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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자체로도 하나의 학문적 성과 …
과연 비판 대상의 ‘수준’에 도달했을까?
작업 자체로도 하나의 학문적 성과 …
과연 비판 대상의 ‘수준’에 도달했을까?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07.14 1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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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표 인제대 명예교수, 2015 전기사회학대회에서 ‘김경만 교수 비판’

강신표의 대대문화문법 이론에 대한 이해도 그에게는 불가능해 보인다. 조한혜정의 사회학 강의에 대한 그의 비판도 그 수준에 머물기에는 많이 미흡하다고 본다. 상이한 ‘입장'은 상이한 해석을 부른다. 다시 말해 각 시대 상황은 제 각각의 다른 쟁점들로 점철될 수밖에 없다.
 

 

원로 인류학자이자 사회학자인 강신표 인제대 명예교수는 쉬지 않는 기관차와 같은 학자다. 특히 그는 학문 공동체의 젊은 후학들이 내놓는 지적 작업을 꼼꼼히 읽어내고 이에 대해 매서우면서도 친밀하게 논평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올해 우리 나이로 79세인 그가 지난 6월 19일 진주 경상대에서 열린 2015 전기사회학대회에서 발표자로 나섰다. 그가 들고 나온 논문은 「강신표가 본 2015년 한국사회학의 문화적 풍경: 김경만의 ‘한국사회학 비판’을 중심으로」였다.

원로 학자의 비판이 눈길 끄는 세 가지 이유

세 가지가 눈길을 끈다. 논문에서 쉽게 생략돼 왔던 ‘주어’를 분명히 밝혔다는 점이다. ‘강신표’가 누구를 비판한다는 것을 내세웠다. 강 교수는 ‘우리’ 대신 ‘강신표’라는 코기토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는 더 이상 불투명한 ‘우리’ 속에 자신을 가두지 않는다. 두 번째는 『글로벌 지식장과 상징폭력』을 발표한 김경만 서강대 교수가 이 비판의 대상임을 명확히 했다. 강 교수의 위치에서 보면 한참 후학인데도, 그는 자신에게 제기된 비판에 충실하게 답변하는 동시에 ‘반론’을 전개한 것이다. 학문적 대화가 위축되고 있는 학문 현실에서 이는 아름다운 모습이 될 수 있다. 세 번째는 이 비판을 통해 ‘한국사회학’의 현재 ‘풍경’을 포착하겠다는 강 교수의 내면화된 의식 그 자체다. 어쩌면 ‘풍경’이란 단어는, 강 교수 시대의 학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마지막 낭만적 표현일지도 모른다. 한국사회(과)학의 형성이 이들 세대의 물리적 성장과 궤를 같이하는 한 그렇다. 그렇지만, 그에겐 ‘성찰’의 미덕이 있다. 그는 한국사회(과)학이 결여, 결핍한 요소들에 갈증을 느껴왔던 학자다. 이점에서 그는 여전히 ‘젊은’ 사회학자다.


강신표 교수의 비판을 읽어내려면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지난 5월 김경만 교수는 ‘한국적 사회과학’의 불임성을 비판한 『글로벌 지식장과 상징폭력』을 출간했다. ‘한국적 사회과학’이란 신기루를 좇지 말고 글로벌 지식시장에서 세계적인 석학들과 당대의 학문적 쟁점을 놓고 치열하게 논쟁을 벌이면서 이론적 성과를 축적하는 게 김 교수의 제안이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사회과학계의 지적 모색들 예컨대 강신표, 김경동, 한완상, 조한혜정, 강정인 등을 비판했다. 그러니까, 6월 19일 전기사회학대회에서 강신표 교수의 발제는 이에 대한 ‘응답’이자, ‘반론’이라 할 수 있다.
강 교수는 김경만 교수의 작업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김경만의 ‘한국 사회학 비판’은 한국 사회학사에서 하나의 큰 획을 긋는 사건이다. 그러나 상이한 학문 공동체에서 살아온 학자들의 의식 세계와 패러다임에 대해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음은 강 교수 글의 요약문이다.


경은 대상을 보는 사람의 위치와 감각에 따라 다르다. 위치는 주체가 차지하고 있는 시간과 공간상의 입장이고, 감각은 대상에 대하여 주관적으로 이해하고 느끼는 내용이다. 입장이 다르면 이해와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다. 한 사람이 자리 잡고 서 있는 위치는, 다른 사람이 똑 같은 위치에 설 수 없다. 따라서 입장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제 각기 독자적인 위치를 자리 잡고 살아가는 것이다. 강신표는 이를 두고 “사람들은 제각각 하나의 ‘자기 우주’(자기 동굴)를 만들어 살아가고 있다. 이 우주를 다른 사람이 쉽게 접근하기를 거부 한다”고 했다. 나는 지금부터 33년 전, 1982년도 한국사회학회 추계대회에서 동료 사회학자 한완상과 김경동의 사회학적 연구 업적을 평가하고 비판했다. 그들의 학문적 업적을 다룬다고 했지만, 결론은 나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느낌’을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았고, 한완상과 김경동의 업적은 나의 평가 저 넘어 ‘범접할 수 없는 우주’였음을 후배 사회학자 김경만은 명쾌하게 지적하고 있다.


