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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교수의 죽음', 문제는 대학 자율성이다
‘고 교수의 죽음', 문제는 대학 자율성이다
  • 이재 기자
  • 승인 2015.08.18 23:3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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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대학의 명줄 움켜쥐고 ‘人事강요’ 안돼

故 고현철 부산대 교수(국어국문학)의 죽음이 대학가에 던진 파장이 커지고 있다. 국립대와 사립대 교수를 막론하고 이번 사태의 원인은 교육부의 무리한 정책 추진에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국립대 총장직선제를 통해 갈등이 부각됐으나 이미 재정지원사업과 대학평가 등을 통해 일률적인 정책을 강요해온 교육부에 대한 피로감이 커졌다는 것이다. 법률에 근거하지 않은 채 각종 재정지원사업을 빌미로 교육부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방식은 중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직 총장으로서 발언하기 힘든 문제다. 이번 사태의 원인은 총장선출제도에만 국한된 것으로 봐서는 안 된다. 대학의 운영방식을 법률이 뒷받침되지 않은 재정지원평가지표로 활용해 뜯어고치려 시도한 교육부의 정책방식이 낳은 비극이다.”

한 국립대 총장의 말이다. 이 총장은 교육부가 각종 재정지원사업을 통해 대학의 예산을 압박하면서 변화를 강요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대학본부는 구성원과 합의를 하지 못한 채 일방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최근에도 대학 특성화 사업(CK사업)과 학부교육 선도대학 육성사업(ACE사업), 산학협력 선도대학 육성사업(LINC사업)에 입학정원 감축을 연계해 평가했다. 이 때문에 상당수 대학이 원치 않는 입학정원 감축에 나서 전국적으로 4만명 가량의 입학정원을 감축했다. 이과정에서 대학평가지표에 불리한 인문‧사회‧예체능 학과가 폐지되거나 통페합되는 등 대규모 학과구조조정의 수렁에 빠졌다.

부산대가 총장직선제 폐지의 기로에 섰던 것도 교육부의 평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난 2012년 교육부의 교육역량강화사업 선정 당시 부산대는 대학 정원 1만명 이상 대규모 대학 가운데 경북대, 전남대와 함께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1만명 미만 대학에서는 목포대도 탈락했는데 이 4개 대학은 모두 총장직선제를 고수했다가 당시 교육부가 평가지표로 내걸었던 ‘총장직선제 개선’ 지표에서 페널티를 받았다. 이들 대학 4곳은 당시 사업에 지원했던 13개 국립대 가운데 유일한 탈락대학이다.

당시 ‘총작직선제 개선’은 재정지원제한대학 지정에도 영향을 줬다. 또다른 국립대 총장은 “교육역량강화사업만이 아니라 총장직선제를 폐지하지 않으면 재정지원제한대학에 지정돼 ‘부실대학’ 낙인이 찍히는 상황이었다. 총장으로서는 구성원의 목소리보다 대학의 안위를 걱정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병운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 상임고문(국어교육학)은 “대학 민주화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다. 박근혜 정부의 모토가 법과 원칙이라고 하지 않느냐. 총장직선제는 교육공무원법에 의거해 대학 구성원들이 자율적으로 합의한 방식이다. 이를 간선제 혹은 공모제로 바꾸려면 법부터 바꿔야 한다. 그렇지 않고 돈을 빌미로 행정‧재정적 제재를 가해 못하도록 하는 것이 법치국가에서 할 일이냐”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이 상임고문은 “교육부 장관은 이번 사태가 교육부의 불법적인 압박으로 인해 야기된 만큼 책임지고 사과해야 한다. 총장직선제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학의 민주화에 관한 문제다”고 지적했다.

그는 “교육부가 총장직선제를 폐지한 뒤 벌이는 일을 보라. 입맛에 맞는 총장을 낙하산으로 임명하고 있지 않느냐. 대학 민주화의 핵심인 돈과 인사권을 틀어쥔 채 전횡을 부리고 있다. 법치주의에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사태에 대해 사립대 교수들 역시 본질은 교육부의 ‘관치’에 있다고 입을 모았다. 박순준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이사장(사학)은 “교육부가 하지 말아야 할 갑질을 하고 있다. 최근 대법원은 사립대의 운영에 구성원이 참여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놨다. 참여의 시작은 총장선출이다. 대학의 민주적 운영을 위한 거버넌스를 교육부가 틀어쥐면 안된다. 대학교육의 공공성이 훼손된다. 이를 구성원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이 총장직선제 유지를 고수하는 것은 아니다. 총장직선제와 간선제, 공모제 가운데 대학이 자율적으로 선택할 권한을 보장하라는 것이 주장의 핵심이다. 한 국립대 총장은 “직선제와 간선제, 공모제 등 다양한 총장선출 방식을 법률에 의해 대학 구성원이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대신 이에 대해 폐단이 발생하면 현행법에 따른 처벌을 받으면 된다. 무조건 총장직선제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대학의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재 기자 jae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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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천 2015-08-23 12:15:05
직선제, 간선제, 공모제, 모두 장단점이 있습니다. 장점만 있고, 단점만 있는 제도는 없습니다. 어느 편이든 선택하면 그 단점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으면 됩니다. 벌써 적지 않은 세월 직선제를 채택해서 이제 그것을 보완하는 방법도 터득해 가는 터에 왜 정부가 미끼와 강제, 협박을 일삼는가. 그것이 불손한 거죠. 간선 또는 공모해서 뽑아도 정부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임명제청도 아니 하니, 이제 민주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