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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과 거짓 극복史 … 아담에 가까울수록 지식 더 많나?
편견과 거짓 극복史 … 아담에 가까울수록 지식 더 많나?
  • 김재호 학술객원기자
  • 승인 2015.08.12 2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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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읽는 과학本色 112. 『서양과학사상사』를 읽다

기독교가 자연철학의 필요성을 못느꼈다면 서양과학의 발전은 더뎠을 것이다.  법과 정치, 종교가 사회체계에서 당연시 되던 시절에 자연철학은 부수적이었다. 하마터면 자연에 대한 해석과 그에 따른 과학사는 존재하지 않을 뻔 했다.

 

무지개는 정말 일곱 가지 색깔일까? 서양과학사상의 전통에서 보면 이는 뉴턴이 피타고라스식 자연마법 전통, 즉 구의 음악을 맹목적으로 믿었던 영향 때문이다. 일곱 개 색은 일현금의 음정 길이와 연관된다. 이 때문에 경제학자 케인스는 뉴턴을 이성의 시대의 마지막 마법사이자 신동이었다고 적었다. 뉴턴은 『광학』(1704)에서 빛의 스펙트럼 색깔들은 한 옥타브 내의 일곱 음정과 같은 비율을 가진다고 밝혔다.

영국 에든버러대 과학사 교수로서 과학연구 책임자로 있는 존 헨리는 『서양과학사상사』(노태복 옮김, 책과함께, 2013)를 통해 서구과학 발전의 흐름을 짚어낸다. 우리는 왜 철학과 역사를 알아야 하는가. 그 맥락을 일깨우는 서술은 그 어떤 강연에서도 접해보지 못한 긴 호흡을 견지한다.

옮긴이인 노태복은 “과학사상은 필요불가결한 지성의 광맥”이라면서 “이 책은 과학과 인문학이라는 인류 지성의 거대한 두 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라고 할 수 있다”고 얘기했다. 과학사상으로 우리는 종교 혹은 신화와 과학을 구분하고 “실험의 시작과 사변의 끝을 가늠”할 수 있다.

방대한 지적 광맥을 캐다보면 저자가 과연 역사가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사상적 배경지식이 뛰어난 것을 알아차린다. 하지만 그는 철저히 역사가의 입장을 고수하고자 한다. 『서양과학사상사』 서문에서 존 헨리는 “고대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과학사상의 주요한 발전과 함께 과학이 서양 문화에 끼친 영향을 역사적으로 고찰”한다고 제시했다. 즉 △과학의 문화적 영향력에 집중(과학이 종교를 어떻게 대체했고, 과학적 방법은 어디에서 출발했나) △과학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순차적으로 살펴보는 것(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는 다윈식 전통적 믿음을 받아들임) △사상의 과학사를 간결하게 살펴보기(이론가보다는 역사가로서 입장을 견지)한다.

하이젠베르크의 양자물리학 관련 강연에서 나온 말을 인용하며 존 헨리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어떤 시대의 과학사상이든 그 시대 사람들에게 물리적 세계의 진리를 드러내지는 않는다. 다만 사람들이 역사상 그 시기에 세계를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하는지를 드러낼 뿐이다.”

 

과학사 전문가가 들려주는 사상의 흐름

앞서 언급한 무지개의 사례처럼 책은 풍부한 사례로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을 다루는 1장 ‘배경지식’부터, 물리학의 역사인 원자론에서 양자론이 어떻게 수학적 모델로 나아가는지 살펴보는 24장 ‘수학이 물리적 모형을 대신하다’까지 다양한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특히 각 사상가들의 원서를 직접 인용하거나 설명글을 상자 형식으로 제시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예를 들어 상자글(6.1) ‘중세 천문학과 우주론의 분리’는 학문과 기술의 구분에 대해 설명한다. 세계의 구조를 설명하려는 우주론은 학문으로 여겨진다. 종교적 확신으로 자리잡은 우주론은 미학적이고 철학적인 설명이 이어진다.

반면, 기독교의 실용적 필요에 의한 중세 천문학은 기술로 간주된다. 수학을 이용한 중세 천문학은 부활절, 항해 등을 계산하기 위해 연구된다.

고대 그리스에서 태동한 과학사상은 서기 2세기까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한다. 특히 인간 중심주의에 기대어 현상 너머를 탐구했다. 그리스 사상가들은 환원주의 전략으로 우리 주변을 감싸고 있는 불변의 진리를 찾고자 했다. 파르메니데스는 이성적 사고의 전형으로 플라톤으로 이어지며, 엠페도클레스는 감각에 대한 조심스러운 의존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자연철학의 거장을 낳았다. 플라톤은 우리가 개념의 전체목록을 이미 갖고 있다고 여겼고, 이러한 목록으로 인식과 토론, 이해가 가능하다고 간주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질료, 형상, 작용, 목적이라는 4원인으로 변화를 설명하고 변화의 가능성을 목록화하는 분류체계를 만들고자 했다.

