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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물 위를 자유로이 떠다니는 그의 진화
하늘과 물 위를 자유로이 떠다니는 그의 진화
  • 김재호 학술객원기자
  • 승인 2015.07.14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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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읽는 과학本色 109. 거미

많은 사람들이 거미가 하늘을 난다는 사실을 무척 낯설어 한다. 그런데 지난 3일 <네이처>에 「바람에 실려 나는 거미들이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가다(Airborne spiders can sail on seas)」는 흥미로운 내용이 실렸다. 거미가 물 위도 나아간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거미가 하늘을 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찰스 다윈은 1832년에 남아프리카의 해안에서 비행거미를 관찰해, 공중에서 멀리 여행하는 거미가 많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소개했다.
오사키 시게요시의 『거미의 법칙』(바다출판사, 2004)에 의하면, 일본 야마가타 현에서는 눈이 내리기 직전 거미가 바람에 실려 날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거미가 바람을 따라 다른 곳으로 날아가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 갈거미과 거미는 물 위에서 거미줄을 닻으로 이용한다. 사진 출처= <네이처>

거미는 거미강(Class) 거미목(Order)에 속하는 절지동물 중 가장 큰 생물군이다. 전체 생물다양성 가운데 7위에 해당한다. 전 세계적으로 114과(Family) 3,935속(Genus) 44,906종(Species)이 기록돼 있으며, 한국산 거미에는 45과 45과 267속 715종이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2014년 통계). 거미류는 독을 주입하는 위턱을 가지고 전갈, 진드기와 같이 8개의 다리가 있다.
『거미생물학』(김주필, 바이오사이언스, 2008)에 의하면, 거미류는 약 4억 년 전 고생대 데본기에 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과학자들은 거미가 삼엽충에서 진화한 것으로, 물에서 살다가 뭍으로 올라와 낙엽층, 토양과 같은 어둡고 습한 곳에서 오래 머무른 것으로 파악 한다. 오늘날 거미는 공중에서 거미줄을 치고 살거나, 땅 속이나 뭍을 배회하고 있다.

거미줄 치고 사는 종은 절반 뿐
4억년간 진화를 하면서 거미는 처한 환경에 따라 새똥무늬를 가지거나 개미 흉내를 내고, 하얀 꽃 속에 마치 꽃술인양 진화해 벌레를 기다리는 등 생존법칙을 터득했다. 거미는 모두 줄을 뽑지만 거미줄을 치고 사는 종은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절반은 그물을 치지 않고 여기저기 떠돌며 먹이를 사냥한다. 그래서 떠도는 거미는 청각과 시각이 발달했고 튼튼한 다리를 가지게 됐다.
예를 들어 농발거미는 다리의 촉각으로 바퀴벌레를 잡고, 깡충거미는 높이 뛰어 공중의 파리를 잡는다. 반면 거미줄을 치는 거미는 진동으로 물체를 감지해 눈이 작아지고, 다리가 가늘고 길어졌다. 이처럼 다양한 적응 진화를 위해 거미는 새끼 때 여러 환경으로 분산한다.


알에서 깬 무당거미 새끼는 처음 일주일은 200마리가 모여 생활한다. 일주일 정도 뒤 탈피를 하고 무게 0.5mg가 된 새끼 거미는 나무나 풀 끝부분에 올라가 바람이 불 때 꽁무니를 위로하고 거미줄을 뿜는다. 그리고 거미줄을 부력 삼아 바람을 타고 ‘유사비행’을 하며 날아간다. 몇 미터에서 수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비행거리를 따라 낯선 곳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때론 거미가 살아갈 수 없는 곳에 떨어지기도 한다.
그동안 영국 런던의 자연사 박물관의 거미 연구원 모리토 하야시(Morito Hayashi)는 벌루닝 거미(ballooning spider, 공기 중으로 분산되는 거미)가 젖은 곳에 떨어지면 목숨이 위태로울 것이라고 추정했다. 지구 표면의 70%는 물로 이루어졌기에 거미들은 얼마든지 물 위에 떨어질 수 있다. 하야시 연구팀은 영국 노팅엄대에서 자신의 생각을 실험해 보았다. 실험 결과 물 위에 떨어진 벌루닝 거미는 죽지 않았다.


