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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철학적 방법론의 지평 제시 … 진리로서 세계의 내용 밝혀주는 이론”
“새로운 철학적 방법론의 지평 제시 … 진리로서 세계의 내용 밝혀주는 이론”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07.14 15: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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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시즌2 고전읽기_ 23강. 강순전 명지대 교수의 ‘헤겔 『정신현상학』’

고전읽기 강좌의 꽃이 4섹션 ‘근대 정신과 비판’이라는 데 이견은 많지 않을 것 같다. ‘근대 정신’의 연장선에서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의식과 사유, 행동과 실천, 변화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만큼 강연 하나하나가 근대-현재의 과제를 새롭게 풀어나갈 수 있는 지적 갈증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 11일(토) 진행된 ‘문화의 안과 밖’ 시즌2 고전읽기 23강은 강순전 명지대 교수의 헤겔 『정신현상학』에 맞춰졌다.


강 교수는 독일 보쿰대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학술교류처(DAAD) 장학생, 훔볼트(ALEXANDER VON HUMBOLDT) 장학생을 지냈으며, 서울시립대 연구교수로 재직했고,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한국헤겔학회 등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칸트에서 헤겔로』, 『헤겔의 정신현상학』, 『이성과 비판의 철학』(공저), 『인간에 대한 철학적 성찰』(공저)이 있다. 독일 관념론의 우람한 봉우리이자 동시에 악명 높다는 평을 받아온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강 교수는 어떻게 읽어냈을까. 강 교수는 “이 책이 말하려는 것은 ‘인식의 진리는 곧 세계의 내용’이라는 평범하게 들리는 내용이다. 하지만 『정신현상학』은 그것을 의식의 경험과 정신의 현상이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서술함으로써 이전의 철학적 이론들의 한계를 비판하고 새로운 철학적 방법론의 지평을 열어 놓았다”라고 평가했다. 주요 내용을 발췌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 J. 쉴레징거(J.Schlesinger, 1792-1855)가 그린 헤겔 초상(1831).4섹션 ‘근대 정신과 비판’ 일정은 「헤겔 『정신현상학』」(7월 11일. 강순전 명지대 교수), 「프로이트 『꿈의 해석』·『쾌락원칙을 넘어서』」(7월 18일. 박찬부 경북대 명예교수),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숲길』」(7월 25일. 박찬국 서울대 교수), 「푸코 『감시와 처벌』·『성의 역사1』」(8월 1일. 오생근 서울대 명예교수), 「하버마스 『의사소통행위이론』」(8월 8일. 장춘익 한림대 교수), 「데리다 『그라마톨로지』·『법의 힘』」(8월 15일. 김상환 서울대 교수), 「사이드 『오리엔탈리즘』·『문화와 제국주의』」(8월 22일. 김성근 서울대 명예교수) 등으로 이어진다. 물론 이들 리스트에서 스피노자나 들뢰즈 등의 이름을 기대한 이들도 있겠지만, 이들이 빠진 데는 ‘문화의 안과 밖’ 시즌2 기획위원들의 판단이 작용할 것이다.

헤겔의 대표작 『정신현상학』은 철학 공부를 하면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책이다. 본래 ‘의식의 경험의 學’으로서 기획되었던 『정신현상학』은 구성상의 혼돈 속에서 ‘정신현상학’이라는 이름으로 출판된다. 몇몇 샘플은 실제로 겉표지는 ‘정신현상학’이지만 안에 미처 제거하지 못한 ‘의식의 경험의 학’이라는 속표지를 가지고 있다. 『정신현상학』은 ‘의식의 경험의 학’이기도 하다. 의식은 어린아이이고 정신은 노인이다. 의식은 정신의 어릴 적 모습이고 정신은 의식이 완전히 성장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정신현상학』은 의식이 여러 경험을 거쳐 성장하면서 정신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 준다. 따라서 『정신현상학』은 의식이 진리를 탐구해 가는 의식의 경험의 학이자 진리로서의 정신이 자신을 드러내는 정신의 현상학이기도 하다.

