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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자본주의 사회를 겨냥한 비판적 이론 … 실천의 방향은‘토의민주주의’”
“후기자본주의 사회를 겨냥한 비판적 이론 … 실천의 방향은‘토의민주주의’”
  • 교수신문
  • 승인 2015.08.19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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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시즌2 고전읽기_ 27강. 장춘익 한림대 교수의 ‘하버마스 『의사소통행위이론』’

‘문화의 안과 밖’시즌2 고전읽기 4섹션 ‘근대 정신과 비판’의 여섯 번째 강연이자 전체 시간표로는 27강에 해당하는 강연이 지난 8일(토) 장춘익 한림대 교수(철학·사진)에 의해 진행됐다.
장춘익 교수는 20세기 현대사회이론의 대표적인 저작인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을 4년간에 걸친 작업 끝에 완역했다. 또한 하버마스와 평생 논쟁해온 니클라스 루만의 30년 지적 작업의 총결산인 『사회의 사회 1·2』(2012)를 번역했다. 이외 역서로는 『헤겔의 정신현상학』(1987) 등이 있다.
장 교수는 하버마스의 명저 『의사소통행위이론』을 두고 “이 책은 하버마스 자신이 회고하면서 ‘괴물’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매우 다양한 이론적 자원이 동원된 아주 복잡한 지적 건축물이다”라고 운을 떼면서 긴 독해에 나섰다.
철학 분야 이외에도 정치사상 분야에서도 깊은 접근이 축적돼온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을 장 교수는 어떻게 읽어냈을까. 장 교수의 강연 주요 대목을 발췌했다.

사진·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 장춘익 한림대 교수

사소통행위이론』은 하버마스 자신이 회고하면서 ‘괴물’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매우 다양한 이론적 자원이 동원된 아주 복잡한 지적 건축물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추구하는 바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자본주의 사회, 그것도 후기 자본주의 사회를 겨냥한 비판적 이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버마스는 사회합리화의 관점에서 자본주의적 근대화를 분석하며, 자본주의사회가 근대에 풀려난 합리성을 일면적으로만 구현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합리성의 일부만이 철저하게 구현된 불균형의 상태, 혹은 특정 합리성 요소에 의한 다른 합리성 요소의 왜곡과 훼손에서 자본주의사회의 문제점을 본 것이다.

■ 의사소통행위와 의사소통적 합리성

의사소통행위란 상호이해를 통한 동의에 기초해 수행되는 행위다. ‘상호이해’란 화자와 청자가 하나의 제안된 화행이 어떤 조건에서 수용될 수 있는지를 안다는 뜻이다. ‘동의’란 화행의 수용 조건이 충족됐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버마스는 이를 ‘타당성 주장’이란 개념을 가지고 설명한다. 타당성 주장이란 하나의 발언의 “타당성을 위한 조건들이 충족돼 있다는 주장”과 같은 것이다. 하버마스는 타당성 주장이 명제의 진리성 뿐만 아니라 행위방식의 규범적 정당성과 자기표현의 진실성, 가치 기준 적용의 적합성에 대해서도 제기될 수 있다고 여긴다.

의사소통행위가 반드시 문법적으로 발달한 언어를 통해서만 수행돼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타당성 주장들이 분화되고 비판적 검토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단계에 진입하려면, 문법적으로 분화된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문법적으로 발달한 언어의 사용은 의사소통적 합리성의 발전을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의사소통행위가 사회적 행위들의 주요 유형들과 별개 유형의 행위가 아니라 그것들의 상호이해 지향적 버전이라면, 의사소통적 합리성 역시 각 행위 유형과 결부되는 합리성 형식, 즉 목적합리성, 도덕적-실천적 합리성, 미학적-실천적 합리성과 전혀 다른 합리성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저 합리성 유형 외에 별도로 의사소통적 합리성에 대해 말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하버마스의 구상은 다음과 같은 것으로 보인다. 이해 지향적으로 행위할 때는, 즉 타당성 주장의 해소를 통해 행위를 조정할 때는, 현재 하나의 종류의 타당성 주장이 부각되기는 하지만 다른 종류의 타당성 주장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비중은 다르더라도 다른 종류의 타당성 주장들도 동시에 문제가 되며, 다른 맥락에서는 다른 종류의 타당성 주장들이 주제로 부각될 수 있음이 함께 의식되고 있다. 의사소통적 합리성이란 다른 합리성 요소들에 대해서 맹목적이지 않은 개별 합리성이다.

■ 행위합리성과 사회합리화

하버마스는 언어적 의사소통에 들어있는 합리성의 잠재력이 근대에 들어오면서 분명하게 가시화됐다고 생각한다. 합리성의 세 가지 양상, 즉 인지-도구적 합리성, 도덕-실천적 합리성, 미학적 합리성이 완전히 분리되고 각각 객관적 과학, 보편주의적 규범의식, 자율적 예술로 구체화하고 제도화된다. 이것이 하버마스가 말하는 근대적 의식의 구조 혹은 문화적 근대화의 내용이다. 하버마스는 일단 사회합리화를 이런 근대적 문화의 합리성 잠재력이 생활질서 속에서 구체화하는 것으로 구상한다. 하버마스는 이 세 가지 합리성 양상을 모두 동등하게 고려하는 사회합리화의 유형을 ‘반사실적으로’ 상정하고, 그에 비춰 실제의 사회합리화를 비판적으로 검토해보고자 한다. 이런 파악방식의 설득력을 하버마스는 베버의 사회합리화론, 특히 그의 의미상실 명제와 자유상실 명제를 재구성함으로써 보여주고자 한다. 하버마스의 관점에서 볼 때 의미상실과 자유상실로 파악하는 것은 사회합리화의 역설적 결과가 아니라 목적합리성에 비해 도덕-실천적 합리성과 미학-실천적 합리성은 불균형적으로 낮은 수준에서 구현됐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 기능주의적 이성의 비판

