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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모험 혹은 상징질서에 내재한 변증법적 부정의 논리
사유의 모험 혹은 상징질서에 내재한 변증법적 부정의 논리
  • 교수신문
  • 승인 2015.08.11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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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시즌2 고전읽기_ 24강. 박찬부 경북대 명예교수의 ‘프로이트 『꿈의 해석』·『쾌락원칙을 넘어서』’

  ‘문화의 안과 밖 시즌2’ 고전읽기 제4섹션 ‘근대 정신과 비판’의 세 번째 강연이자 전체로는 24회가 되는 강연의 주인공은 박찬부 경북대 명예교수와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쾌락원칙을 넘어서』다. 지난 18일(토) 진행됐다.

박찬부 교수는 서울대에서 학사·석사 학위를,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예일대 객원교수, 한국라캉과현대정신분석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그의 저서에는  『현대정신분석비평』, 『라캉: 재현과 그 불만』, 『기호, 주체, 욕망: 정신분석학과 텍스트의 문제』, 『라캉, 사유의 모험』(공저), 『에로스와 죽음: 실재의 정신시학』 등이 있다. 재남우수논문상(한국영어영문학회) 등을 수상했다. 라캉정신분석가로도 활발하고 활동하고 있다. 영문학 전공자이자 라캉정신분석가인 박 교수는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쾌락원칙을 넘어서』를 어떻게 읽어냈을까. 강연의 주요 대목을 발췌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정신현상을 근본적으로 갈등의 구조로 파악하고 있는 정신분석학에서 억압(repression)과 억압된 것의 되돌아옴(return of the repressed)의 메커니즘은 그것의 제1법칙으로 자리 잡았다. 인류 원시적 이 최초의 억압을 프로이트는 ‘원초적 억압(Urverdr¨angung)’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인간화 과정의 필수 관문인 이 원초적 억압은 언제, 어떻게 이뤄지는가. 오이디푸스기에 아이가 겪는 대타자(Other)와의 경험, 즉 부모와의 접촉을 통해 구현된다. 前 오이디푸스기에 아이가 어머니 타자와 겪는 밀월같은 유착관계는 제3의 존재, 아버지 타자의 개입으로 위기를 맞게 된다. 누가 억압하는가. 억압의 주체는―나중에 정통억압, 즉 제2의 억압을 통해 드러나지만―프로이트의 구조이론에서 자아(Ich)나 초자아(¨Uber-Ich)로 판명된다. 프로이트는 이 오이디푸스기에 어머니 타자에 대한 아이의 근친상간적 충동이 억압된 것을 관찰했고 이 관찰을 바탕으로 원초적 억압설을 내세웠다. 이제 억압된 것의 되돌아옴(return of the repressed)과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타협 형성하기에 대해서 알아보자. 이 문제는 꿈, 증상, 언어의 실착, 재담 등 이른바 무의식의 형성체(formations of the unconscious)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표현된다. 이 중에서도 꿈과 꿈의 작업은 정상적인 정신활동이 벌이는 타협 형성하기(compromise-formation)의 전형을 보여준다.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에서 보여준 꿈 이론의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메커니즘을 좀 더 단순 구도로 표현하자면, 꿈꾸기의 핵심이라는 ‘꿈의 작업(dream-work)’은 ‘무의식의 의식화’의 문제, 즉 무의식적인 것이 어떻게 검열기관(censorship)을 거쳐 의식계에 떠오를 수 있느냐의 문제로 집약된다. 억압된 것=무의식의 등식에 따라 억압돼 무의식을 형성하는 ‘잠재적 꿈의 내용(latent dream content)’은 ‘억압된 것의 되돌아옴’의 원리대로 의식계로의 진입을 시도할 것이다. 그러나 이 시도는 의식계와 무의식계의 경계지점에 위치하고 있다고 믿어지는 ‘검열자(censor)’의 검열에 걸려 일차적으로 좌절을 겪는다. 여기서 검열자의 시선을 따돌리기 위한 ‘변형’과 ‘위장’이라는 정교한 메타포가 동원된다.

『쾌락원칙을 넘어서』에서 프로이트가 시도한 사유의 모험은 죽음의 문제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은 글자 그대로 쾌락원칙의 너머에 존재하는 것이었고 따라서 『꿈의 해석』의 논리를 배반하는 것이었다. 프로이트가 1933년에 아인슈타인의 물음 ‘왜 전쟁인가?’에 대한 답신 형식으로 쓴 글은 지금까지도 인간의 죽음본능, 또는 공격·파괴본능에 관한 그의 글 중 백미로 꼽히고 있다. 「왜 전쟁인가?」에 나오는 글은 공격과 파괴의 전쟁을 주제로 담고 있기 때문에 자연히 죽음본능의 설명에 대부분의 지면이 할애되고 있다.

