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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질서의 연속성 개념 모색
동아시아 질서의 연속성 개념 모색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06.29 1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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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냉전학회 창립 기념 학술대회 ‘냉전과 동아시아 분단체제’

6월 25일은 한반도 비극의 정점이다. 세계사적으로 냉전구조가 한반도를 관통한 시간대이기도 하다. 이 문제를 놓고 국내 학자들이 해외의 연구자들과 머리를 맞대면서 논의를 확대할 셈법으로 한국냉전학회를 탄생시켰다. 지난 25일 성균관대 600주년기념관에서 개최된 한국냉전학회 창립기념학술대회의 의미는 여기에 있다. ‘냉전과 동아시아 분단체제’라는 주제를 내건 것도 ‘창립’ 의미에 걸맞은 선택이었다.
학회 창립준비위원장을 지낸 정근식 한국냉전학회 회장은 창립 취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최근 냉전사 연구는 냉전연구의 서구중심주의를 비판하는 동시에 강대국과 제3세계 국가의 관계를 강조한다. 서구에서 냉전이 ‘긴 평화’로 불리는 반면 제3세계에서는 동서냉전과 탈식민(남북대립)이 겹쳐지면서 열전, 내전 및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분단’은 냉전의 원인이자 결과이며 또한 부단한 과정으로서 여전히 해당 지역의 정치, 경제, 군사 영역은 물론 일상의 삶 깊숙이 내재화돼 있다.


미소중심의 냉전사를 보편적인 것으로 본다면 한반도를 비롯한 제3세계의 냉전사는 분명 ‘예외’적이다. 하지만 냉전의 세계적 위계구조를 고려한다면 그 ‘예외’야말로 냉전의 ‘규칙’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규칙’을 드러내는 ‘예외’로서 동아시아 지역의 냉전사, 특히 그 다양한 층위의 ‘분단’을 재해석하는 작업이 긴요한 까닭이다. 그런 점에서 광복 70주년, 분단 70주년에 한국냉전학회가 창립됨은 뜻깊다. 이번 학술회의는 이를 기념하며 우선 동아시아 각 지역에 편재하는 ‘분단’의 현장들을 돌아보고 이를 지구적 냉전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방법론을 탐색코자 한다.”
이날 학술대회는 모두 4부로 진행됐다. 제1부 개회식에 이어, 제2부 동아시아 분단의 풍경들, 제3부 냉전과 동아시아 분단의 구조, 제4부 한국냉전학회 창립총회로 이어졌다. 제2부와 3부가 논의의 핵심인 셈이다. 2부는 발표 논문에서 알 수 있듯, ‘풍경’의 사회정치학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전공 분야에서 교차 논의가 진행된 자리였다. 이렇게 보면 학회창립의 어떤 지향점을 읽어낼 수 있는 곳은 제3부 ‘냉전과 동아시아 분단의 구조’라고 할 수 있다. 학술대회 전체 주제와도 일치한다.


그러나 2부의 접근도 독특했는데, 이는 한반도에 국한하지 않고 냉전의 열대를 동아시아로 확대해낸 점에서 그렇다. 국문학 연구자인 황호덕(성균관대)은 「한국문학비평이론의 냉전적 양상: 신비평에서 문학사회학까지」를 통해 백철의 ‘신비평’에 얽힌 자유민주주의 전파 문제를 짚어냈다. 중국통인 임우경(성균관대)은 「흔들리는 분단의 사상지리: 중국인민지원군 ‘친공포로’의 체험을 중심으로」를 통해 한국전쟁에 참여한 중국인민지원군의 내면풍경을 짚어내 분단 구조의 지평을 확장했다. 이외에도 2부 논의는 이병한(연세대)의 「밖에서 본 ‘동아시아 분단체제’: 몽골과 라오스를 매개로」, 심주형(전남대)의 「사회주의적 우애의 물신성: 1979년 베트남과 중국의 전쟁을 중심으로」 등으로 이어졌다.
이날 학술대회의 정점은 이삼성(한림대)의 「동아시아 대분단체제: 전후 동아시아질서의 개념적 재구성과 ‘냉전’」이다. 이 교수의 발제에 구갑우(북한대학원대학), 백승욱(중앙대), 한성훈(연세대), 후지이 다케시(성균관대) 교수 등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이 교수의 발표는 몇 가지 점에서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먼저, 한반도 평화 문제를 천착해온 정치학자의 내공이 엿보인다는 점. 그는 2009년 大作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를 출간하면서, 전후 동아시아 질서에 대한 전체적 개념화 작업의 일단을 드러낸 바 있다. 그가 보기에 20세기 전반기의 제국체제가 전후 질서에서 유럽과는 다르게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에 깊은 유산을 남겼기 때문에, 그 연속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 그가 제안한 ‘대분단체제’라는 용어의 중요성. 그는 2000년대 중엽 이래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에 관한 글들을 발표해왔다.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란 전후 동아시아질서의 본질과 밀접한 것으로 “그 본질은 미소 냉전 자체가 아니라, 중국대륙과 미일동맹 사이의 대분단 기축의 대립을 골격으로 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것은 “미소 냉전과 구분되는, 전후 동아시아 질서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들에 대한 보다 ‘포괄적인(혹은 총체적인)’ 인식을 담아내는 동시에 전후 유럽질서와 구분되는 ‘동아시아-구체적인 고유성’에 주목하기 위해 제시한 개념으로서의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는 일정한 변화 함께 연속성’을 드러낸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세계화와 경제통합에 의한 경제적 상호의존 시대에도 지속되는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역사적 연속성의 구조와 실체”를 개념화하는 작업을 요청한다.
한국냉전학회가 최전선에 서서 겨누고 있는 지적 작업이 어떤 모습으로 학계에 뿌리내릴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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