의식: 사물을 가장 잘 아는 방법
정신현상학은 의식이 경험을 통해 정신으로 발전해 가는 과정이다. 의식이란 대상을 파악하는 인식 작용의 주체를 말한다. 의식이 대상과 통일돼 있는 경우 의식은 대상과 더 이상 대립해 있지 않다. 이렇게 대상과 통일된 의식을 헤겔은 ‘정신’이라고 한다. 정신은 의식과 대상의 통일이다. 헤겔은 자신의 변증법적 방법에 따라서 감각적 확신이라는 의식이 자신의 반대와 같아지는 과정을 보여 준다. 감각적 확신의 경험 결과인 보편적인 대상을 파악하는 의식은 지각이다. 대상은 보편적인 것임이 밝혀졌고 이 새로운 대상을 파악하기 위한 두 번째 의식의 형태가 지각이다. 그리고 지각의 대상인 보편적인 것은 사물이다. 하지만 사물을 잘 관찰해 보면 지각의 생각과는 달리 그것이 통일체가 아니라 관계임이 밝혀진다. 관계는 더 이상 하나의 사물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지각에 의해서는 파악될 수 없고 오성이라는 보다 고차원적인 인식에 의해서 파악된다. 지각의 방식으로 진리를 파악하고자 했던 의식은 좌절하고, 의식은 이제 새로운 진리 인식의 방법을 필요로 한다. 이 새로운 방법의 인식의 방법이 오성이다.


지각의 경험 결과인 관계를 파악하는 의식은 오성이다. 하나의 사물이 다른 사물과의 관계 속에 있고 진리는 하나의 사물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관계 속에 있다는 생각이 오성의 생각이다. 오성적 의식이 행하는 인식은 과학적 인식이다. 과학적 지식이란 어떤 사물이 원인이 돼 다른 사물로서의 결과가 나타나는 관계, 즉 인과적 관계에 대한 지식을 말한다. 하지만 헤겔은 과학적 인식인 오성에 자기반성을 요구한다. 이제 우리가 어디까지 도달했는가 뒤돌아보자. 감각적 확신은 단순한 성질이 진리라고 했지만 지각은 그것들을 지양해 포함하고 있는 사물이 진리라고 했다. 사물은 다시 지양돼 오성이 파악하는 법칙의 한 계기가 됐다. 법칙은 다시 그것을 지양해 포함하는 법칙의 뒤집어진 세계로서의 현상 세계의 한 계기가 됐다. 헤겔은 이 현상 세계가 법칙의 뒤집어진 세계라고 하는데, 이때 뒤집어졌다는 것은 법칙의 부정을 의미한다. 헤겔은 뒤집어진 세계의 논리가 생명의 논리와 같다고 한다. 헤겔에 따르면 법칙에 대한 지식보다 더 우위에 있는 것이 생명에 대한 지식이다. 의식의 경험에서 이제 새로운 대상은 생명이다. 지금까지 의식은 자신과 다른 대상에 대한 의식이었다. 하지만 이제 자기와 동일한 의식을 대상으로 하는 의식은 자기의식이다.

자기의식: 주인과 노예
의식의 진리는 자기의식이다.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나이고 나여야 한다. 이러한 나에 대한 의식을 우리는 자아에 대한 의식, 자의식이라고 한다. 자의식을 가진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한 확고한 의식, 즉 주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는 남으로부터 주체로서 존중받기를 원하고 객체로 이용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자의식은 곧 자존감이다. 자신과 다른 사물이 아니라 자신과 같이 생명을 가진 인간을 대상으로 하면서 의식은 자기의식으로 된다. 자기의식의 대상은 생명을 가진 인간이다. 주체로서의 자기의식은 대상인 인간을 자기와 같은 자기의식으로서가 아니라 자기의식 없는 생명으로서만 취급하려고 한다. 물론 객체인 인간도 인간인 한 동일한 태도를 취하며, 인정 투쟁을 통해서 승패가 결정됨으로써 주체인 주인과 객체인 노예가 결정된다. 하지만 주인과 노예의 관계는 노예가 노동을 통해 자기의식을 획득하고 주인이 편협한 자유 의식을 보편적 자유 의식으로 발전시키면서 해체된다. 이로써 주인만이 자유롭다는 일면적이고 개별적인 자기의식은 모두가 주인이라는 보편적인 자기의식으로 발전한다. 자기의식이 대상으로 봤던 생명의 진리는 자기의식임이 밝혀졌고, 자기의식은 자신의 대상도 자기의식임을 인정하면서 보편적 자기의식으로 된다.

