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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속 10미터의 고약한 폭탄이 터졌다!
초속 10미터의 고약한 폭탄이 터졌다!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5.08.24 1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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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136. 폭탄먼지벌레

가을남새를 심으려고 텃밭일을 하다가 맵시로운 예쁘장한 딱정벌레 한 마리가 나타나 설설 기어가기에 무심코 그놈을 잡았다가 ‘앗 뜨거워’소리치며 홱 던져버렸다. 알면서 속는다더니만, 얄밉고 발칙한 그놈이 바로 폭탄먼지벌레(爆彈─, Pheropsophus jessoensis)로 절지동물, 딱정벌레목, 딱정벌렛과의 곤충이다. 여기서 우리말 이름의 ‘폭탄’은 꽁무니에서 내는 퍽 하는 소리(popping sound)를, ‘먼지’는 독가스를 뜻하는데 희뿌연 유독 독가스는 고약한 냄새와 높은 열을 낸다. 한마디로 뜨거운 가스와 악취에, 폭발음까지 내는 각별난 폭탄먼지벌레다! 이 녀석은 이렇듯 포식자를 물리치고, 먹이사냥에 효과적인 화학무기를 장착했다.

극지방을 제외하고는 온 세계에 얼추 500여 종이 서식하며, 본종은 1990년에 북한에서 우리와 영판 다른 ‘돌방구퉁이’란 이름으로, 40전짜리 우표에 등장한 적이 있고, 한국·중국·일본 등지에 서식한다.

아시아폭탄먼지벌레(Asian bombardier beetle)라고도 부르는 이 녀석을 흔히 ‘방귀벌레’라고도 하는데, 몸길이 11∼18mm로 몸바탕은 새카맣지만 머리·가슴·다리는 황색 또는 황적색이고, 머리꼭대기와 앞가슴등판에 난 가운뎃줄은 검다. 아무리 보아도 몸빛깔이 꽤나 성깔 있어 보이는 무시무시한 경계색(warning coloration)을 띤다. 머리는 납작하고, 더듬이는 노란빛을 띤 갈색이며, 입틀(口器)의 수염은 붉은 빛을 가진 갈색이다. 딱지날개(겉날개)에는 세로로 솟아오른 줄이 있으며, 그 사이에 세로주름무늬가 촘촘히 난다. 수컷의 겉날개는 꼬리에 닿을 정도로 길지만 암컷은 좀 짧다.

성충은 5~9월에 나타나고, 습기 찬 땅에 머물며, 유충은 땅속에서 산다. 알을 진흙이나 썩은 풀에 낳고 유생, 번데기를 거쳐 성충으로 탈바꿈하는 완전변태하고, 수명은 몇 주에 지나지 않는다. 야행성으로 낮에는 돌이나 낙엽 밑, 흙 속에 숨었다가 밤에 슬금슬금 기어 나와 곤충을 잡아먹는 육식성이며, 특히 썩은 고기를 좋아한다. 또한 각종 해론벌레(害蟲)를 잡아먹어 사람에겐 이론벌레(益蟲)다.

그런데 성충에 으름장을 놓으면 항문에서 픽 소리를 내며 뜨거운 독한가스를 내뿜는다. 이 독가스는 사람피부에 닿으면 살이 부어오르고 몹시 아프다. 그럼 이들 벌레는 어떻게 폭탄을 터뜨리는 것일까?

폭발에 관여하는 하이드로퀴논과 과산화수소는 각각 배(복부) 끝, 분비샘 벽이 얇은 널찍한 방안에 따로 수용액 상태로 저장돼있다. 또 분비샘의 벽이 매우 두꺼운 방에는 과산화수소를 물과 산소로 분해하는 효소인 카탈라아제(catalase)와 하이드로퀴논을 피-퀴논(p-quinone)으로 산화시키는 페록시다아제(peroxidase)가 들어있다.

벌레가 위험을 느끼면 방의 판막(valve)을 열어서 여러 물질이 항문 근방에서 합쳐지면서 화학반응이 일어나게 되니, 과산화수소는 분해하고 하이드로퀴논은 산화된다. 이때 생기는 열은 물이 쩔쩔 끓는 100℃에 달하고, 함께 매스꺼운 냄새나는 수증기 상태의 가스가 분사된다. 이때 달려들던 포식자는 눈과 호흡기가 자극을 받아 치명상을 입게 되는데 사람도 화학열상(chemical burn)을 입는다. 그런데 제 똥구멍은 데이지 않고 멀쩡하다니 신통하다!

다시 말해서 위협을 느낀 폭탄먼지벌레가 서둘러 분비샘에서 화학물질과 효소를 반응실로 보낸다. 이들이 만나 폭발하면 큐티클(cuticle)로 만들어진 반응실이 팽창하면서 화학물질 투입구의 밸브가 막히지만 가스 증기가 빠져나가 압력이 떨어지면 다시 밸브가 열려(폭발물질이 들어와) 폭발이 되풀이된다.

그리고 침입자를 마주치면 잽싸게 공격자 쪽으로 꼬리를 돌려 발칵 화학분사(chemical spray)를 줄잡아 내리 20번 넘게 발사한다. 족히 100℃나 되는 비말(飛沫, spray)을 내뿜기에 혼쭐나 다리야 날 살려라 줄행랑을 놓는다. 골난 스컹크는 한 번 수증기 상태인 독물을 왕창 뿌리고 나면 얼마 동안은 방귀를 뀔 수 없지만, 폭탄먼지벌레는 아주 짧은 간격을 두고 찔끔찔끔 연이어 발사가 가능하다.

독가스의 주성분은 1,4-벤조퀴논 말고도 고농도의 산(acid)알데히드(aldehyde)·페놀(phenol)·퀴논(quinone) 같은 유독물질이다. 상대를 겨냥해 마치 기관총을 쏘듯 단속적으로 내뿜으니 적들에게는 방어무기로 쓰이고, 먹잇감을 잡는 데도 이용한다. 자기 몸은 다치지 않으면서, 배고파 잡아먹으러 대들던 거미 따위도 몸서리치게 화들짝 놀라 도망가게하고, 호기심 덩어리인 사람도 까딱 잘못하다간 된통 당한다.

놀랍게도 이런 폭발은 초당 735회까지 일어난다하고, 역겨운 화학물질과 증기가스가 초속 10m의 속도로 먼 거리로 퍼져나간다. 이제까지는 근육의 수축으로 이런 빠른 분사가 일어날 것으로 짐작했으나 다른 연구에 다르면 유연한 막의 팽창, 수축으로 일어나는 것으로 확인됐다한다.

여태 살펴본 것처럼 폭탄먼지벌레들은 폭탄을 만드는 정교한 장치를 갖춘 아주 특별한 곤충이다. 생물진화학적으로 봐도 복잡한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극히 신비롭고, 예사로운 동물이 아니다. 그런데 죽은 뒤에도 배를 누르면 반응실에 남아 있던 화학물질들 때문에 살아 있을 때와 똑같은 반응이 일어나는 통에 연구자들이 우스꽝스럽게도 폭탄먼지벌레 표본(標品)을 만들다가 호되게 데이는 수도 있다한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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