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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생 만학도의 인문학수업論
50년대생 만학도의 인문학수업論
  • 배도임 이화여대 박사후과정·중국문화연구소
  • 승인 2015.06.29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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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배도임 이화여대 박사후과정·중국문화연구소

요즘은 핸드폰에서 귀찮을 정도로 ‘카톡!’소리를 낸다. 며칠 전 누군가, 이 카톡에서 돌려본다는 ‘세대별 행복론’이란 메시지를 보냈다. 가장 행복한 사람에 관한 얘긴데, 10대는 공부 잘하는 사람, 20대는 좋은 대학 다니는 사람, 30대는 좋은 직장 다니는 사람, 40대는 자기 집에 사는 사람, 50대는 자식이 좋은 대학을 다니는 사람, 60대는 출근할 직장이 있는 사람, 70대는 건강한 사람, 80대는 본처가 해주는 밥을 먹는 사람, 90대는 말벗이 있는 사람, 100세는 아침마다 눈을 뜨는 사람이란다. 한국 사회의 세대별 이슈를 어쩜 그렇게 꼭 집어냈는지, 이런 우스갯소리를 읽다가 나도 모르게 나의 삶을 뒤돌아보게 된다.

나는 즐겁고 행복하다. 대한민국 사람이라서, 인문학을 해서, 또 낭만이니 욕망이니 역사니 이데올로기니,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것, 내가 아는 것들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어서, 소설을 읽고 논문을 써서 한국연구재단의 학문후속세대지원사업에 떡하니 선정돼서…. 아, 그리고 한날 어느 학생이 “교수님처럼 잘 웃는 교수님은 처음 봤어요!”하고 시도때도 없이 웃는 나의 웃음에 화답해줘서. 내가 행복한 이유는 참으로 많다.

인터넷 자료를 뒤적이다 ‘50년대생’에 대한 짧은 멘트를 봤다. “가난에 찌들어 있다가 박정희 대통령 주도의 엄청난 경제성장을 직접 목격했고, 열심히 일만 한 세대. 대한민국이 경제대국이 되도록 만든 실질적인 최고의 공로자다.”(말투가 좀 거슬려서 순화시켰다)

나는 50년대생, 만학도다. 친구들은 번듯한 직장에 들어갈 때 나는 미역국을 참 많이 먹었다. 내 인생의 전환점은 90년대 IMF사태 때였다. 30대 후반에 직장을 잃고 시련도 겪었다. 한국방송통신대에 다니면서 좀 무식하게(?) 공부에 빠져들었던 것은 아마도 괴로움과 무료함을 잊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때 중국작가 다이허우잉의 『사람아 아, 사람아!』를 읽는 순간의 전율이 나를 중국 현대문학의 숲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런 나를 요즘은 친구들이 ‘가난한 교수님’이라 부른다. 그건 50대 나이에도 문학을 하는 나를 부러워 하는 반면, 수입이 많지 않은 데 대한 안타까움을 뒤섞은 표현인 줄 안다.

남들이 아무리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고, 대학이 구조조정을 한다는 통에 인문학 수업이 갈수록 설자리가 없어진다고 하더라도, 나는 친구들에게, 학생들에게 지구상에 인간이 존재하는 한 문학예술은 영원할 것이라고 큰소리친다. 문학예술은 심금을 울리는 것이다,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마음을 아름답게 만든다, 세상을 사랑하게 만든다, 하루하루의 삶을 즐겁고 행복하게 만든다면서.

일요일 아침이다. 나는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라디오에서 어느 목사님이 ‘솔로몬의 지혜’를 갖고 하는 설교를 들었다. 한 아기를 놓고 자신의 아기임을 주장하는 두 어머니 가운데 친어머니를 찾아낼 수 있었던 솔로몬의 판결은 생명을 사랑하느냐, 소유물로 보느냐에 있었다.

어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한국사람 가운데 ‘멜랑콜리아형 우울증’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자살공화국’이고 자살률이 세계 최고이고 날로 증가하는 것이라고. 이제는 혼자 자살하는 것이 아니라 세 모녀, 세 자매 자살처럼 집단적으로 자살한다.

우리는 인문학의 힘을 경시하고 있지는 않을까.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대학은 취업준비학원이 됐고, 높은 취업률이 대학수준을 평가한다. 취업시장의 3대 약자를 일컫는 지방대·여성·인문계라는 뜻의 ‘지여인’, 인문계 졸업생 90%는 졸업 후 논다는 의미의 ‘인구론’ 등 신조어가 생겨난 요즘, 나의 인문학 수업을 수강하는 학생들이 취업의 문턱에서 좌절해 절망할 때, 나는 나의 제자들에게 그저 노력하라고, 하면 된다고, 희망을 가지라고 말할뿐 더 할 말이 없으면서도.


배도임 이화여대 박사후과정·중국문화연구소
한국외대에서 「李銳小說硏究」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번역서로 『한밤의 가수』, 『장마딩의 여덟째 날』, 『바람 없는 나무』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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