지역, 문화, 믿음 등에 따라 죽은 자들의 모습과 그들이 산 자와 맺는 관계도 달라진다. 중세의 사람들에게 유령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도대체 죽은 자들은 왜 그런 모습을 하고 산 자들에게 다시 나타난 것일까. 장클로드 슈미트는 유령이야기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통해 중세의 종교문화와 유령에 관해 널리 퍼졌던 그 시대의 믿음이 지닌 역사적 의미를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중세 서구사회에서 산 자와 죽은 자가 맺고 있던 관계를 생생하게 재구성해낸다. 이 책은 자크 르 고프의 『연옥의 탄생』, 필리프 아리에스의 『죽음 앞의 인간』 등과 더불어 삶과 죽음에 대한 중세 사고방식의 특징과 그 변화를 다룬 중요한 저작으로 꼽힌다.

■ 중국, 대국의 신화: 중화제국 정치의 토대, 김영진 지음, 성균관대출판부, 1,080쪽, 42,000원

이 책은 중국에서 대국이 형성되는 역사적 과정, 하나의 정치체제로서 대국이 갖는 특징들 그리고 그것이 동아시아 국제질서에 미치는 영향 등을 치밀하고 체계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권력’을 매개로 일관된 맥락을 유지하며 분석하고 서술했으며, 이 분야의 기존 연구들과 달리 ‘공간적 변화’에 주목한 것 역시 이 책의 특징이다. 중국 권력의 원형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중국 대국화의 기틀은 어떻게 기획됐는지, 그리하여 국가로서 중국의 실체는 무엇인지 고찰을 거듭한 후, 대국의 유산과 과제 그리고 중화 패권주의의 허상에 관한 현재적 진단과 함께 새로운 시사점들을 되짚는다. 하나 더 주목할 것은 연구의 출발점으로 원전을 읽는 방식을 택했다는 점. 원전에 대한 강조는 해석상 오류의 가능성도 있지만, 연구자의 목적에 따라 일관되고 때에 따라 새로운 해석을 시도할 수도 있는 장점이 있었다.

■ 중국 철학은 어떻게 등장할 것인가, 리쩌허우 지음, 류쉬위안 엮음, 이유진 옮김, 글항아리, 344쪽, 18,000원

리쩌허우의 만년 담화집. 소식과 신기질의 말을 통해 모순 가운데 있는 인간의 상황을 간단명료하게 묘사했다. 인간은 늘 내 삶이 진정 나의 것이 아님을 한탄하지만, 정작 생계에 대한 고민이 없고 관계의 그물망을 벗어나게 되면 인생에 목적이 없어지고 더 고통스럽다. 인간이 태어나서 살아가는 이상 이 모순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자 인간의 존재 상태이다. 그래서 살아가는 것 즉 어떻게 사는가, 왜 사는가, 사는 게 어떠한가의 문제가 자신의 철학의 첫 번째 문제이자 진정한 철학 문제라고 말한다. 저자는 모든 가치와 의의를 부정하는 포스트모던 사조에 반대하며 ‘정 본체’를 제기했다. 정 본체란 다름 아닌 평범한 일상생활에 대한 애착과 깨달음이다. 인류 총체의 생존과 지속이야말로 그가 말한 최고의 선이다.

■ 존재론적, 우편적: 자크 데리다에 대하여, 아즈마 히로키 지음, 조영일 옮김, 도서출판b, 422쪽, 25,000원

아즈마 히로키가 1998년에 간행한 처녀작으로 자크 데리다에 대한 해설서의 완역본이다. 이 책은 특히 다음 두 가지 사이의 긴장관계에 의해 성립하고 있다. 첫째는 말 그대로 데리다를 경유한 현대사상에 대한 정리 내지 요약이고, 둘째는 그런 것에 몰두하는 자신에 대한 거리두기다. 그런데 이 긴장감은 그로 하여금 결국 현대사상을 넘어서 그것을 가능하게 한 뿌리, 프로이트와 하이데거로까지 소급하게 한다. 이때 저자는 ‘우편적’이라는 중요한 키워드를 내세워 프로이트 편에 서서 하이데거를 비판한다. 저자가 말하는 두 개의 탈구축이란 바로 이들의 긴장관계에서 유래한다. 주목할 대목은 프로이트와 라캉의 차이에 대한 엄격한 구분과 후자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그가 보기에 라캉은 프로이트를 하이데거화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지젝도 그 연장선상에 존재한다. 따라서 이 책은 오늘날 지젝에 열광하는 한국 지성계와 독서계에 대한 비판으로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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