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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文의 시대에 漢文으로 이룬 지적 성취의 가능성
國文의 시대에 漢文으로 이룬 지적 성취의 가능성
  • 교수신문
  • 승인 2015.06.30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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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모던한문학』 김진균 지음|학자원|350쪽|20,000원

위당과 산강 같은 한문 지식인들은 중세 한문학이 갖고 있던 보편적 속성을 계승해, 양심적 지식인의 자리를 모색했다. 한문학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보편적 문명을 상상할 수 있었고, 근대에 투항하지 않았기에 주체적 인간을 상상할 수 있었다.

중세 동아시아 지역의 지식인들은 한문을 통해 문학과 학문을 전개했다. 한문은 중세 동아시아 보편 문장 언어였던 것이다. 한자문명권의 일원으로서 중세 한반도의 지식인들도 동아시아 지역을 천하로 인식하며, 한문을 통해 문명을 이룩해갔다. 연암 박지원의 산문과 다산 정약용의 혁신론 및 추사 김정희의 미학 등은 한문으로 이룩해온 문명 전통을 딛고 오른 경지였다.
한반도의 근대는 한문이 청산되고 국문이 추구되던 시대였다. 전지구적으로 발호하는 제국주의 침탈은 한반도라고 해서 비켜가지 않았으며, 식민지화의 위기를 감지한 근대 한반도의 지식인들은 다급하게 근대적 민족 공동체를 구성해 급박한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고자 했다. 민족주의의 시대였던 것이다. 민족주의는 중세 보편 문장 언어인 한문을 타자화하고 근대적 국문체를 지향했다.


그러나 한문학이 근대를 맞닥뜨리면서 바로 소멸한 것은 아니다. 전통적 방식으로 전통적 문체를 통해 전통적 의식을 담는 경향으로 지속되기도 했고, 근대의 충격을 받아들여 근대 담론을 확산하기도 했으며, 한문학의 내적 갱신을 지향하는 경향으로 변화를 모색하기도 했다. 결국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전통 문명 출신의 인사들이 희소해질 때까지 한문학은 의미 있는 지속과 자기 갱신의 과정을 이어갔던 것이다.

그런데 근대계몽기에서 식민지시기를 거쳐 분단시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 형성된 한국학은 근대한문학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중세의 잔영이며 시대착오적 문학으로 근대한문학을 규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천하를 고민하던 양심적 중세 지식인의 자세를 계승하며, 식민지와 근대에 대한 문명적 성찰을 제기하던 지식인들이 있었다. 爲堂 鄭寅普(1893~?)와 山康 卞榮晩(1889~1954) 같은 한문지식인들은 중세 한문학이 갖고 있던 보편적 속성, 즉 천하에서 생성된 지식 일체를 자기 것으로 삼아 천하를 근심하며 천하에 바로 접속했던 士의 자세를 계승해, 양심적 지식인의 자리를 모색했다. 한문학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보편적 문명을 상상할 수 있었고, 근대에 투항하지 않았기에 주체적 인간을 상상할 수 있었다.

전근대의 유산으로부터
자연의 무늬인 天文과 마주하는 사람 무늬로서의 人文을 추구하며, 보편적 학문 태도를 지향했던 정인보와 변영만의 자세를 이제 다시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근대계몽기에서 식민지시기를 거쳐 군사정권을 지나오면서 동원되는 민족 혹은 국민의 자세를 끊임없이 강요받아왔다. 여기서 지식인도 민족 혹은 국민 대중 속에 숨어들어 통치자의 요구대로 동원되는 기능인이 돼왔다. 글을 읽고 사유하는 우리로서는,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자각하고 보편적 인간의 조건을 고민하던 근대한문학 지식인의 자세를 다시 돌아봐야 할 것이다. 정인보는 “방 하나 사람 한 몸이 비록 작고 미약하지만, 한 뼘에서 시작해 천하를 기름지게 하는 것이 진정성이다”라고 지식인의 역할을 강조했고, 변영만은 “간절한 정성이 골방에 쌓이면 저작이 해와 별처럼 빛난다”라고 지식인의 자세를 환기했다. 이들은 근대 문명의 폭력성에 신음하는 공동체를 고민하는 지식인으로서, 전근대의 유산으로부터 선한 문명의 계기를 찾아 더 선한 문명을 이루려는 모색을 지속했던 문제적 인물들이었다.


