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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낱이 해체된 ‘일본 근대화의 총체적인 스승’
낱낱이 해체된 ‘일본 근대화의 총체적인 스승’
  • 교수신문
  • 승인 2015.08.11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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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마루야마 마사오가 만들어낸 ‘후쿠자와 유키치’라는 신화』 야스카와 쥬노스케 지음|이향철 옮김|역사비평사|564쪽|30,000원

‘후쿠자와 언설의 안이한 ‘바꿔 읽기’, ‘적당한 짜깁기’, ‘실체를 넘어선 해석’으로 점철된 마루야마 마사오의 ‘후쿠자와 유키치’ 신화라는 사상누각은 야스카와 쥬노스케의 비판 앞에 그것을 구성하는 단어, 문장, 문단 하나하나 모조리 해체돼 의미 없는 허사로 무너지고 만다.

 

일본의 패전 70주년, 한국의 광복 70주년을 맞아 한국과 일본의 반전평화운동 활동가 20여명과 함께 지난 5월 8일(독일의 패전기념일) 베를린, 하이델베르크, 프랑크푸르트 일원에서 개최된 야스쿠니 반대 심포지엄 및 촛불행동에 참가했다. 아베 정권의 우경화 노선으로의 폭주와 인접국가 인민에 대한 원망과 증오로 가득한 인종차별주의적 언사가 범람하는 일본의 사회 분위기 가운데 더 이상 일본이나 한국 등 특정 국가만의 대응으로 ‘야스쿠니 반대’로 상징되는 동아시아의 화해와 평화의 가치를 지킬 수 없다는 판단 아래 같은 패전국으로 과거사 청산의 선진국으로 간주되는 독일을 필두로 ‘국제공론화’를 시도한 것이다.

이번 행사에 야스카와 쥬노스케 선생은 참석하지 못했지만, 『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사상을 묻는다』(역사비평사)에 이어,『마루야마 마사오가 만들어낸 ‘후쿠자와 유키치’라는 신화』(역사비평사), 그리고 앞으로 나올 『후쿠자와 유키치의 교육론과 여성론』(역사비평사 예정) 3부작의 국내 소개는 이러한 반전평화운동의 일환으로 기획된 경위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단순한 번역이라기보다 한일 간의 진정한 역사적 화해와 동아시아평화를 위한 한일 양국의 양심적 지식인의 지식교류, 연대협력의 산물이라고 할 것이다.

 

후쿠자와 ‘작심비판’… 30년간 ‘투명인간’ 취급당해

야스카와 쥬노스케는 1998년 나고야대 교수를 정년퇴임할 때까지 특별히 두드러진 존재감 없이 연구실에서 자료에 파묻혀 사회사상사 관점에서 후쿠자와 유키치의 교육사상을 분석하는 전형적인 ‘서재파’ 학자로 살아왔다. 그는 이미 1970년 35세의 젊은 나이에 『후쿠자와 전집』 21권에 대한 철저한 내재적이고 실증적인 분석을 통해 학계의 내로라하는 선학들의 작위적·자의적인 자료 인용과 해석에 의한 값싼 정치주의적 후쿠자와론을 비판한 연구 결과물(『일본 근대교육의 사상구조』)을 내놓은 바 있다. 특히 거기서 후쿠자와는 ‘교육칙어’ 공포 이전에 이미 ‘교육칙어’를 수용하는 인간상·교육관을 확립하고 ‘제국헌법’을 찬미한 일본 최대의 보수주의자임을 논증했다.

