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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의 연구’가 된 정치적 망명을 호명하는 한 방식
‘금기의 연구’가 된 정치적 망명을 호명하는 한 방식
  • 교수신문
  • 승인 2015.08.19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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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망명과 귀환이주』 서장원 지음|집문당|795쪽|31,500원

20세기 한국 역사를 되돌아보면 조선왕조 몰락, 일제강점, 해방정국, 한국전쟁, 분단고착 상황이 시대를 특징짓는 사건들이고, 이 거대한 역사적 흐름 뒤에는 ‘망명과 귀환이주’의 역사가 어두운 그림자로 엄연히 실재한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 인식이 이 연구를 착수하게 된 동기다.

 

정치 사회적인 측면에서 볼 때 20세기는 전쟁이 세상을 뒤흔든 세기다.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이 있었고, 크고 작은 전쟁이 세계 도처에서 발발했다. 한두 번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인간을 위협하고 있다. 전쟁뿐만 아니라 혁명도 끊이질 않았다. 러시아 10월 혁명, 독일의 11월 혁명이 있었고,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이 있었다. 전쟁과 혁명, 기존 체제의 붕괴와 새로운 권력집단의 등장, 그리고 강대국의 약소국 무력점령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폭력이 난무하며 지배하는 자와 지배를 받는 자, 박해하는 자와 추방당하는 자를 배출했다. 그렇게 ‘망명과 귀환이주’ 현상이 발생했다.

인류역사에서 망명의 물결이 나타난 것은 20세기가 처음이 아니다. 인간이 사회를 형성하기 시작하며 가해자와 피해자 집단은 당연한 것처럼 생성됐고, 이럴 때마다 어김없이 난민과 망명객은 발생했다. 오비디우스나 이백 등 고전적인 망명객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어디 그뿐이랴.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1세는 엘바 섬과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두 번에 걸친 유배를 당했다. 소련의 레닌은 시베리아로 유배를 당했고, 솔제니친은 카자스탄으로 유배를 당했다. 이러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사회체제나 인간들의 사고방식이 현대적으로 발전하는 20세기가 되자 망명 또한 대규모적이고도 공개적인 현상으로 발전했다. 1920년대 러시아와 1930년대 독일에서 발생한 망명의 물결이 대표적인 예다. 러시아와 독일 말고도 망명은 세계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발생했고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티베트 망명객, 이란 망명객들은 세계 곳곳을 떠돌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20세기 한국 역사를 되돌아보면 조선왕조 몰락, 일제강점, 해방정국, 한국전쟁, 분단고착 상황이 시대를 특징짓는 사건들이고, 이 거대한 역사적 흐름 뒤에는 ‘망명과 귀환이주’의 역사가 어두운 그림자로 엄연히 실재한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 인식이 본 연구를 착수하게 된 동기다.

 

박해와 추방·망명 연구의 필요성

망명과 귀환이주에 관한 문제는 20세기 한국 역사가 풀어야 할 숙명적인 과제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에 대한 논의는 일반인들에게는 거의 금기시 돼 있고, 학계에서는 구체적인 연구대상으로 떠오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100여년의 역사를 아직도 객관적인 입장에서 제대로 정리할 만큼 정치, 사회, 문화적인 여건이 충분히 성숙돼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제강점으로 인해 발생한 망명객들의 귀환이주가 시작된 것은 1940년대 후반 이후 지만, 시대적 격랑과 골육상잔의 전쟁, 분단 고착화가 진행되면서 이들의 망명과 귀환이주를 제대로 응시할 수 없었다. 망명연구는 걸림돌이 많다. 현실적인 문제와 결부돼 있고, 세계대전 후 남과 북은 귀환이주를 통해 성공한 망명객들이나 그들을 추종하는 세력들이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했기 때문에 체제 수호적인 혹은 그들에 의한, 그들만의 개인미화적인 사실만이 정당화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상과 문제점은 곧 연구의 급박함을 자극한다. 하지만 이런 방대한 주제를 객관적으로 진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어느 특정한 인물들의 개인적인 이력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 경우가 허다하고 언제나 정치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연구의 방향이 자칫 잘못하면 특정한 개인에 대한 일방적인 미화(혹은 폄하)나 지나간 과거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으로 일관될 수 있는 위험성을 다분히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 필자는 한국의 역사를 직접적인 대상으로 삼지 않고 20세기 독일 사회에서 발생한 ‘망명과 귀환이주’ 현실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다. 천학비재하지만 ‘망명과 귀환이주’ 현실에 대한 국내 학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연구를 위한 토대기반 마련에 미력하나마 기여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20년 이상 독일에 유학해 17세기 바로크문학 연구에 그토록 많은 정열을 투자했고 20세기 망명문학을 연구하며 직접 배우고 익힌 학문적 시각을 국내에서 서투르게 적용하기보다는 ‘망명과 귀환이주’에 대한 연구모델을 창출하는 것이 임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20세기 독일에서 발생한 망명과 귀환이주 현실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을 체계적으로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 물론 서양에서도 망명과 귀환이주에 대한 체계적인 저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미개척분야인 점을 감안하여 저명 망명객들의 간단한 약력, 분서목록, 금서작가 목록을 첨부했다. 저명 망명객들의 간단한 약력만을 추적하고 간추리는 데만 1년 이상이 시간이 소비된 것 같다. 연구 방법론으로는 망명연구의 특성상 역사, 정치, 사회, 지역학적 관점을 비롯하여 일상사연구와 스토리텔링을 적용하였다.

