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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만조선 수도 王險城, 한반도에 없었다” … 중국 동북공정 무력화할 논리 제시
“위만조선 수도 王險城, 한반도에 없었다” … 중국 동북공정 무력화할 논리 제시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08.12 17: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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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창희 인하대 교수팀, <국방연구> 여름호에 위만조선 수도 ‘王險城’ 중국통설 비판

그간 한국 고대사의 뜨거운 쟁점이었던 위만조선 수도 ‘왕검성’ 위치와 관련, 젊은 연구자들이 새로운 학설을 발표해 화제가 되고 있다.

 
인하대(총장 최순자) 국제관계연구소(소장 김의곤) 소속 해양전략 전문가 박성용 박사와 융합고고학과 BK21+박사과정 이인숙 씨가 남창희 인하대 교수(정치외교학과)와 2년간의 공동연구를 진행한 결과, “왕검성은 한반도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들은 이 같은 내용의 논문을 군사학 분야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국방대학교 국가안전보장문제연구소 발간 등재학술지 <국방연구>제58권 제2호(2015.6)에 발표했다.

논문 제목은 「漢나라 군사작전으로 본 위만조선 왕검성 위치 고찰」이다. 기존의 역사학적 접근에 ‘군사적 분석’을 가미한 연구임을 짐작할 수 있다. 고조선학회 초대회장 윤내현 교수는 이 논문을 두고 “중국이 주장하는 동북공정의 근간을 흔드는 매우 중대한 학술적 성과”라고 평가했다.

동북공정은 중국이 2002년 시작한 대규모 연구프로젝트로 영토, 변경, 주권에 관계되는 정치적 성격도 띄고 있으며, 오늘날 한국의 역사 형성과정을 부인하는 내용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특히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한국 고대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장기적 작업을 진행해왔다. 예컨대 지금의 중국 국경 내 존재했던 고구려와 발해는 중국의 일부였으며,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킨 후 한반도 북부에 한사군을 설치했기 때문에 한반도의 일부도 중국의 영토였다고 ‘억지’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움직임에 대항해 정부는 학계에 대응 논리를 요구했지만 큰 성과가 없었다. 오히려 동북공정을 반박하기 위해 꾸려진 동북아역사재단의 행보마저 ‘중국논리’에 편승했다는 비판마저 일었다. 이런 가운데 군사학적 관점에서 실증적 근거에 기초한 이번 인하대 연구팀의 연구 결과로 중국의 동북공정을 무력화할 논리를 도출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기존 통설에 의하면 사마천이 저술한 『사기』의 「조선열전」에 근거해 기원전 108년 한무제는 육군과 수군으로 구성된 원정군을 파견해 우거의 위만조선을 정벌하고 같은 지역에 이른바 한사군을 설치했고, 그 위치는 한반도 북한 지역이라고 기술했다. 하지만 이번 인하대 연구팀은 분석을 통해 왕검성이 한반도에 존재했다는 중국의 주장에 대한 논리적 모순을 밝혀 한반도 북부에 대한 중국의 역사 연고권이 허위임을 증명했다. 이들 논문의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인하대 연구팀의 주요 주장을 살펴보자.

첫째, 중국 기록에 따르면 한나라 원정군의 수군은 산동성 북쪽에서 渤海를 관통해 한반도 평양에 상륙해 위만조선의 수도 왕검성을 공격했다고 돼있다. 하지만 한반도 평양은 중국의 동해(황해를 지칭)를 건너야 도달할 수 있는 곳으로 이동 경로상 모순이 있다.

