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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 인문학 위기론을 성찰하다 ? 위기론의 수사학과 정치학
기획연재 : 인문학 위기론을 성찰하다 ? 위기론의 수사학과 정치학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2.11.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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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1-27 23:06:15

또다시 인문학 위기 논쟁을 살펴보는 것은 맥빠지는 일이다. 김이 다 빠져버린 맥주처럼, 가슴을 시원하게 하는 짜릿함 대신 눅진함마저 느껴진다. 한때는 지면을 뜨겁게 달궜던 이 논쟁이 더 이상 시원하지 않은 것은 그 문제가 해소됐기 때문일까, 아니면 더 말해봤자 소용이 없기 때문일까. 그러나 여전히 현실에서 인문학의 위기는 진행중이다.

변화 끌어내기는 부족한 역량

논쟁 당시에는 당장이라도 인문학이 고사할 것처럼, 또 몇 가지 문제만 해결하면 위기가 해소될 것처럼 흥분했었지만, 인문학은 당장 고사하지도 위기가 해결되지도 않았다. 지나간 논쟁의 끝에 서서 담론 속의 수사학을 읽어내는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을 것이다. 논의가 진정성을 가지지 못한 채, 수사학에 파묻혀서 우리의 눈을 가린 것은 없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히 인문학 위기론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국내 담론 자체가 가진 문제점도 반영됐기 때문이다.

인문학 위기론에서는 시장 경제와 관계 맺는 방식이 모색됐다. ‘인문학이 무슨 필요있느냐’는 시장 경제의 논리에 위축돼서 일까, 인문학이 정보 산업 시대의 콘텐츠가 돼야한다는 논의를 비롯해 실용적인 인문학으로의 전환을 절대 명제로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후 학자들은 ‘인문학의 시장성 획득’ 만큼 화려한 수사는 없다고 말을 한다. 인문학의 본성조차 잊은, 방향성 없는 대안이었다는 것이다. 안상헌 충북대 교수(철학)는 “당시의 인문학자들이 위기 진단에서는 본질적인 문제를 조금씩 건드렸지만, 현실적인 대안 제시에 있어서는 실패한 것 같다”라고 말한다. 즉 정부지원 확대, 인문 콘텐츠 등 인문학이 시장성을 획득해야 한다는 말만 무성했을 뿐, 그 내용을 채울 수 있는 구체적인 내용은 확립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변화도 내적인 역량이 있을 때 가능한 말인데, 내적 역량이 부족하니 피상적인 대안을 설정했지 구체적인 내용은 구상하지 못했다”라는 평가이다. 인문학 내부에 대한 성찰이 부족했으며, 이후 대규모의 정부 지원이 생겼지만 인문학 위기의 본질적인 측면은 해결하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장춘익 한림대 교수(철학)는 조금 다른 측면에 주목한다. “인문학 외부에서 위기의 원인을 찾는 것은 인문학·인문학자 내부가 가지고 있었던 본질적인 문제를 외면하게 했다”는 입장이다. 교묘한 은폐의 수사인 셈이다. 물론 인문학 내부 반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자생적인 담론을 펼치지 못하고, 이론의 수입상에 머물렀던 자기 반성과 더불어 탈식민지적 글쓰기, 표현 인문학 등 전환의 움직임도 보였다. 그러나 장 교수는 “대학 내에서 인문학이 매력적인 학문으로 자리잡을 수 없다면 더 이상 인문학이 설자리는 없다. 그런데 대학 내부에서 위상을 확립하기보다는 학문과 제도의 외부적인 요인에만 집중한 것이 아니었나”하는 의견을 비쳤다. 담론상의 갑론을박은 이어졌지만, 대학에서 인문학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가장 실질적인 문제는 손대지 않았다. 내적 성찰이 핵심을 찌르지는 못했다는 지적이다.

문화평론가 김성기씨는 “인문학 위기론은 때이른 논의였다”라고 말한다. 인문학 외부의 변화가 논의를 촉발하기는 했지만, 내부에서는 위기의식이 그다지 절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담론이 담론을 만들어 내고, 또 그 담론에 끼어들어야만 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는 학자들이 실천성을 담보하지 못했기에 소진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담론은 성찰 없이 비대해졌고, 학자들은 담론을 자신의 위치확인을 위한 기제로 사용했다는 정치성도 감지할 수 있다. 김 씨는 “인문학의 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내적인 필요성을 절감하는 시점에서 다시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이름을 밝히기 꺼리는 한 교수는 표현 인문학 등은 “원론적인 수준에 머문 논의들이었다”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인문학의 과제로 제시된 방향들은 그 필요성에서는 광범위한 합의를 이뤄냈지만, 논의는 그다지 생산적이지도 못했다는 평가이다. 더 이상 진전하지 못한 채 정체한 논의 속에서 실천하지 못하는 학계의 고질적인 병폐도 보인다.

높아진 자성 목소리, 아쉬운 내적 성찰

인문학 위기론이 담론에만 머물렀고 그렇기에 더더욱 수사로만 존재하는 이유는 구체적인 실천이 담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학자들의 중론이 모이는 듯 하다. 그리고 인문학이 고사 직전에 있음을 호들갑스럽게 주장했지만 그 속에서 정작 내적 성찰은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국 인문학 논쟁의 최고 수사는 ‘내적 성찰’이라는 동어반복은 아니었을까. “내적 성찰을 시도한다”는 구호는 수사로 남고, 이 속에서 실천되지 않는 공허한 몸짓만 반복됐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지영 기자 jiyou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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