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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에 적합한 주제는 과연 ‘인간’인가?
인문학에 적합한 주제는 과연 ‘인간’인가?
  • 교수신문
  • 승인 2015.08.31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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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로 읽는 신간_ 『포스트휴먼』 로지 브라이도티 지음|이경란 옮김|아카넷|296쪽|18,000원

본타와 프로테비(Bonta and Protevi)에 따르면, 들뢰즈의 ‘지구(geo)-철학’은 인문학이 현재의 생물학과 물리학에 매우 창조적으로 관여할 수 있도록 고무한다.

물질이 자기생성적이라는 비전에 기반을 두고, 실현된 상태와 잠재적 되기를 구별하는 복잡성을 강조하는데, 전자는 ‘왕실 과학’의 대상이고 후자는 ‘소수자 과학’을 위한 틀이다.

둘 다 각각 시간상 다른 지점에서 필요하다. 하지만 오직 ‘소구자 과학’만이 윤리적 변형을 가능하게 하며, 선진 자본주의의 경제적 명령과 생명 물질에 대한 오용된 선진 자본주의의 인식에 구속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포스트휴먼 비판이론이 과학에 대해 갖는 주된 함의에 대해 잠정적으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려 볼 수 있다. 즉, 과학 관련 법들은 지식 주체를 복잡한 특이성으로, 정서적 배치로, 관계적 생기론적 존재로 보는 견해에 맞춰 재조정돼야 한다.

이 모든 것에서, 인류세에 접어든 포스트휴먼 시대의 인문학은 ‘휴먼’―‘인간’은 말할 것도 없고―을 자신의 고유 연구 대상으로 설정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오히려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진전들, 생태적이고 사회적인 지속가능성과 지구화의 다양한 도전과 같은 외적, 심지어는 지구행성적이기도 한 중요한 문제에 탈-인간중심적 방식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이 휴머니스트 ‘인간’의 제국에서 벗어나는 것이 이로울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위해서는 다른 사회과학자들과 과학자들의 도움도 필요하다.

문제는 인문학이 현대 과학과 기술에 관련해 자신의 의제를 설정하도록 허용될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선택하지도 않은 자리에 제한될 것인지다. 실제로 기후변화나 생명공학기술에 대한 공적 토론 같은 경우, 제도적 기금도 거의 받지 못하는 인문학에 이 복잡한 논의의 인간적 요인과 관련된 모든 주제를 부과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러한 경향 때문에 윤리학은 제도적으로 우리 시대의 딜레마에 맞는 새로운 메타담론과 규범적인 명령을 생산하도록 기대되는 운명에 놓여 있다. 그러한 윤리학의 제도적 운명은 때로 특권이라고 주장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메타담론적 주장은 실체가 없다. 더 나아가 그것은 철학이 거대 이론(master theory)의 역할을 하게 하는 제도화된 사유 습관, 반동적이고 정적인 사유 습관을 영속시킨다. 지식의 제정자이고 진리의 판관인 철학자 이미지―칸트학파에 뿌리를 둔 모델―는 포스트휴먼 비판이론이 주장하는 것, 즉 인간과 인간-아닌 타자들과의 관계에 기반을 둔 포스트동일성, 포스트단일성, 횡단성을 지닌 주체성과 정확히 대립한다.

인문학이 홀로 책임져야 한다고 반복적으로 상기시키는 또 하나의 담론 영역은 기후변화나 생명공학기술의 영양처럼 복잡한 문제들의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측면’이라는 논란이 많은 문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인문학은 적극적으로 인간중심주의적 구석 자리에 국한되고 동시에 이러한 한계 때문에 비난받는다. 이것이 윔스터가 지적한 다음과 같은 역설의 완벽한 예다. “인간에 대한 과학은 비인간적이 되거나, 혹은 인문적이지만 과학적이지는 않거나, 둘 중 하나인 듯 보일 것이다.” 이래도 문제이고 저래도 문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인문학이 포스트휴먼 조건이 제공하는 여러 기회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인문학은 전통적으로 혹은 제도적으로 할당된 인간과 인간의 휴머니즘적 파생물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자기 자신의 탐구 대상을 설정할 수 있다.

인문학이 과학과 기술과 오늘날의 다른 거대한 도전들과 독창적이고 필요한 토론을 하는 데 필요한 방법론적이고 이론적인 자원을 제공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의 아카이브를 풍부하게 갖추고 있음을 우리는 이제 알고 있다. 문제는 포스트휴먼 시대에, ‘인간’과 안트로포스의 최고 지위가 쇠락한 이후에, 과연 인문학은 어떤 것이 될 수 있는가다.

 

책의 저자 로지 브라이도티는 1988년부터 네덜란드 유트레히트대 여성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잇다. 들뢰즈와 이리가라이의 통찰을 활용하고 페미니즘과 탈구조주의, 비판이론과 정치이론, 문화연구와 과학기술연구 등이 만나는 지점에서 체현된 포스트모던 윤리학과 긍정의 정치학을 제시하는 여성철학자다. ‘포스트모던 휴먼 조건’에 대한 그의 탐색점은 시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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