하버마스가 ‘생활세계’란 개념을 현상학으로부터 차용하긴 하지만, 현상학적 생활세계 개념과의 차이를 파악하는 것이 그의 생활세계 개념과 2단계 사회구상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이다. 의사소통행위에 내재하는 문화적 재생산, 사회적 통합, 그리고 사회화의 기능에 맞춰 하버마스는 생활세계가 문화, 사회, 인격이라는 구조적 요소를 갖는 것으로 규정한다. 하버마스는 생활세계 개념을 의사소통행위의 상보 개념으로 도입하는 것의 장점을 바로 이렇게 생활세계의 구조적 복합성을 파악할 수 있다는 데에서 본다. 이제 하버마스는 생활세계 개념과 체계 개념을 결합해 “사회는 사회적으로 통합된 집단의 행위연관이 체계로서 안정화된 상태”라는 정식에 이른다. 하지만 하버마스가 두 사회 개념을 단순히 수평적으로 결합하는 것은 아니다. 하버마스의 사회이론의 묘미는 바로 두 사회개념을 결합하는 방식에 있다. 하버마스는 체계의 복잡성 증가와 생활세계의 합리화 사이의 연관성을 사회진화적 관점에서 고찰하는데, 그 내용은 ‘이차적 분화’와 ‘제도적 정박’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차적 분화’란 “체계와 생활세계는, 전자의 복잡성과 후자의 합리성이 증가하면서 각각 체계와 생활세계로서 분화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서로로부터도 분리된다”는 것을 뜻한다. 사회진화 과정에서 체계와 생활세계가 분리되면서, 그러나 분리를 다시 취소시키지 않는 식으로 다시 결합하는 방식을 루만은 체계의 ‘제도적 정박’에서 본다. 체계복잡성 수준의 향상은 체계의 성공적인 제도적 정박을 통해서만 가능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하버마스는 심지어 체계분화의 수준이 제도화되는 방식을 사회구성체의 구별기준으로 택해 보는 시도까지 한다. 사회합리화를 이렇게 생활세계와 체계의 이차적 분화로 파악함으로써 하버마스는 자본주의사회에 대한 이론적 약점들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사회합리화에 대한 구상은 다르지만 베버의 경우처럼 하버마스의 시대진단도 사회합리화의 역설적 결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버마스는 근대사회의 사회적 문제를 하부체계에 밀려난 조절위기가 생활세계로 침투함으로써 생겨난 것으로 본다. 그의 시대진단을 거론할 때 종종 간과되는 것은 그가 ‘생활세계의 식민지화’로 정식화되는 현상을 체계의 생활세계 안으로의 침투로부터만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버마스는 물화의 상보 현상으로 ‘문화의 빈곤화’를 든다. 그런 상황을 극복하려는 노력, 즉 문화적 발전을 일상실천과 매개하려는 노력을 하버마스는 ‘계몽의 기획’이라고 칭한다. 생활세계는 한편으로 물화의 위협에, 다른 한편으로 문화적 빈곤화의 위협에 노출돼 있으며, 이 두 경향은 상호 강화된다. 하버마스는 “물질적 재생산이라는 체계의 압박이 눈에 띄지않은 채 사회통합의 형식 자체에 개입”하는 것을 생활세계의 ‘부속화’(Mediatisierung)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생활세계가 문화적으로 빈곤해지고 행위자들의 의식이 파편화되면, 체계의 압력이 생활세계에 은밀하게 개입할 필요조차 없게 된다. 하버마스는 이런 상황을 ‘체계에 의한 생활세계의 식민지화’라고 표현한다. 생활세계의 식민지화가 등장할 수 있는 여건을 보면 하버마스의 비판이론이 후기 자본주의 사회를 겨냥하고 있음이 뚜렷이 드러난다.

■ 비판적 사회이론과 실천

체계의 생활세계로의 침투라는 의미에서의 물화, 그리고 한편으로 전문가 문화와 일상실천의 유리라는 의미에서의 문화적 빈곤화가 생활세계 식민지화의 원인이라면, 비판적 사회이론이 지향하는 실천의 방향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있는 저항의 잠재력은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하버마스는 이 물음에 대한 대답 역시 의사소통적 합리성 개념으로부터 얻는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의사소통적 합리성은, 인간이 언어적으로 의사소통하는 한, 완전히 소멸할 수 없다. 그런데 생활세계는 체계에 대해 수동적 저항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것일까? 체계분화 자체를 사회합리화의 결과로 본다는 점에서 하버마스의 사회이론은 분명 생활세계에 의한 체계의 정복 혹은 지배를 추구하지 않는다. 그의 2단계 사회구상으로부터 추론해보자면, 실천의 관건은 체계들을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생활세계에 정박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합리화된 생활세계를 전제한다면, 특히 체계의 작동을 보편주의적인 규범의식을 기초로 하는 법에 따라 규제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하버마스 이론으로부터 나오는 실천의 방향을 단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토의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에필로그

이론이 대상을 다루지만, 또한 대상이 이론에 말을 걸기도 한다. 사회이론이라면 더욱 그렇다. 사회이론 그 자신도 사회의 현상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상품으로 된 노동력, 추상적 역량으로 된 노동력에 대해 말하면서 그런 개념이 단순히 이론적 추상물이 아니라 실제추상(Realabstraktion)이라고 명명했다. 이미 현실에서 그런 추상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하버마스는 자신이 한편으로 의사소통행위의 고유논리에,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생활세계의 상징적 구조들의 재생산에 주목하게 된 것 역시 사회적 현실에 의해 자극된 것일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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