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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시적 실체의 의미 탐색 … 국내 첫 단행본 연구 성과
비가시적 실체의 의미 탐색 … 국내 첫 단행본 연구 성과
  • 송혜영 영남대·서양미술사
  • 승인 2015.07.07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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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요제프 보이스, 우리가 혁명이다』 송혜영 지음|사회평론|296쪽|23,000원

 그 누구보다 보이스는 훨씬 더 치밀한 이론으로 무장하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삶의 예술을 실천했다. 이를 위해 그는 미술가와 행위예술가뿐 아니라 교육자와 혁명가, 목자와 순교자, 진화론자와 샤먼 같은 다양한 역할을 택했다.

▲ 요제프 보이스 「우리가 혁명이다」(1972) 포스터.
20세기 독일미술을 대표하는 선두주자들 가운데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 1921~1986)는 단연 첫 번째 인물로 꼽힌다. 그의 작품들은 베를린의 함부르크역 현대미술관과 뮌헨의 현대미술관, 파리의 퐁피두센터와 런던의 테이트 모던,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과 서울의 리움 미술관 등 전 세계 유명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그만큼 미술사적 의미에서 차지하는 그의 위상은 독보적이다. 하지만 이런 업적과 국제적인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동안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한 예로 독일의 보이스와 종종 비교되는 미국의 앤디 워홀에 관한 책들은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보이스에 관해서는 여러 편의 논문만 발표됐을 뿐, 번역서와 단행본은 아직 한 권도 없었다.


물론 서양미술전공자들에게 보이스란 이름은 그다지 낯설지 않다. 항상 모자와 조끼, 청바지 차림을 했던 개성적인 이미지와 함께 그에겐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 유명한 보이스 신화에 의하면, 2차 세계대전 중인 1944년 독일 전투기 JU87은 크림반도에서 적군의 공격을 받고 추락했으며, 그 안의 조종사 한명은 즉사했고, 나머지 한 명인 보이스는 기적적으로 생존했다. 그 지역 유목민인 타타르 사람들은 심하게 부상당한 보이스를 그들의 집으로 데려가 동물의 지방으로 상처를 치료하고 펠트로 그의 몸을 따스하게 감싸주고, 우유와 치즈로 영양을 공급해줬다. 그리고 이 경험을 계기로 보이스 작업에서 펠트와 지방은 중요한 재료가 됐다는 것이다. 이처럼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하는 보이스 신화 외에도 죽은 토끼에게 말을 하거나 코요테와 함께 사흘을 보냈던 행위를 비롯해 그가 한국의 백남준과 평생 절친한 사이였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바다.


그러나 이런 단편적인 이야기만으로 보이스의 광범위한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그는 뒤셀도르프 미술대학의 조각과를 졸업했지만, 드로잉과 그림, 조각과 설치, 유리진열장과 선반작업, 멀티플(Multiple) 등의 다양한 매체와 방식으로 작업했다. 멀티플은 강연회와 토론회, 행위의 결과물을 판화와 엽서, 사진과 오브제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대량 복제한 작업을 의미한다. 또한 독일인 특유의 사변적인 성향과 광범위한 지식으로 무장된 보이스의 세계관은 통합주의로 요약되는데, 여기에는 유럽 신화와 전설, 독일 이상주의와 낭만주의, 기독교와 샤머니즘, 동양사상과 범신론, 의학과 자연과학이 폭넓게 반영돼 있으며, 무엇보다 루돌프 슈타이너의 인지학은 그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통합주의와 사회적 조각의 탄생
여기서 다시 워홀과 보이스를 비교하면, 워홀의 그 유명한 마릴린 먼로나 꽃그림은 누구에게나 친숙하게 다가오지만 보이스의 지방덩어리나 무겁게 집적된 펠트더미를 보면서 감동을 얻기란 쉽지 않다. 요컨대, 보이스의 의도는 사물의 가시적인 아름다움이나 형식이 아니라 사물에 내재된 비가시적인 실체와 그 의미를 깨닫도록 하는 데 있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아는 것만큼 본다’는 주장은 보이스의 경우에 매우 유효한 힘을 발휘한다.