‘서양과학사상사’는 이후 기독교 국가로 이어지며 재생을 의미하는 르네상스로 나아간다. 당시 자연철학은 학문이라기보다는 신학을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간주된 측면이 있다. 사회 정치적 환경 때문에 우주에 대한 설명은 기독교신의 어떤 의지를 나타내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그 핵심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이 있다. 과학사상사는 이데아의 개념을 창시한 플라톤보다는 자연철학자로 불리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더 가까운 것이다. 식물학과 생리학, 해부학 등에 방대한 사상을 낳은 아리스토텔레스는 이후 이슬람을 거쳐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기독교적 세계관의 뿌리가 된다.

예를 들면, 동물의 형상을 연구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세한 해부학적 구조까지 살피고 아울러 각 부분들의 형상이 어떻게 전체 형상에 이바지하는지도 기술”함으로써 플라톤과 달리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설명을 시도한다. 물론 신의 창조물을 이해하려는 이성적인 접근 방식은 토마스 아퀴나스 이전 성직자들도 계속 노력해온 것이 사실이다.

『서양과학사상사』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그 동안 간과됐던 혹은 사료 부족으로 설명이 부족했던 이슬람 사상의 선구자들에 대한 설명이 녹아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이슬람의 영향은 서양 기독교인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으로 신학적 주장을 조사하거나 검증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확인된다고 존 헨리는 설명한다. 이슬람 사상의 선구자들은 고대 그리스 저술을 아랍어로 번역하는 데 열심이었다.

그런데 이토록 중요한 이슬람의 과학사상은 16세기 들어 쇠퇴하기 시작한다. 그 이유는 첫째, 유럽인들이 신대륙을 발견했기 때문에 무슬림 지역을 통과하지 않고도 여러 나라의 직접 교역이 가능해졌다. 따라서 이슬람 지역은 상업 활동이 쇠퇴했다.

둘째, 이슬람 사상가에 대한 장기적인 후원을 중단하고 서구 유럽의 지식에 의존해서다. 서구의 저술을 번역하고 수용하는 게 훨씬 더 편하고 비용이 들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권위를 뒤집은 과학 패러다임의 변화들

서양과학사상사에서 주요한 두 지점은 우선 기독교가 자연철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면 서양 과학의 발전은 더뎠을 것이라는 점이다. 법과 정치, 종교가 사회체계에서 당연시 되던 그 시절에 자연철학은 부수적이었다. 하마터면 자연에 대한 해석과 그에 따른 과학사는 존재하지 않을 뻔 했다. 다른 하나는 그러한 권위를 부정하고 과학혁명을 이루어내려는 개별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의 노력이 병행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앞으로도 이뤄질 것이다.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가 의학계의 절대 권위자 갈레노스를 어떻게 극복하는지를 보는 것만으로 『서양과학사상사』는 의미가 있다. 권위를 거부하고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의사인 윌리엄 하비는 동물의 심장과 피의 역할을 비교해 해부학에서 절대 권위인 갈레노스의 체계(총체적이고 일관된 하나의 의학 체계)를 대체하는데 일조했다. 물론,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당시 사람들은 아담에 가까운 더 옛날 사람들일수록 아는 것이 많다고 믿었다.” 서양과학사상사의 기원이 되는 고대 그리스 사상에 그토록 ‘집착’했던 이유가 아닐까. 프랜시스 베이컨은 철학과 과학이 경험에 의해 검증될 수 있어야 하며 귀납법을 사용하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존 헨리가 보기에 베이컨은 우리가 아무런 선입견 없이 사실들을 수집해야 하지만 어떤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유용한 정보만 받아들인다고 비판한다. 이는 분명 그 당시의 한계일 것이다. 지식이 유용해야 한다는 베이컨의 사상은 후대에 주요한 영향을 끼쳤다. 이외에도 아리스토텔레스를 극복하고 새로운 총체적 체계를 수립하고자 했던 데카르트, 모든 것을 종합하고자 했던 다윈 등 ‘서양과학사상사’는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무수히 많은 사상가들에 의해 지금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가 우주로 나아가고 나노세계를 탐구할 수 있다.

『서양과학사상사』는 책의 홍보문구처럼 “플라톤에서 아인슈타인까지, 인류사를 움직인 탐구정신의 향연”을 면밀히 드러낸다. 책은 500쪽에 가까운 분량뿐만 아니라 과학사상의 맥을 짚어내는 저자의 노력이 빛을 발한다. 아울러, 삽화와 설명 상자글, 깔끔한 번역까지 두고두고 읽을 만하다. 20세기 이후 (서양)과학사상사가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재호 학술객원기자 kimyita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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