이는 사실상 『후쿠자와 전집』에서 자기주장에 맞는 부분만 골라 전체의 문맥과 관계없이 ‘전형적인 시민적 자유주의자’라는 후쿠자와의 허상을 만들어내고 그가 ‘교육칙어=제국헌법 체제’를 찬성했을 리 없다는 주장을 무리하게 짜맞춰온 마루야마 마사오를 전면적으로 비판한 것이었던 만큼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 나고야대 교양학부의 ‘애송이’ 연구자가 도쿄대 법학부를 무대로 ‘학계의 천황’으로 군림하고 있던 마루야마 마사오를 상대로 제기한 무모하다시피 한 비판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봉인되며 그 역시 30년간 거의 ‘투명인간’ 취급을 당하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그런 야스카와 쥬노스케가 세인들의 주목을 받으며 전면으로 부상한 것은 보통 사람 같으면 오랜 연구자 생활을 마무리할 정년퇴임 시기를 전후한 시기였다. 일본의 반전평화운동이 퇴조하고 보수반동화가 심화되는 이른바 ‘전후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시대상황에 떠밀리다시피 서재에서 나와 ‘와타츠미회(일본전몰학생기념회)’, ‘不戰병사·시민의 모임’, ‘No More 난징·나고야 모임’ 등 스스로 “익숙하지도 적성에도 맞지 않다”고 한 시민운동의 전선에 발을 내딛고부터였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전시동원과 ‘전후민주주의’의 수호라는 서로 모순된 정치적 목적을 위해 후쿠자와 유키치의 사상을 들고 나와 20대 중반이라는 너무 젊은 나이에 시대의 총아가 됐다. 이에 반해 야스카와 주노스케는 ‘전후민주주의’의 空洞化·形骸化·反動化가 심화되는 가운데 아시아 멸시와 침략을 선동하고 합리화한 ‘제국의 나팔수’이자 일본 최대의 보수주의자인 후쿠자와를 ‘동아시아의 가장 위대한 계몽사상가’, ‘전형적인 시민적 자유주의자’, ‘천부인권사상가’로 그려내고 일본에도 이렇게 위대한 민주주의 사상가가 있었다고 주장해온 마루야마 마사오와 그 추종자들에 의한 안이하고 값싼 정치주의적 교육이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민주주의와 평화의 가치를 지키지 못했음을 비판하면서 60대 중반이라는 너무 늦은 시기에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의 대표로 부상한 것이다.

 

60대 중반에 일본 ‘양심적 지식인’ 대표기수로

2011년에 나온 『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사상을 묻는다』가 후쿠자와의 아시아 멸시와 침략의 대외인식을 다룬 것이라면, 이번에 나온 후속편 『마루야마 마사오가 만들어낸 ‘후쿠자와 유키치’라는 신화』는 이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후쿠자와의 자유론, 평등론, 국가관, 제국헌법=교육칙어 수용 등의 국내정치인식을 지금까지 그 이해의 기본 틀을 제공해온 마루야마의 ‘후쿠자와 신화’를 해체하는 형태로 전개한 것이다. 그 어느 것이나 시민운동에 헌신하는 이들이 경시하기 쉬운 『후쿠자와 전집』, 『마루야마집』에 나오는 사료에 대한 철저한 내재화와 그 구조적 분석을 바탕으로 후쿠자와 유키치나 마루야마 마사오의 말을 인용해 하나하나 筆誅를 가하는, 실로 논리적이고 실증적인 분석방법을 택함으로써 핵심을 벗어난 이념적인 공격을 제외하면 거의 반론을 허용치 않는다. 그야말로 후쿠자와 언설의 안이한 ‘바꿔 읽기’, ‘적당한 짜깁기’, ‘실체를 넘어선 해석’으로 점철된 마루야마 마사오의 ‘후쿠자와 유키치’ 신화라는 사상누각은 야스카와 쥬노스케의 비판 앞에 그것을 구성하는 단어, 문장, 문단 하나하나 모조리 해체돼 의미 없는 허사로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야스카와 쥬노스케의 일련의 저작을 통한 ‘후쿠자와 유키치’ 신화의 해체는 일본의 ‘국민작가’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의 문제제기로 일본사회에서 광범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어두운 쇼와’의 광기를 ‘밝은 메이지’의 영광으로부터 일시적인 일탈로 보는 일본 근대사상의 총체적인 재구축을 요구하는 근원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전쟁 시기에 일본에 의해 저질러진 반인륜적인 행위와 반문명적인 일탈을 ‘어두운 쇼와’ 특유의 광기나 비극적인 시대의 양상으로 파악하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메이지 정부의 스승’, ‘일본 근대화의 총체적인 스승’으로 추앙을 받는 후쿠자와 유키치의 맨얼굴에 비추어 보면,‘ 어두운 쇼와’의 잰걸음은 청일전쟁 혹은 그 이전의 메이지유신에서부터 시작된 ‘밝지 않은’ 일본의 발걸음을 강화한 데 지나지 않고 또한 그렇게 봐야 일본근대사의 전체적인 흐름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다시 야스카와 쥬노스케의 문제제기로 돌아가면, 그것은 식민지배, 전쟁책임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아시아 피해 민중 개개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이향철 광운대·동아시아사회경제사

일본 히토츠바시대 경제학연구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광운대 동북아통상학부 교수로 있다. 『일본 보수정치의 농촌사회적 기원』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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