‘보이스’하면, 먼저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라는 그의 명언이 떠오른다. 이 말은 종종 미술이나 음악에 종사하는 예술가를 의미하는 것으로 오해를 받았지만, 사실은 전통적인 예술 활동의 범주에서 벗어나 인간의 총체적 삶으로 ‘확장된 예술개념’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보이스는 미술의 조형 작업과 관련된 기존의 장르 개념에서 벗어난 ‘확장된 예술개념’을 이끌어내고, 인간의 삶에 유익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사회적 조각’을 주창했다. 그러므로 ‘사회적 조각’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전시되는 가시적이고 물질적인 예술작품에서 벗어나 기존의 구태의연한 삶의 형태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사회의 모든 영역, 예컨대 정치, 경제, 교육, 문화, 환경, 군사 문제 등을 광범위하게 포함한다.


보이스에 의하면, 누구든 주어진 현실에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제 몫을 다할 때 예술가가 될 수 있으며, 이런 ‘사회적 조각’은 모든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따스한 조각’이 된다. 인간 공동체의 삶에 따스한 온기가 스며든다면 차갑게 경직된 기존의 낡은 사회는 병든 모습에서 벗어나 인간의 영혼과 삶을 촉진시키는 건강한 모습으로 변화한다. 물론 이를 위해 모든 사람은 사회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책임을 느끼고 창의력을 발휘해 사회의 발전과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 한 예로, 보이스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7천 그루의 참나무」(1982~1987) 프로젝트를 통해 산업화로 황폐해진 카셀의 도시공간을 녹색의 자연공간으로 바꿨는데, 이 나무들은 지금도 살아 숨 쉬는 ‘따스한 조각’이 됐다.


보이스는 이처럼 삶과 예술의 통합을 추구했다. 이는 물론 보이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른바 아방가르드를 자처한 20세기의 미술가들 가운데 상당수는 미술을 통해 삶을 변화시키고, 미술을 삶의 형식으로 이끌어낸다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 보이스는 훨씬 더 치밀한 이론으로 무장하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삶의 예술을 실천했다. 이를 위해 그는 미술가와 행위예술가뿐 아니라 교육자와 혁명가, 목자와 순교자, 진화론자와 샤먼 같은 다양한 역할을 택했다.

전후 독일의 독특한 시대적 상황
물론 ‘사회적 조각’의 성립 배경에는 독일 사회전반에 대한 혁명적 변화를 요구하는 독특한 시대적 상황이 작용했다. 즉, 독일의 68학생운동과 일명 ‘독일적군파(Rote Armee Fraktion)’로 불리는 극좌 테러리스트 집단이 형성되던 시기에 보이스는 뒤셀도르프 미술대학의 교수로 재직했다. 그는 무정부주의와 반자본주의, 사회개혁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으며, 이를 토대로 ‘독일학생당’(1967)과 ‘국민투표를 통한 직접민주주의 단체’(1971), ‘자유국제대학’(1973)을 창립했다. 이렇듯 보이스는 전후 독일의 독특한 시대적 상황에서 삶의 예술을 주창하며 자신을 신화적 존재로 만드는 과시의 전략을 성공시켰던 것이다.


모두 10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보이스의 생애 순으로 전개되며, ‘사회적 조각’은 5장의 핵심주제가 된다. 무엇보다 작품선정에서 나는 꽤 애를 먹었는데, 가능하면 보이스의 다양한 역할과 여러 가지 유형의 작업을 골고루 살펴보고, 그의 논리 정연한 ‘온기이론’이 모든 작업에 일관되게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객관적인 관점에서 보이스 작업의 성과를 검토했으며, 그동안 의구심을 불러 일으켰던 ‘보이스 신화’의 진위여부를 밝혔다. 9장은 보이스가 이루어낸 미술사적 의미를 정리하고, 10장에서는 세 명의 대가인 마르셀 뒤샹과 앤디 워홀, 한국의 백남준과 보이스의 작품세계를 서로 비교했다.


아무쪼록 이 책이 보이스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현대미술의 큰 맥락에서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특히 보이스가 의도한 대로, 각박한 현실의 삶을 치유하고 변화시키는 예술의 힘에 공감하는 독자들이 있다면 더욱 기쁘겠다.


송혜영 영남대·서양미술사
독일 레겐스부르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양미술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주로 바실리 칸딘스키와 요제프 보이스에 관해 연구하고 발표했으며, 그 외에도 다수의 논문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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