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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급한 대학의 母性보호
화급한 대학의 母性보호
  • 석희태 편집인/경기대 명예교수·법학
  • 승인 2015.07.14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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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 석희태 편집인/경기대 명예교수·법학

“예전에 관가의 노비가 아이를 출산하면 반드시 7일 후에 일하게 한 것은 아이를 버려두고 일에 나가 어린 아이를 상하게 할 것을 긍휼히 여겨서였다. 내가 일찍이 100일을 더 주도록 명했으나, 산기에 임해 일을 해서 몸이 지치면 자기 집에 이르지 못하고 아이를 출산하는 일이 혹 있을 수 있겠다. 그러니 산월이 되면 한 달간 노역을 면제함이 어떠하겠는가. 마땅히 상정소로 하여금 이 법을 아울러 세우게 하라.”

“교수님, 대학에 출산휴가가 어디 있습니까. 방학 때 낳도록 조절 좀 잘 하시지…….”

처음의 것은 절세의 성군 세종대왕께서 代言 즉 승지들에게 명한 말씀이다. 조선왕조실록 1430년 10월의 기사이니, 600년 가까운 그 옛날의 일이다. 뒤의 것은 근간에 어느 대학 교무담당자가 출산휴가신청에 대해 상의를 청해온 교수에게 한 대꾸다.

어느 쪽이 더 모성보호적인가? 현실에서 産月이 가깝거나 취학 전의 자녀를 둔 대학의 여성구성원이 겪게 될 어려움은 잠시만이라도 그 입장에서 대학의 제도와 환경을 돌아본다면 금방 떠올릴 수 있다. 기한부 임용된 직원과 교수의 휴직 문제, 학생의 수강기간·학비·육아비 문제, 그리고 공통적인 근무·학업·연구 중의 보육·가사 문제 등이 쉽게 짐작되는 난제들이다. “마땅한 곳이 없어서 화장실에서 아이에게 젖을 물렸다”는 어느 대학원생의 호소는 듣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마저 느끼게 한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그러한 제도적·물적인 요소보다 왜 일·학업·연구와 육아·가사를 병행하려 드느냐 하는 대학사회의 개화되지 않은 의식의 상존이라고 할 것이다.

이런 가운데 소수의 대학이 교직원과 학생들을 위해 설치한 학교직영 어린이집이나 이공계 몇 대학이 단과대학 차원에서 운영하는 보육시설은 그중 희망을 갖게 하는 선도적인 자세라 할 수 있다.

사회와 대학이 여성과 모성을 보호해야 하는 바에 이념적 배경과 국익적 이유가 있다는 논설은 사실 하나의 오래된 상식이다. 헌법이 보장한 여성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평등권·직업선택자유권·교육받을 권리·복지권 등은 누구나 존중해야 할 보편적 가치이며, 인구문제 해결과 고급인력 확보의 관건이라는 점을 말한다.

그 보편가치와 국익의 실현을 위해 국가뿐 아니라 대학도 의식을 바로잡고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국가는 학업과 연구도 ‘근로’로 인정해 보육수당지급과 같은 직장인 모성보호책을 부모학생(유자녀학생)·임신중 학생에게도 적용하고 대학의 모성보호 과정을 감독·지원하는 등 교육정책의 보완을 시급히 도모해야 한다. 대학은 모성보호에 적합한 신분보장체계화와 학사운영, 학비감면 등의 재정지원, 수유실·보육센터·어린이집 설치 등의 양육지원을 적극적으로 실행해 나아가야 한다.

많은 미국 대학들이 가정친화적 환경조성을 대학이 추구할 가치로 인식하고, 나아가 모성보호와 구성원가족의 보호를 대학 본연의 의무로까지 수용하는 것은 우리 대학이 필히 공감할 의식태도이자 문화라고 믿는다.

이러한 의식의 계몽과 제도 개선을 통해 부모학생이 그 자녀와 함께 한 대학의 공간에 평화로이 체류할 때 비로소 여성의 학문의 자유와 행복추구권은 실현되는 것이다. 금후 교육당국과 유관단체는 대학평가에서 모성보호 제도와 수준을 반드시 주요 평가항목으로 설정할 것을 제안한다. 아울러 대학으로서는 그것이 대학에 志願하는 학생과 교직원의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결정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간과하지 말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어려운 여건에서 대학의 모성보호 구현을 위해 서울대·서울여대 등에서 전개되고 있는 ‘부모학생조합’운동이나 자녀양육학생에 대한 인식개선 캠페인과 같은 움직임을 뜨겁게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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