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미국 당국은 일리노이주에 사는 51세 여성 엘리사 커크패트릭(Elisa Kirkpatrick)의 집에서 개 41마리와 고양이 15마리, 돼지 2마리 그리고 닭, 앵무새, 보브캣(bobcat), 아프리칸 서발(African serval) 한 마리씩을 발견했다. 집은 동물들의 배변으로 지저분했고, 죽은 동물들이 냉동고 깊숙한 곳과 여러 가방에서 발견됐다. 커크패트릭은 동물학대와 수의사 행세를 했다는 이유로 기소됐다.
이 사건은 지난달 26일 미국 <데일리 리퍼블리칸(The Daily Republican)>에 ‘애니멀 호더 기소되다(Animal hoarder charged)’로 소개됐다.

윌리엄슨 카운티에 사는 변호사 브랜든 자노티는 커크패트릭이 소독하지 않은 환경에서 개를 수술시켰다고 주장했다. 그 개는 며칠 후 죽었다. 자노티는 이 여자를 기소하는 과정에서 동물들의 복지를 가장 최우선으로 두었다고 말했다. 동물과 사회 모두의 건강과 안전을 고려한 결과라는 것이다.

저장강박장애는 단순 수집가?
커크패트릭은 애니멀 호더(Animal Hoarder, 동물저장강박자)였다. 저장강박증인 호딩(Hording)은 수집(collection)과 다르다. 『잡동사니의 역습』(랜디 O. 프로스트, 게일 스테키티, 윌북, 2011)에 따르면, 보통의 수집·저장 활동은 목숨을 위협하지 않는다.

하지만 저장강박증이 있는 사람들에게 수집·저장활동은 병리적이다. 잡동사니로 인해 생활공간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일상생활이 방해받기 때문이다. 호더들은 저장소의 수나 크기에 상관없이 공간을 채운다. 4개의 집을 가진 사람이 한 집을 다 채우고 다른 곳으로 이동해 또 채운 경우도 있었다.
지난 2005년 일본의 아파트 한층 바닥이 50대 남자가 20년간 모은 선물과 잡지의 무게로 무너져 내린 사건이 발생했다. 또 어떤 여자의 집에는 쇼핑으로 산 물건들이 쌓여있었다. 여자는 물건을 살 때 점원들이 자신을 추켜세워 집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존중을 받고 자신이 가치 있음을 느꼈다.
평범한 일상을 살던 여성이 집에서 강간을 당한 후 그 방에 물건을 쌓기 시작한 경우도 있다. 물건들이 방을 채워서 자신을 안전하게 해주고 있으며, 나쁜 기억과 약점으로부터 보호해 준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저장물을 보며 자신이 사회에서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여자도 있다. 여자는 마구 모은 요리책, 과학책, 경제학 잡지 따위를 보며 요리사가 되고 과학자가 되기도 했다. 물건들이 자신의 분신이자 역사라고 생각하는 한 호더의 경우, 물건을 버리면 자신의 일부나 가족 구성원이 죽는 것이라 여겨 오래된 영수증 하나까지 모았다.

호더들은 남이 자신의 집을 치우겠다고 들이닥치는 것을 최악의 경험으로 간주한다. 치우는 사람들에겐 쌓인 물건이 아무 가치 없는 것이지만, 호더 증상이 있는 자들은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기는 셈이었다.
그들은 잡동사니 안에도 물건들 나름의 위치가 있다고 생각해 일부를 치우거나 옮기면 질서가 망가진다고 생각한다. 강제로 물건이 없어지면 저장강박 증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다시 물건을 모았고, 심하면 생을 단념하기도 했다.
많은 저장강박 환자는 물건을 모으지만, 일부는 동물을 모은다. 동물저장강박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 증상이 극단적이기 때문에 한번 알려지면 널리 알려지기 일쑤였다. 이들 대다수는 40세를 넘긴 여성으로 독신, 미망인, 이혼자였다. 평균 40마리 내외의 동물을 모으지만 100마리가 넘는 경우도 있다. 미국에서만 매년 700~2천 건 가량의 새로운 사례가 확인된다.