또한 연구원들은 바람으로 모의실험을 해봤다. 그 결과 많은 거미들이 다리나 배를 돛처럼 올려, 스스로 바람을 맞아 물 위를 이동해 나아갔다. 오히려 바람을 추진력 삼아 물 위를 이동한 것이다. 거미는 연구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쉽게 뭍으로 갔다. 거미는 해수와 담수 어디에서든 물에 젖지 않는 다리로 버텼다. 아울러 거미는 물 위의 어느 부분에 떠있기 위해 거미줄을 닻처럼 떨어뜨리기도 했다. 하야시는 거미가 자신의 몸에 수분이 사라지는 것을 막고, 배고픔도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다고 밝혔다. 때문에 물 위에 떠서 뭍에 닿을 때까지 거미는 일정 기간 살아남을 수 있었다.
거미의 다리가 물에 젖지 않는 이유는 다리 표면이 기름으로 덮여 있기 때문이다. 이는 거미가 거미줄 위에서 붙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거미 진화 초기의 거미줄은 사는 집을 짓는 용도였다. 그러다가 많은 거미줄이 끈끈한 점액을 매달고 먹이 포획용으로 바뀌었다. 환경에 따라 거미줄이 진화한 것이다.


과학자들은 거미가 사냥하기 알맞은 형태에 따라 접시모양, 깔때기모양, 불규칙모양, 둥근모양 따위의 거미줄이 생겼다고 본다. 둥근모양의 거미줄은 현재 가장 진화된 거미줄이지만, 최근 더 진화한 거미줄이 발견됐다. 무당거미의 경우 거미줄에 일부러 썩은 먹이를 방치해 날벌레를 유인했다. 호랑거미는 거미줄에 흰 띠를 예쁘게 수놓는 형태 이용한다. 즉 자외선으로 꽃을 찾는 곤충들의 감각을 파악해 사로잡은 것이다. 올가미거미는 거미줄을 몇 가닥 만들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한쪽 다리에 끈끈이 방울이 붙은 줄을 매단다. 그리고 암컷 나방의 성페로몬 화학물질을 분비해 수컷 나방을 유인한다. 나방이 접근하면 끈끈이 방울이 붙은 줄을 둥글게 던져 낚아챘다.


거미가 거미줄을 조금만 만드는 것이 가장 진화한 경우가 되는 이유는 에너지 효율 때문이다. 거미줄은 단백질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에너지가 들 수밖에 없다. 이 에너지를 조금이라도 아낀다면 몸의 다른 부분을 정교하게 하는 데 쓸 수 있다. 거미는 거미줄에 먼지가 달라붙어 점착성이 떨어지거나, 해가 지거나 뜨는 것에 따라 헌 거미줄을 새로 가는 특성이 있다. 거미학자 데이비드 피카드(David Picard)는 거미의 새 거미줄에 80~90% 정도의 낡은 거미줄 성분이 섞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거미가 낡은 거미줄을 삼킨 후 다시 사용하기 때문이다.

벼 해충의 천적 ‘친환경 거미농법’ 연구 중
우리나라 환경부는 거미류를 많은 농업생태계와 산림생태계에서 해충의 밀도를 억제하는 중요한 천적군으로 보고 있다. 징그러운 생ㅋ김새로 사람들의 오해를 받지만, 거미는 여러 면에서 인간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과학자들은 거미가 생산하는 거미줄을 의학, 농학, 군사학 따위에서 활용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또 거미의 독으로 해독제를 만들거나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 쓰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거미가 벼 해충의 천적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생물 농약으로 이용하는 친환경 거미 농법도 연구되고 있다. 이미 호주 사람들은 집안에 거미가 사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일부러 거미를 잡아와 집에 풀어놓는 사람들도 있다. 모기나 파리 따위의 해충이 거미 덕분에 많이 줄기 때문이다.


오사키 시게요시는 언젠가 강에서 호랑거미를 채집해 고속의 흡연석에 탔는데, 열차가 출발한 지 몇 분 후 호랑거미들이 그물바구니 안에서 요동치더라는 이야기를 했다. 시게요시가 비흡연석으로 갔더니 거미들이 차츰 안정을 되찾았다. 거미류는 지구온난화와 환경오염에 반응하는 지표생물로 이용될만큼 민감한 동물이다. 우리나라도 벌목, 목조 건조물감소, 동굴 환경훼손, 산림 환경 변화, 지구 온난화, 해안지대 개발과 같은 이유로 점점 거미들이 보이지 않고 있다.
거미는 약 4억년을 진화해오면서 곤충의 수를 조절했고, 많은 포유동물이 풀을 먹고 살찔 수 있게 해주었다. 집에서 기어 다니는 거미를 본다면 잡아 죽이기 보단 밖으로 던지는 것은 어떨까. 거미가 내일 당장이라도 우리를 위해 좋은 무엇을 해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김재호 학술객원기자 kimyita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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