이성: 돈키호테의 모험은 반드시 실패한다
칸트에 따르면 이 세상은 우리가 보는 대로 생긴 것이다. 이 공통된 인식 구조가 바로 정신현상학에서 말하는 이성이다. 자기의식 장의 결과는 보편적 자기의식이었고, 이 보편적 자기의식이 이성이다. 보편적 자기의식은 의식을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는 공통된 의식이다. 이것은 칸트가 말하는 인간의 의식이다. 그런데 헤겔은 칸트의 입장을 비판한다. 세계는 인간 안에 미리 구비돼 있는, 보는 방식에 의해 그러그러하게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자신의 인식을 그때그때 세계의 내용에 맞춰 가야 한다는 것이다.


칸트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주관 안에 보편적 자기의식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실천의 측면에서 보편적 자기의식은 실천 이성이다. 실천 이성은 우리에게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은지를 가르쳐 준다. 그런데 헤겔은 칸트의 도덕 법칙이 주관적 의식의 보편에 머물 뿐 객관적 현실에까지 높여지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칸트의 도덕 법칙은 인간 주관에 공통된 것이지만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헤겔에 따르면 칸트의 도덕 법칙은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 그것이 보편적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주관적 의식 안에 머무는 보편이지 객관적 현실을 반영해 거기에까지 내용적으로 높여지지 못했다. 하지만 이성은 자연을 관찰하고 세상 속에서 실천하면서 객관적 현실에 대한 내용을 습득한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객관적 현실로 높여진 이성이 정신이다.

정신: 현실 속에 실현된 이성
헤겔은 정신이 세계 속에서 스스로를 전개하는 첫 번째 형상을 ‘참된 정신’, 진리적인 정신(der wahrhafte Geist)이라고 칭하며 그것의 역사적 모델을 고대의 인륜성에서 본다. 헤겔은 중세의 신앙과 근세의 계몽이 이러한 정신의 자기 소외를 대변한다고 한다. 중세의 신앙 속에서 헤겔은 차안과 피안으로 분열된 세계를 보며, 중세의 신앙을 현실 세계로부터의 도피로 파악한다. 헤겔은 자기 자신을 확신하는 정신인 도덕적 양심이 상호 주관성을 통해 현실적으로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을 아는 정신으로서 절대지에 이르러 정신은 의식, 자기의식, 이성, 정신, 종교에 걸치는 지금까지의 모든 여정이 자신이 자신을 알아 가는 과정이었음을 안다. 결국 절대지가 객체를 주관성의 형식으로 변형하고 대상 속에서 자신을 인식하는 절대지의 자기 인식의 작용이었다. 절대지는 대상들을 관통하는 진리의 내용으로서, 지와 대상이 궁극적으로 통일되는 의식의 경험의 학, 『정신현상학』의 종점이며, 아직 실재로 나타나기 이전에 신의 머릿속에 있는 세계의 순수한 이념을 서술하는 『논리의 학』의 출발점이다.

정리: 세상의 모든 것은 정신의 현상
우리는 인식을 통해 무엇을 지향하는가. 모든 학문적 활동이 지향하는 것은 진리다. 철학은 진리가 무엇인지를 말해 주려고 한다. 『정신현상학』은 의식의 경험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는 여러 모델들을 소개하고 진리가 어떤 성격을 지녀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 정신은 진리이며, 진리를 찾아 헤매는 의식의 고향이다. 『정신현상학』은 진리로서의 정신이 의식 속에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보여 준다. 그렇기 때문에 의식의 경험 속에서 나타나는 정신은 곧 세계 속에서 현상하는 진리의 모습이다. 『정신현상학』은 의식의 경험, 즉 인식의 진리에 관한 이론이자 동시에 진리로서의 세계의 내용을 밝혀 주는 이론이다. 이 책이 말하려는 것은 ‘인식의 진리는 곧 세계의 내용’이라는 평범하게 들리는 내용이다. 하지만 『정신현상학』은 그것을 의식의 경험과 정신의 현상이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서술함으로써 이전의 철학적 이론들의 한계를 비판하고 새로운 철학적 방법론의 지평을 열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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