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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시대를 이겨낼 ‘민족적 자아’는 무엇일까?
분단의 시대를 이겨낼 ‘민족적 자아’는 무엇일까?
  • 엄정식 서강대 명예교수·철학
  • 승인 2015.08.17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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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광복 70주년을 다시 생각한다_ 철학

광복 70년이란 세월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더구나 그것이 우리의 근현대사에서와 같이 수난과 질곡, 그리고 영광과 성취로 점철된 격동의 시기였다면 더욱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우리는 이 기간 동안 일제 식민통치에서 벗어났지만 이념 갈등으로 민족 분단을 자초했고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까지 체험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그 유례가 없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취하고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섰지만 그 과정에서 군사독재의 권위주의적 통치와 이에 저항했던 민주투사들의 수많은 희생을 감내해야만 했다. 이와 같이 모순과 역설로 가득 찬 지난 70년 세월을 사상적으로 정리하고 장차 민족과 국가의 행로를 체계적으로 예측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단순히 동서와 고금이 격돌하는 소용돌이의 중심에 서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 엄정식 서강대 명예교수·철학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사적 격동기를 이 비좁은 땅에서 체험하는 동안 한 시대를 긋는 위대한 사상을 어떠한 형태로든지 우리는 잉태하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역사적 사명을 외면한다면 우리가 체험한 수난과 질곡의 역사를 또 다시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모순과 역설의 세월을 지배한 이론과 이념은 어떠한 것이며 그러한 것들이 서로 양립할 뿐 아니라 보완관계를 가질 수 있는 논제는 과연 무엇인가. 그것을 지금 온전히 짚고 넘어갈 수는 없지만 그 얼개를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사상을 정립함에 있어서 우선 두 가지 점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는 전통적 민족사상이 어떤 특성을 지니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인데, 그것을 우리는 한 마디로 ‘비판적 종합’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오늘날 우리를 지배하는 현대사상의 조류가 무엇이며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이와 같이 현대사상의 창출은 우리의 사상적 전통과 현대를 심층적으로 이해하고 체계적으로 파악함으로써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어떤 개인을 이해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그가 그동안 어떤 사람이었으며 지금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면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를 표현하는 어휘가 많이 있겠으나 그것을 ‘과학기술시대’라고 하는 데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소외’나 ‘위기’를 거론할 수 있으나 다른 시대에서와 달리 그러한 것들도 대부분 과학기술이 창출한 경제체제, 정치제도, 문화형태 등 여러 현상에서 야기된 것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우리는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과학기술과 그것의 기초가 되는 과학적 탐구 자체를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진지하게 대면하고 절박하게 문제 삼아야 하는 것은 과학의 본질이며 특히 그것이 지닌 ‘합리성’의 문제인데, 그것은 가령 불교나 유교, 혹은 기독교나 이슬람에서 말하는 ‘합리성’이 아니라 ‘과학적 합리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과학기술시대의 사상사적 문제는 과학적 합리성과 비과학적 합리성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나타날 수 있는 본질적인 문명적 충돌의 양상은 새뮤얼 헌팅턴이 예측한 것과는 달리 여러 종교들 사이의 ‘종교적’ 충돌이 아니다. 만약 그러한 충돌이 있다면 닫힌 종교와 닫힌 종교들 간의 충돌이거나 점차 닫힌 종교와 열린 종교들 간의 충돌이라는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비판적 합리성과 독단적 합리성, 혹은 계몽주의와 몽매주의 갈등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것을 해소하는 것이 이 시대가 당면한 철학적 ‘아포리아’일 뿐 아니라 광복 70년을 맞이한 이 땅의 지식인들에 가장 절박하게 부여된 시대적 과제이기도 한 것이다. 

현대사상을 거칠게 요약하면 거의 모두 ‘반과학주의’의 성격을 띤다고 요약할 수 있으며 그 중에 대부분은 과학기술에 관한 것이거나 거기서 파생된 경제적, 정치적 및 문화적 제도나 체제에 관한 것이지 과학정신이나 과학지식에 관한 것은 아니다. 

