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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수시 대입정보박람회’
수험생 편의 뒷전 홍보만 급급
이상한 ‘수시 대입정보박람회’
수험생 편의 뒷전 홍보만 급급
  • 이재 기자
  • 승인 2015.07.27 1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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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오전 11시 30분경, 분노한 학부모 전모씨가 성이나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행사진행이 엉망이라며 책임자가 나와 해명하라고 한시간 동안 소리를 질렀다. 주최측 관계자들이 다가와 달랬지만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지난 2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수시 대학입학정보박람회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전씨는 이날 고3 딸을 대신해 수시 대학입학정보박람회장을 찾았다. 개장시간인 10시를 조금 넘겨 도착한 그는 박람회장 앞에 늘어선 줄을 보고 놀랐다.

▲ 이재 기자

휴가를 내고 온 참이라 돌아갈 수도 없어 일단 줄을 섰다. 한시간이나 지나서야 매표소 앞에 당도했지만 박람회장 입구로 가는 길은 여전히 멀었다. 결국 그는 다음날 입장권을 미리 사서 돌아가기로 마음 먹었다. 표를 미리 사두면 덜 기다려도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매표소 직원은 “다음날 표는 미리 살 수 없다”는 대답만 내놨다. 이유를 물었지만 시스템이 그렇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현장구매가 원칙이었다.

급기야 분노가 치밀었다. 전씨는 “주최측이 입시에 대해 걱정하고 우려하는 학부모들의 마음을 헤아렸다면 이런 식으로 일처리를 하진 않을 것”이라며 화를 삭히지 못했다. 한시간 넘게 주최측과 실랑이를 벌인 이 학부모는 볼펜으로 ‘24일 입장’이라고 적힌 표를 받아들고서야 돌아섰다.

그가 떠났지만 박람회장은 여전히 수험생과 학부모로 북새통을 이뤘다. 점심시간이 오기 전까지 긴 줄은 끊어질 줄 몰랐다. 박람회장 안도 마찬가지였다. 행사를 주최한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이번 박람회에 역대 가장 많은 137개 대학이 참가했다고 큰소리로 홍보했다. 인파를 헤집으며 취재를 하던 찰나, 전화벨이 울렸다. 대교협이었다.

이날 대교협으로부터 전화를 두 번 받았다. 한 번은 다짜고짜 오늘 소동을 기사로 낼 것인지 물었다. 그는 “취재를 해줘서 고맙다. 근데 다른 기자들은 관심도 없더라. 기사로 낼 것이냐”고 말했다. 지켜보겠다며 전화를 끊자 이번엔 “항의한 학부모가 누구냐”며 전화가 왔다. 듣자하니 한시간 넘게 거세게 항의한 학부모가 누군지도 몰랐다는 고백이다. 뒤늦게 기자에게 기사화 여부와 학부모의 신상을 캐물은 것이다.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최측에 묻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누구를 위한 박람회인가. 지역대학은 며칠씩 인근 모텔에 숙소를 차리고 열명이 채 되지 않는 상담관이 쉴새없이 입시상담을 한다. 그나마도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지 못했다며 방문 상담을 신청 받는 대학이 허다하다. 입시홍보로 차출된 학생들은 저린 다리를 주무르며 장시간 서서 일한다.

수험생·학부모는 어떤가. 대기번호 70번을 받고도 30분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한 대학의 안내에 허탈하게 뒤돌아서는 학부모들이 많았다. 이들은 또다시 손에 대기표를 들고 인파 속을 헤매야했다. 입장부터 상담까지 몇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을 지경이다. 상황이 이런데 대교협은 “매년 박람회 입장을 위해 장사진을 친 관람객의 모습이 언론에 자주 보도되므로 안내에 유념하라”는 보도자료나 내고 있었다. 수험생과 학부모가 기껏 사진기자들에게 줄선 모습이나 찍히려 박람회장을 찾는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재 기자 jae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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