이 책을 통해 근대한문학을 소개하고 근대한문학을 통해 더 선한 문명을 이루려던 모색을 정리해보고 싶었다. 우선, 1장을 통해 국문학을 중심으로 한국학의 형성과 전개 과정을 정리했다. 한국학은 한반도의 근대화 방향과 일치되는 지향으로 전개돼 왔음을 확인했고, 그 과정에서 전근대의 한문학 유산은 배제됐다가 수용되는 곡절을 겪었지만 근대한문학은 시종 타자화의 대상일 뿐이었음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2장을 통해 근대한문학의 저변으로서 20세기 한문학의 전개 양상을 살폈다. 海鶴 李沂(1848~1909)의 경우 전근대시기 이단으로 지목받던 묵자에 주목하는 등 전통 문명의 변용 가능성을 타진했다. 실현되지 않았던 전통 문명의 계기를 찾아 근대 문명에 적응시키려는 경향으로 이해할 수 있다. 東山 柳寅植(1865~1925)의 경우 전통 문명의 부정적 속성을 강조하며 근대 문명으로 한문학의 내면을 확충하려는 지향을 보였다. 근대화 과정에서 무력해진 유림 사회의 내부 반성을 통해 근대 문명 아래에서 생존을 도모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深齋 曺兢燮(1873~1933)의 경우 근대 문명의 폭력성을 고발하며 전통 문명의 지속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지향을 보였다. 보통의 퇴수주의적 한학자와 달리, 근대를 외면하지 않고 정면 대결하려는 전통 문명 근본주의로 이해했다. 이밖에 임꺽정의 작가이며 사회주의자였던 碧初 洪命憙(1888~1968)의 한시 창작 양상을 정리해 식민지시기 한시 관습의 지속 면모를 확인했고, 權丙勳(1864∼1941)의 『六書尋源』을 통해 동아시아 전통 문명에 대한 문명적 상상력을 발휘한 이 한자학의 집대성이 근대한문학의 저력과 상통함을 확인했다.


3장에서 위당 정인보와 변영만의 문학적 성취를 살펴봤다. 이들을 근대한문학의 진면목이라고 여기고 근대한문학의 정점이라고 표현했다. 정인보는 ‘조선학’이라는 초기 한국학 운동의 중심인물이었다. 그가 구사한 ‘依實求獨(실질에 기반해 독자성을 추구한다)’이라는 용어는 전근대 양심적 지식인의 계보를 구상하며 산출된 개념이다. 정인보는 천지 만물을 사유하는 보편적 주체로서 양심적 지식인의 계보를 구상하고, 양심적 지식인의 보편적 사유는 공동체의 고통을 함께하며 성장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인보의 ‘조선학’으로부터 한국학의 중심 연구 테마인 ‘실학’이 발견된 것인데, ‘실학’ 연구 과정에서 정인보의 보편적 주체로부터 이탈돼 온 한국학의 흐름도 정리해보았다.

학문의 위기, 지식인의 위기, 공동체의 위기
변영만은 동서고금의 회통을 실천하며 다방면으로 활동한 지식인이기도 했는데, 한문학에 근대적 문예 개념을 포섭해 한문학의 내적 갱신을 도모했다. 그는 ‘自得’의 가치를 강조하며 학문과 문예에서 개성적 주체를 추구할 것을 주장했다. 그런데 개성적 주체 역시 공동체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지식인의 내면에서 공동체와 연결되는 맥락을 발견해야 도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인식했다. 그리하여 타고르와 같이 식민지 동족을 외면하고 제국에 아부하는 자세를 철저히 비판했다. 타고르의 노벨상 수상에 환호하던 근대 문학계의 행보와 근본적으로 다른 자세를 보였던 것이다. 노동빈민 여성의 비극을 다룬 변영만의 한문산문을 분석해 이 자세를 부연해보았다.


한반도의 근대화 과정에서 민족적 위기를 타개하려는 모색 속에서 태동한 한국학은, 20세기를 관통해오면서 이러저러한 굴절을 겪었다. 공동체의 고통을 함께 하려는 에너지는 그 과정에서 분산 소진됐고, 이제 기능적 전문성이 그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학문의 위기이고 지식인의 위기이며 공동체의 위기이다. 위기를 마주하고 문명을 맞대면하며 지식인의 책무를 방기하지 않던 근대한문학의 진면목으로부터, 현실을 돌파할 수 있는 또 다른 계기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함께 고민해주시기를 바란다.



김진균 성균관대 인문학연구원 학술연구교수
국학·근대·문학 언저리를 공부하며 정곡은 파고들지 못하는 비정규직 인문학자. 『식민지시기 한시자료집』(공저) 『한문학과 근대 전환기』 등의 저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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