널리 아려진 바와 같이 토마스 쿤은 과학적 합리성이 신성시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지적했으나 과학의 비판적 합리성 그 자체를 거부한 것은 아니다. 과학기술시대에 과학기술을 향유하면서 과학지식을 무시하고 과학정신을 외면하는 것은 가능한 것이 아니고 결코 바람직한 것도 못된다. 그렇다면 그것이 왜 우리에게 그토록 중요한 사안인가. 

우리에게 광복 70년은 많은 것을 의미하겠지만 무엇보다 그것은 분단 70년도 의미한다. 분단 70년이 강토와 국가와 민족의 분단을 의미한다면 동시에 그것은 민족사상의 단절도 의미한다. 이 단절이 유사종교에 해당하는 주체사상과 다양한 현대사조의 대립구조, 다시 말해서 전형적인 독단적 합리성과 비판적 합리성의 난립이라는 성격을 띤다면 그것은 이미 우리 민족만의 ‘비판적 종합’의 수준을 넘어선다. 

그렇다면 남한에서는 어떠한가. 우리는 그동안 지구상의 모든 사조에 대해서 연구하고 창의적으로 비판하기도 하고 그것을 수용하려고 노력했다. 그동안 혹자는 우선 서구중심주의를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혹자는 서구 사상의 조류에 편입돼야 한다고 호소하기도 한다. 또한 혹자는 민족의 전통 사상인 유불선으로 복귀해야 한다고 강변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어디에서도 아직 후련한 승전보를 들어본 적이 없다. 

사상사적으로 현대는 독단적 합리성과 비판적 합리성의 대결 구조에 직면해 있지만 동시에  분단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로서는 통일국가라는 민족의 역사적 과업을 외면할 수 없다. 말할 나위 없이 분단의 극복을 위해 강조돼야 할 가장 높은 이념적 가치는 민족주의다. 그러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남북한은 현실적으로 이른바 ‘개별적 국가주의’를 발전시켜왔다.

다시 말해서 남북한은 각각 자신을 하나의 독립된 국가로서 과시하는 일종의 국가주의를 은연중에 표방해 온 것이다. 그것은 엄밀한 의미로 민족주의가 아니며 양측의 위정자들만 탓할 일만도 아니다. 실제로는 각기 민족주의보다 더 높은 가치를 표방해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민족적 자아’라는 선험적 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민족적 자아란 공동체적 자아의 한 유형으로서 한 개인에게 인격적 자아가 있듯이 어떤 민족을 바로 그 민족이게 하는 선험적 원리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것은 인격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한 민족에게 개별성, 단일성, 정체성 및 존립성의 원리로 작용한다. 이것을 전제로 하면 통일은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다만 민족적 자아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문제로 나타나서 무엇보다 분단의 심화 현상에 제동을 걸게 될 것이다. 

그것은 또한 세계화 시대의 바람직한 민족담론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리적 국경의 개념이 약화되고 문화적 교류가 더욱 활발해지는 시대에, 다시 말해서 탈민족주의 시대애도 어디서 무엇을 하든 열린 마음으로 우리의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오히려 강화할 수도 있는 개념 장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개념을 전제로 해서 우리는 포퍼의 ‘열린사회’, 롤스의 ‘무지의 베일’, 하버마스의 ‘이상적 담론의 상황’ 같은 장치를 적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우리는 과학기술시대의 시대정신인 비판적 합리성과 우리의 염원인 민족주의가 양립될 뿐 아니라 보완관계를 이룰 수 있는 논제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진정한 의미의 ‘광복’을 갈구하며 한국현대사상이 향후 이러한 방향으로 전개되기를 염원해본다.  

엄정식 서강대 명예교수·철학
미시간주립대에서 분석철학 전공으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철학회 회장, 철학연구회 회장, 분석철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생명다양성재단 이사장, 계간 <철학과 현실> 편집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비트겐슈타인과분석철학』외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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