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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상층부, 꼭 ‘전임교수’일 필욘 없지
연구상층부, 꼭 ‘전임교수’일 필욘 없지
  • 서영민 한양대 박사과정·나노의공학
  • 승인 2015.09.07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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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서영민 한양대 박사과정·나노의공학

공기마저 싸늘했다. 휑한 공사장 같은 텅 빈 연구실. 달랑 박사과정 3명. 책상하나 없이 시작했다. 그곳은 열정이 넘치는 한 젊은 신임교수님의 신생연구실이었다. 그런데 열정 가득한 연구계획서보다는 연구실 도면을 먼저 작성했고, 교수님과 연구미팅보다 연구실 공사관계자들과의 미팅이 우선이었다.

전기와 수도공사가 마무리 되면서 바닥이 깔리고 벽지를 바르고 천장이 완성됐다. 테이블과 기기들이 하나둘씩 들어오더니 제법 연구실처럼 보였다. 부족한 것은 버려진 것들을 이용해서 만들어썼고 각자 석사시절 연구실을 떠올리며 하나하나 꾸며나갔다. 간단한 실험들도 하나둘씩 시작했다. 부족한 기기들은 다른 연구실에서 빌려다 쓰고 없는 장비는 다른 연구실에서 학생들이 집에 가고난 후 새벽시간을 이용해 사용했다.

연구과제도 없고 빚만 늘어갔다. 인건비도 밀렸다. 그래도 재밌었다. 희망도 있었다. 우린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융합과학’에 첫 발을 내딛었다.

학부시절 흰 머리가 잘 어울리는, 강당에 서서 후학을 양성하는 멋쟁이 노교수의 모습을 꿈꾸며 학계에 뛰어들었다. 교수님의 사탕발린 말에 넘어가고 만 것이다. 기초과학을 연구하며 필자의 연구 실적이 교과서에 실리는 순간을 상상했지만 지금은 융합과학으로 발길을 돌렸다. 나의 지식과 남의 지식을 합하면 엄청난 무언가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법은 없지만 꼭 그렇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아직까지는 기초과학 권위자들은 자신들의 분야를 전혀 공유하지 않고 독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새로운 융합분야를 위해서 정보를 공유하고 다른 분야에서도 전문가가 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 전공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뛰어나며 다른 분야까지도 섭렵해 융합할 수 있는, 필자가 생각하는 과학자란 이런 모습이다.

과학계통 박사학위자의 10% 내외만 전임교수가 되며 그 외 나머지는 피라미드구조의 하위계층일 뿐이라고들 말한다. 대학원생이 피라미드구조의 최하위계급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피라미드구조의 최상위층이 꼭 전임교수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나가는 선두주자일 수도 있으며 새로운 산업화의 주인공일 수도 있다. 적어도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며 그렇게 믿고 있다.

한국연구재단과 같은 많은 연구재단들 또한 우리들이 구시대적 피라미드구조를 뒤흔들기를 기다리고 있으며 그러한 과학자를 위한 연구지원을 끊임없이 열어가고 있다.

현재 필자의 실험실은 석사과정생도 들어왔으며 남부럽지 않은 제법 근사한 연구실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 물론 과제도 많고 인건비도 꼬박꼬박 받고 있다. 예전엔 언제 끝날지 모르는 무기계약직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꿈이 바뀌고 만감이 교차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내가 가는 길이 ‘길’이니까. 언제나 그래왔고 앞으로도 쭉 그러할 것이다.

 

 

서영민 한양대 박사과정·나노의공학

한양대 바이오나노학과 나노의공학 분야의 박사과정생이다. 항박테리아 나노물질, 고위험병원체 검출 나노구조체 등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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