둘째, 중국은 한나라의 수군이 갑판에 3층 누각이 있는 배를 이용해 한반도로 원정을 왔다고 주장하나, 이 배는 연안과 강에서의 전투용으로 개발된 누선으로 중국 학자들도 이러한 누선의 渡洋 항해는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나라의 원정의 목표는 넓은 바다를 지나야하는 한반도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셋째, 한나라의 수군이 바다를 건너 대동강에 상륙했다 하더라도 대동강의 하구는 현대 해병대도 상륙하기 어려운 조류가 빠른 지역이며, 대동강은 폭이 좁고 물이 얕아 한나라의 수군 7천 함대가 거슬러 올라 갈 수 없는 강이다. 따라서 한나라의 수군이 상륙하기에는 대동강 하구와 상류 모두 기술적으로나 논리적으로 부적합하다.

넷째, 왕검성이 한반도 평양에 위치했다는 기존 학설에 따르면 한나라의 육군 5만이 중국 하북성에서 한반도까지 행군하는 동안 8개의 강을 건너야 한다. 한나라 육군이 8개의 강을 건너는 동안 위만조선군의 상당한 저항이 펼쳐졌을 것이라 예상되지만 기록상 위만조선군의 저항은 한번 밖에 없었다고 돼있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가 어렵다.

다섯째, 한나라 육군의 출발지와 평양과의 거리는 육로로 약 1천300km이며 이처럼 먼 거리를 보급부대를 제외하면 겨우 일개사단 규모인 한나라의 육군이 평양으로 원정했다는 것은 무리다. 특히 연구팀은 중국 하북성에서 모집한 죄수들로 구성된 한나라 육군 병사들이 긴 행군기간 낙오하거나 탈영하지 않았다는 기록도 상식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여섯째, 위만조선의 수도가 한반도 평양일 경우 작전 거리나 환경 상 한나라의 육군과 수군의 합동작전에서 유기적 협력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군수지원에서도 상당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설득력이 없다.

일곱째, 기존 학설에서는 한나라 수군의 출발지가 한나라 육군의 출발지보다 후방에 있다고 하지만 한반도 평양 원정을 목표로 했다면 수군은 보급 문제 상 평양에서 최단거리 지점에서 출발했어야 한다. 따라서 한나라의 수군이 육군보다 후방에서 출발했다는 기존 학설은 군사적 관점에서 매우 납득하기 어렵다고 연구팀은 강하게 지적했다.

이와 같이 연구팀은 총 10건 이상의 모순점을 들어 “위만조선의 수도 왕검성은 한반도가 아닌 중국의 요동반도 혹은 하북성에 있었다”고 논증했다. 연구팀은 군사학적 분석의 타당성을 검증하기 위해 육군사관학교, 해군본부 등 관련 군 기관에 검토와 토론을 거쳤다.

이 논문의 성과가 파급되면 동북아 국제관계와 국내 사학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북한 급변사태 시 북한지역에 대한 고대로부터의 연고권을 주장하는 중국은 명분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또한 위만조선의 수도 왕검성이 한반도 평양에 있었고 따라서 한사군이 한반도에 설치됐다고 주장한 일본 총독부 지침을 답습한 기존 관점 역시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나아가 조선총독부의 역사관 계승 문제에 대한 시민사회의 비판과 시정 요구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연구에 참여한 남창희 교수는 “BK21+소형과제로 얻어낸 성과로서는 기대이상이다. 특히 북한 급변사태 발생시, 중국의 연고권 주장에 대해 반박할 수 있는 국제법적 근거를 마련한 의미가 있다. 또한, 국내 위만조선 위치 비정과 관련, 새로운 융합연구를 통한 연구 성과의 가능성을 시사한 것도 중요하다”라고 평가했다.

조선사편수회 해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인하대 고조선연구소 소장 김연성 교수도 “인하대는 고대 한국사 복원을 위해 전문성 있는 신진학자 양성에 역점을 둘 것”이라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BK21+ 에 참여한 젊은 연구자들의 꼼꼼한 눈길이 한국 고대사의 진실을 복원해내는 데 일조한 셈이니, 신진학자 양성에 역점을 두는 건 바람직해 보인다. 비록 <국방연구>라는 군사전문 학술지에 발표된 논문이지만, 향후 관련 분야에 미칠 파괴력은 중차대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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