2015년 5월에 출판돼 우리 앞에 출현한 김경만의 ‘한국사회학 비판’은 한국사회학사에 있어서 하나의 큰 획을 긋는 사건(이정표)이라고 강신표는 본다. 김경만은 33년 전 강신표가 사회학회 대회(1982년)에서 발표한 「인류학적으로 본 한국사회학의 오늘: 김경동과 한완상의 사회학」을 본격적으로 다뤘다. 이 사건을 두고 그 동안 어느 학자도 분명하게 ‘학문적 검토와 평가’를 해본 적 없이 ‘비공식적 소문’의 수준으로 논의돼 왔을 뿐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 여기서 다시 강신표가 행한 ‘한국사회학 비판’이 어떠한 내용인가를 다시 한 번 더 되돌아본다.


강신표 작업을 재검토하는 김경만의 노력은 나에게 스스로 지난날의 논의를 재반성하는 기회를 제공해줬다. 이것은 참으로 소중한 기회다. 강신표가 생각하기에 이는 한 개인의 자기성찰 기회일 뿐 아니라, 한국 사회학, 더 나아가서 한국 사회과학 전반에 대해 중요한 ‘성찰적 도전’을 그가 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이 책에서 강신표, 김경동, 한완상, 조한혜정, 강정인 등을 다루면서 한국사회학 및 사회과학의 학문적 풍토를 면밀하게 검토하며, ‘토착화’ 작업이라는 명목 하에 얼마나 무모한 목표를 설정하고 자기의 역량을 낭비하고 있는가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아울러 자신이 어떻게 세계학계의 일류 석학들과 대등하게 학문적 논쟁과 토론을 펼쳐오고 있는가를 진솔하게 우리에게 밝히고 있다. 이는 사회학 학문분야에 새롭게 뜻을 두고 참여하려는 젊은 사회학도들에게 중요한 길잡이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직접적인 도전과 학문 성과 사이


한편 김경만의 문제의식은 한국 사회학 및 사회과학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스스로 평가해 보는 ‘자리 매김’ 작업으로 보인다. 어떤 점에서는 일부 한국 학계에서 그에게 보내고 있는 부적절한 평가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으로 보이며, 그 실상을 고발하고 있다고 하겠다. 한국학계의 풍토로 본다면 그의 학문적 업적은 대단한 것이다. 우선 그의 세계학계에서의 위상은 일찍이 어떤 선학들도 이루지 못했던 학문적 성과를 올려놓고 있다. 그리고 그러기 때문에 이러한 작업을 그는 해 낼 수 있은 것이다.


『담론과 해방』(2005)은 김경만이 ‘글로벌 지식 장’에서 세계적인 석학들과 당대의 학문적 주제의 쟁점을 두고 치열하게 논쟁을 벌이면서 이룩한 중요한 이론적 성과다. 이 책, 『글로벌 지식 장과 상징폭력: 한국 사회과학에 대한 비판적 성찰』에서 저자는 이러한 작업이 얼마나 고독하고 힘든 작업이었던가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더 큰 비중은 한국사회과학의 ‘서구 종속성 재생산’론을 비판하는 데 있다. 이른바 ‘토착이론’, ‘한국적 이론’, ‘탈식민지이론’이 하나의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신랄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의 입장에 전적으로 동의할 순 없지만 중요한 측면을 지적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사회학은 한국사회문화의 변동속에서 진행된 족적이다. 나를 포함해 서양 사회과학을 본격적으로 수용하면서 진행된 과정도 그는 심도 깊게 재검토하고 있다. 강신표의 김경동에 대한 비판은 당시에 해직교수가 된 한완상의 사회학을 좀 더 부각하지 않은 것을 규탄한 것임을 그는 알 수 없었을 것이고, 강신표의 대대문화문법 이론에 대한 이해도 그에게는 불가능해 보인다. 조한혜정의 사회학 강의에 대한 그의 비판도 그 수준에 머물기에는 많이 미흡하다고 본다. 상이한 ‘입장’은 상이한 해석을 부른다. 다시 말해 각 시대 상항은 제 각각의 다른 쟁점들로 점철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김경만이 제기하는 한국사회과학의 비판적 검토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지나온 수십 년 동안 한국사회과학의 궤적을 이렇게 날카로운 입장으로 ‘비판’하는 작업은 일찍이 누구도 시도해 보지 못했다. 이러한 작업 자체만으로 또 하나의 학문적 성과다. 그는 자신이 세계학계에서 이룩한 확고한 ‘이론적 배경과 학문적 성과’가 있기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엄밀한 방식으로 한국사회과학을 점검한 것이다. 그는 한국에서도 ‘글로벌 지식 장의 아비투스’를 체화한 연구집단이 출현하기 위해 이러한 비판은 반드시 거쳐야할 과정이라고 믿고 있다. 따라서 세계학계를 주도하는 다음세대 학자들이 나오게 되는 징검다리가 되기를 기원하고 있다. 그의 증언은 이 시대의 중요한 기록이다. 아울러 한국사회과학이 새로운 수준에 이르렀음을 확인시켜주는 작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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