프로이트는 승화(sublimation)라는 개념을 주로 에로스, 즉 성본능과 관련해 사용했다. 이 승화의 과정은 중요한 의미에서 욕동(Trieb·pulsion)에서 욕망으로의 변신과정을 닮았다. 그리고 이 변신과정은 이드의 산물인 욕동을 지배하는 쾌락원칙에서 자아적 욕망을 지배하는 현실원칙으로의 자리바꿈을 뜻한다. 그러므로 현실계에서의 욕망의 충족은 이드계의 욕동의 충족으로 연결된다. 라캉에게 죽음의 의미는 상징질서에 내재한 부정성이다.

라캉이 세미나 XI에서 보여주고 있는 ‘소외의 벨’ 다이어그램은 정신분석의 제 문제를 푸는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정신분석적 죽음의 문제를 설명하는 데도 효과적이다(FFCP 211). 이것은 존재 차원에서 의미 차원으로, 자연에서 문화·문명으로 이행해 가는 인간의 주체화·상징화·사회화 과정을 표시한 것인데 여기서 주목할 대목이 존재와 의미 사이에 교집합적으로 위치하고 있는 ‘非 의미(non-meaning)’의 의미이다. 이 ‘非 의미’의 영역은 라캉의 실재계가 위치하고 있는 지점이다. 다시 말해서 상징과 실재의 관계, 혹은 대타자와 오브제 a의 관계를 묻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상징과 실재의 관계, 혹은 대타자와 오브제 a의 관계를 묻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관계란 라캉적 정의에 나오는 ‘상징과 실재’의 관계에 다름 아니다. 라캉의 상징-실재의 관계는 재현-비 재현적 재현이라는 구도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앞의 존재-의미 사이에 교집합적으로 위치했던 겹치는 영역을 비 의미라기보다는 ‘前 의미,’ 혹은 ‘半 의미’라고 이름 지음이 좋을 듯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무의식을 명제론과 전명제론, 정통 인식과 전 인식 중 어느 쪽에 위치시킬 것이냐의 중요한 정신분석적 물음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도 그의 사상의 전반기에는 무의식이 ‘압축, 치환, 시간성의 배제, 모순율로부터의 일탈’(『꿈의 해석』의 7장)을 특징으로 하는 제1과정의 사고(primary-process thinking)의 지배를 받는다고 생각했으나 1915년 「무의식」 에세이에서 이러한 사유에 문제가 있음을 토로한다(SE 14: 192). 그러한 반성은 의식-전의식-무의식으로 구성된 제1기의 지형학적 모델에서 자아-초자아-이드 삼각구도의 구조적 이론으로 이행해 가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 이 메멘토 모리의 정신은 상징질서에 내재한 변증법적 부정의 논리로 프로이트의 모험적 사유의 산물, 『쾌락원칙을 넘어서』에 녹아들었다. 스핑크스가 제시한 ‘인간’의 難題를 척척 풀었던 그리스의 영웅 오이디푸스 왕과 같이 정신분석의 개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20세기의 개막 원년에 인간의 영원한 숙제였던 꿈·무의식의 암호를 해독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처럼 철석같이 믿었던 ‘쾌락원칙’과 그것에 바탕한 『꿈의 해석』에 문제가 생긴 것을 발견하고 그는 크게 당황한다. 그래서 그는 쾌락원칙의 ‘너머’를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몰린다. “에로스의 목적은 더 큰 통일체를 결성하고 보존하는 일, 간단히 말해서 함께 묶는 일(Bindung)이다. 반면에, 파괴욕동의 목적은 기존의 관계를 해체하고 파괴하는 것이다(SE 23: 148)”라고 에로스와 타나토스에 대한 고전적 정의에서 유추되듯이 삶은 ‘죽음의 생명적 실현’에 다름 아니다. 삶 속의 죽음, 죽음 속에 내재한 삶의 역설이다. 프로이트가 『쾌락원칙을 넘어서』를 통해  『꿈의 해석』에 대한 변증법적 반전을 시도했듯이 라캉은 프로이트에 대한 거슬러 읽기의 독서전략을 통해 차이를 만들며 그를 의미있게 반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각도와 시선으로 ‘메멘토 모리’의 정신을 현대인들에게 각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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