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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연구할 시간에 혼자서 논문 찍어내는 게 현명”
“공동연구할 시간에 혼자서 논문 찍어내는 게 현명”
  • 최성욱·이재 기자
  • 승인 2015.07.20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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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교수의 방학 ②연구하랴 사업따랴, 눈코뜰새 없이 바쁜 방학

이달 중순을 전후해 대학은 계절학기 일정까지 모두 마무리하며 본격적인 여름방학에 돌입했다. 강의가 끝나 교수들은 한숨 돌리고 있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보기 좋게 빗나갔다.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 평가 하위권 대학(재정지원제한대학) 발표가 한 달여 남기고 있어 교수들은 여유가 없다. ‘방학이 바쁘다’는 고백을 넘어 ‘방학이 무섭다’는 하소연까지 나온다. 강의만 안 할뿐, 업적평가 관리와 학생취업 지원, 논문 투고, 입시업무까지 일과가 빼곡하다.

▲ 논문 제출, 업적평가 실적 보고, 학생지도, 강의 준비 등 교수들의 방학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각종 대학평가가 연중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교수들은 쉴 틈이 없다. 오죽하면 스스로를 ‘고급 사무직 직원’이라고 말한다. 지난 15일 한성대 교수연구동 휴게실에서 한 교수가 쉬고 있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사진 최성욱 기자

 

계명대 자연과학대학의 K교수는 방학이 고달프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방학이면 교수들이 여행을 떠나거나 세미나나 찾아다니는 줄 알지만, 실상은 학기보다 방학이 오히려 더 바쁘다. 연구실에 꼬박꼬박 출퇴근하지 않으니 한가롭게 시간이나 때우고 있는 것 아니냐는 투로 바라보는 시선도 불편하다.

K교수는 기말고사가 끝난 6월 중순부터 최근까지 눈코뜰새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학생들 성적을 입력하고, 이의신청이 들어오면 일일이 답변해줘야 한다. 그러다보니 7월을 맞았다. 첫주엔 지난 한해 동안 쌓아온 교수업적평가 실적을 정리해 교내 인트라넷에 입력했다. 계명대는 7월 기준으로 교수업적평가를 한다.

예컨대 지난해 7월 1일부터 올해 6월 30일까지 1년치 교육·연구·봉사 실적을 평가하는 것이다. 관련 증빙자료를 수집해서 교무처에 제출해야 업무가 끝난다. 어느새 7월도 중순이 훌쩍 넘었다. 8월이 오기 전에 여러 편의 논문을 끝내야 한다. 8월엔 한국연구재단 등 각종 국책연구기관에서 받았던 프로젝트를 마감해야 하는 일정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달말까지는 학회에 관련 논문을 제출해야 기한을 맞출 수 있다. 그나마 이 논문이 곧바로 통과될 때 가능한 일정이다.

마감기한은 11~12월이지만 학기가 시작되면 논문이나 프로젝트를 따로 챙길 시간이 없다는 걸 K교수는 알고 있었다. 최근 대학구조조정 등의 영향으로 학부교육이 강화되면서 강의, 과제물 첨삭, 학생 면담 등 강의만으로도 한 학기가 벅차다.

K교수를 비롯해 동료교수들이 방학에 몰아서 연구실적 경쟁을 벌이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최근 학과구조조정과 연계해 강조되고 있는 ‘학과평가’ 때문이다. 구조조정을 면하려면 교수들은 연구실적을 평균치 이상은 해줘야 한다. 옆의 학과 교수들은 몇 편 정도 썼는지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K교수는 연구실에 틀어박혀 논문을 쓰면서 자괴감에 빠져들 때가 많다고 말했다.

“학회 가서 발표하고 토론해서 여러 차례 수정작업을 거치는 식으로 논문을 쓰면 시간이 많이 걸려서 안 된다. 혼자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논문을 찍어내다시피 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런 탓에 교수들 간 공동연구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학회도 부실해지고 있지만, 이런 것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다.”

K교수는 늦어도 8월 중순부터는 새 학기 강의안과 대학원 수업 등 강의 계획을 짜야 한다.

논문 찍어낼(?) 여력이라도 있으면…

지난달 정부의 대학구조개혁 평가에서 하위그룹에 지정된 충청지역 A사립대의 한 교수는 논문을 찍어낼(?) 여력마저 없다. 긴급히 학생취업프로그램 만드는 일에 투입됐다. 이 프로젝트에는 이 교수 외에도 학부별로 교수들이 차출돼 ‘취업지도교수’라는 직함으로 참여하고 있다.