대부분의 애니멀 호더는 수집한 동물들이 자유롭고 자연스럽기를 원했다. 그래서 동물들의 행동에 어떤 규칙도 두지 않았다. 동물들은 원하면 어디서나 먹고 잤으며, 아무 데나 대소변을 봤다. 가구 표면이나 침대, 세면대 따위가 동물들의 배설물과 여러 쓰레기들로 15cm나 덮여 있는 사례가 발견돼 충격을 안겨준다. 이들은 동물 이외에 신문지, 쓰레기, 옷, 음식들도 수집했다. 때문에 동물들의 움직임은 더욱 제한되고 위생도 나빠져 집안은 한층 불결해진다. 혹여 불이라도 난다면 물건들은 불쏘시개가 돼 동물과 사람이 제대로 탈출하지 못하게 된다.
애니멀 호더들은 같이 살고 있는 가족들의 복지와 건강에 닥치는 나쁜 효과를 인지하지 못한다. 병든 동물들은 인간에게 인수공통질병(선 페스트, 광견병, 인플루엔자, 톡소플라스마증 등), 유독동물성중독증 같은 건강 문제를 일으킨다. 또한 인간들은 동물들이 닿은 집안 식기를 사용해 기생충에 감염될 수 있다. 동물의 몸에서 나오는 악취로 생긴 유해 암모니아가 이웃에까지 퍼지기도 했다.

애니멀 호더는 스스로에게 기본 욕구 충족을 위한 물건과 서비스를 주지 못한다. 이들의 생활방식은 특히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노인, 아기)의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노인과 아기의 50% 이상이 애니멀 호더와 살 때 더 학대당한다는 결과가 있다.
터프츠대의 동물과 공공정책센터(Center for Animals and Public Policy) 의장인 게리 패트라넥은 애니멀 호딩을 인간의 병적 행동이라고 정의했다. 동물들의 고통을 알지 못하며, 동물을 계속 모으는 행동을 조절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1997년 패트라넥은 ‘애니멀 호딩을 연구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그는 보고서에 애니멀 호딩은 한 가지 이유만으로 설명되기 어려운 매우 복합적인 성격의 행동이라고 적었다. 심리학자들은 애니멀 호더가 △망상 장애 △애착 장애 △강박 장애 △동물 애호 △치매 △중독과 같은 여러 질환을 가진다고 보았다.
망상장애의 경우, 호더 자신들의 주거지와 동물들의 건강이 얼마나 나쁜지 통찰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잘못된 상황을 인정하지 않고, 어떠한 도움도 거절한다. 오직 자신만이 동물과 공감하거나 함께 소통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애착 장애의 경우, 호더들 대부분이 어린 시절 가정에서 트라우마를 경험했다. 충분한 부모-아이 관계를 맺지 못해 이것이 동물들과 동료애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강박장애는 여러 심리 질환 모델 중 가장 큰 지지를 받고 있다. DSM-IV(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에도 애니멀 호더를 강박장애나 강박성 인격장애로 설명한다. 애니멀 호더는 동물들을 보호하고 돌보는 데 종종 강한 책임감을 느낀다. 그래서 할 수 있는만큼 많은 동물들을 획득하려고 한다. 다수의 애니멀 호더가 움직이지 않는 물체도 모으는 것을 보면 강박장애를 더욱 확신할 수 있다.

마음의 병 떨치려 동물 모으는 데 집착
애니멀 호더는 집안의 동물들이 강제로 치워지는 것 이외 커크패트릭의 경우처럼 동물학대로 기소되기도 한다. 20세기 중반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호딩이 물건을 획득해 주변 세상과 관계를 맺는 방식 중 하나라고 말한 적이 있다. 처벌이 능사가 아니다. 우선 호더들의 고통스런 과거를 더듬어 맞서게 해야 한다. 쌓아둔 물건이나 동물들을 함께 조금씩 줄여나가야 한다.

동물애호단체인 ASPCA(The American Society for the Prevention of Cruelty to Animals)는 ‘홀딩을 막는 팀’을 구성했다. 이 팀은 호더들에게 애완동물을 건강하게 키우려면 몇 마리가 적당하고,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를 알려주고 있다. 그럼에도 저장강박은 치료가 아주 어렵고, 장기간에 걸쳐 상당한 노력을 해야 한다.
“나는 평생 남을 돌봤습니다. 내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사랑받거나 환영 받는 존재는 아니었어요. 동물들은 저의 공허함을 채워줬거든요.”
고양이 86마리를 데리고 있는 한 여성의 말이다. 우리는 이들을 격려하고 건전한 관계를 가져줘야 한다. 지금도 많은 호더들이 자신들이 쌓은 상처의 벽을 녹여 손을 내밀어 줄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김재호 학술객원기자 kimyital@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