‘아산재단 연구총서 제389집’인 이 책은 모두 8장으로 구성돼 있다. 제1장은 문제제기와 방향설정에 해당하고 제2장은 망명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위해 망명의 본질과 그 전개양상을 면밀히 검토했다. 망명의 기원 및 개념, 독일 망명발생의 역사적 배경, 권력과 폭력, 제국의회방화사건과 나치 독재체제 구축, 분서사건, 나치 이데올로기, 나치 문화정책, 망명객들의 망명경로와 망명경험이 주요 내용이다. 제3장에서는 저명 망명객들의 유형 및 현황을 다루었다. 망명객하면 우선 정치인들만을 떠올리는데 이 책은 정치인을 비롯해 저명 망명 예술가들을 다뤘고, 망명 자연과학자, 정신과학자, 사회과학자, 심리학자, 예술사학자, 망명 법조인까지 총 망라했다.

 

그리고 ‘생각해야 할 의무’

제4장에서는 귀환이주 현실을 다뤘다. 나치 체제가 붕괴되면서 연합군에 의한 분할점령 속의 정치적 발전 상황을 다룬 다음 망명객들의 귀환이주 상황을 연도별 분야별로 정리했다. 귀환의 희망과 귀환이주의 문제점, 점령군의 문화정책을 진단했고, 신생공화국 수립과 귀환이주 정치인, 귀환이주 엘리트 유대인등을 개괄했다. 그런 다음 제5장에서 8장까지는 사례연구로 ‘군정지역으로의 귀환이주’, ‘분단국가로의 귀환이주’, ‘구역 밖으로의 귀환이주’를 대별해 연구했다. 개인사를 연구의 대상으로 삼기는 했지만 그들의 일상사를 통해 인간과 시대의 문제점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돌아올 수 없는 여행’, ‘귀환이주 후의 재망명’, ‘총체적 죄와 과거사 극복문제’, ‘심정적 사회주의자의 서독귀환’, ‘동·서독 사이의 귀환이주자’, ‘집단주의 밖의 고독한 지성인’, ‘중개자로서의 망명객’ 등이 주요내용이다. 제8장은 ‘망명과 귀환이주’에 대한 물음이 고답적인 학자들만의 연구대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생각해야 할 의무’로 이 책을 결론지었다.

독일의 역사적 전개상황을 보며 우리의 상황과 너무나 유사한 점이 많다는 것을 누구나 말하곤 한다. 하지만 연구방법론으로 독일의 역사적 현상을 그대로 적용할 필요는 없다. 독일의 특징이 있고 한국의 특징이 있다. 독일의 역사적 현실은 파란만장하지만 한국의 상황은 그 장구한 역사만큼이나 더 복잡하고 미묘한 부분이 있다. 암시를 바탕으로 대상이 요구하는 적합한 방법론을 적용해야 한다. 역사와 학문은 생동함으로 연구도 이에 준해야 한다.

 

 

서장원 고려대 ·독일문화학과

필자는 구텐베르크-마인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독일문예사조 변천과정, 문명문화이론에 관심을 쏟고 있다. 현재 한국학술협의회 (대우재단) 저술사업 「토텐탄츠와 바도모리」 프로젝트를 수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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