교수들이 취업에 문외한이다보니 요일별로 회의를 한다. 아이디어가 나오면 교수들은 산업체 등 현장으로 나가 업체·강사 섭외, 프로그램 검증을 받는다. 돌아오면 다시 또 회의다. 정부 대학구조개혁 평가지표 가운데 ‘자율성과 지표’의 가장 핵심이 바로 ‘취업률’인 탓이다. 이 교수는 “국제 연구실적도 중요하지만, 당장 눈 앞에 놓인 과제는 교수들이 제자 취업 한 명 더 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2년 교육부 재정지원제한대학에 지정됐던 세종대는 해가 지나면서 충격에서 벗어나는 모습이다. 이 대학 역사학과의 하문식 교수는 방학을 맞아 고조선 유물 발굴에 한창이다. 지난달부터 시작한 경기도 안성의 고조선 군사방어시설을 발굴하고 있다. 대학원 석·박사과정생 4명이 그를 돕는다. 8월초 발굴을 마치는 것이 목표다. 세종대가 최근 교육부의 대학구조조정 2차 평가 대상 지정을 피해가면서 여유가 생겼다. 덕분에 고조선의 장묘문화와 관련된 저술도 준비할 수 있게 됐다.

평가에서 하위권 지정을 피해간 대학의 교수들은 학술대회나 저술 등 활동에 시간을 쓴다고 답했다. 조규익 숭실대 교수(국어국문학과)도 한중일 비교문학 프로젝트 연구의 일환으로 일본 교토에서 열리는 국제학술세미나를 찾아 일주일간 체류할 예정이다. 이후에는 미국에서 발표가 예정돼 있다. 그간 진행했던 학술연구를 종결짓기 위한 활동 들이다.

조 교수는 “대학사회가 크게 변하고 있어서 이 과정에서 교수로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고민스럽다. 통상 중견교수는 그간 벌여놨던 연구를 마무리하고 정년을 준비하면서 학술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방학을 보낸다”고 말했다.

사업 따러 돌아다니다보니 연구업적 ‘바닥’ 면치 못해

대학평가에서 ‘안정권’에 속해도 사업전담교수들의 방학은 바쁘다. 경남의 한 국립대 전직 링크사업단장은 “솔직히 방학이 무섭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 교수는 “대학에서 여러 사업에 관여하다보면 이런저런 회의나 위원회에 불려가는 경우가 많다. 학기중에는 강의가 있어서 사업에 어느정도 소홀해도 양해가 됐는데 방학엔 예외가 없다”고 털어놨다.

각종 대학평가 일선에 몰린 사업전담교수들은 사실상 1년 내내 사업준비를 한다. 적게는 수억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이 걸린 정부 재정지원사업 수주의 경우 방학 두어달을 꼬박 매달려야 한다. 이 때문에 연구·학술활동에 시간을 내기가 힘들다.

한국연구재단의 개인과제라도 따와서 제자(대학원생)들이라도 챙길라치면 한숨부터 나온다. 사업전담교수의 연구업적평가는 대체로 ‘바닥’ 수준을 면치 못하는데, 대학의 정부지원사업을 따려고 이리저리 뛰는 동안 연구활동을 거의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업무가 몇몇 보직교수들에게만 몰리다보니 수백억원씩 벌어와도 업적평가는 바닥을 치고 다른 교수들은 좋은 평가를 받아서 인센티브를 받아간다. 마음이 착잡하다”고 토로했다.

반면 정부지원사업에 모든 공력을 쏟는 교수도 있다. 김태일 한밭대 교수는 대학의 기술지주회사와 기술사업화센터를 관리하는 데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2012년 교수로 부임한 그는 한밭대의 산학협력사업을 주관하기 위해 특별히 초빙된 인사다. 이 때문에 교육과 연구 가운데 연구에 대한 부담이 적다. 대신 산학협력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이 더 크다.

올해는 특히 교육부의 창의적 자산 실용화지원사업(브릿지사업)과 미래창조과학부 산·학·연·지역 연계 중소기업 신사업 창출지원사업, 산업통상자원부 기술지주회사 활성화 기반구축사업 등 굵직한 정부지원사업 3개가 진행돼 마음이 무겁다.

김 교수는 “다행히 브릿지사업에 한밭대가 선정돼 한숨을 돌렸지만 여전히 미래부와 산자부 사업선정을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사업마다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해서 전력투구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김 교수 역시 방학 내내 연일 이어지는 회의를 주관해야 한다.

최성욱·이재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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