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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이 시대의 선비론
특별기고 : 이 시대의 선비론
  • 교수신문
  • 승인 2002.11.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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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1-27 23:04:49


윤사순
고려대 명예교수·철학

사람들은 오늘날 대체로 유교 같은 전통사상을 이제 쓸모 없는 낡은 유물처럼 여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도 ‘선비’를 찾아 볼 수 없다고 아쉬워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왜 그럴까.
선비가 원래 유교의 이상적 인간상의 하나임은 물론이다. 하지만 유교에서도 ‘성인’, ‘군자’처럼 강조되는 위상에 있지는 않았다. 북학의 기치로 유교 안에서 사상적 전환을 꾀했던 박지원만 해도 선비를 ‘독서인’ 정도로 인식했다. 그의 눈에 비친 선비는 독서에 의해 양반의 행세를 하거나, ‘士大夫’라는 연용어에서 드러나듯이, 한낱 관리를 지향하던 ‘지식인’의 특성만 짙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자가 그린 선비상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는 선비를 “도에 뜻을 둔 사람”이라 하였다. 선비 중에도 뜻이 곧고 굳은 이를 공자는 ‘志士’라 일컬으면서, 그의 핵심사상인 ‘인간애’[愛人]를 실천하는 인간상인 ‘仁人’과 병칭했다. 그런 정도로 그는 지사의 위상을 높은 자리에 놓았다.
그 이유는 바로 지사의 행동이 일반인의 행동과 반대인 데에 있었다. 즉 일반인이 이기적인 나머지 남을 해치는 행태를 보이는데 반해, 지사는 오히려 이타적인 태도로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인간애를 구현하기 때문이다.
맹자는 공자의 선비관을 일단 계승하면서, 지사를 인인과 변별하는 해석을 내렸다. 그는 선비가 높이는 뜻[志]의 내용을 ‘인과 의[義]’로 풀었던 것이다. 이것은 인간애를 바탕으로 이타적인 행위를 하되, 옳은 성향의 행위만을 위해 희생해야 함을 의미한다. 역사에서 발견되는 ‘의사’, ‘열사’, ‘학사’의 규정이 이 해석을 따른 용례이다.
하지만 이타의 경우에는 층차가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 그것은 한 개인에게 양보하는 것도 해당되고, 가정이나 집단을 위한 것도 해당된다. 그러나 그 정도는 선비의 이타 범위에 충분치 않다. 인류 범위로 확대된 공공의 입장에서, 인간을 위하여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는 정도라야 충분하다.
이 정도로 인간애를 실천하는 것이 공자가 인사상으로 도모한 ‘최고의 이상사회’를 이루는 길이라는 데 그 이유가 있다. 유교에서는 그러한 최고의 이상사회를 ‘大同社會’라고 한다. 그것은 온 세계를 公의 기준으로 삼아, 화목하고 윤리와 복지시설이 충족된 사회다. 지사는 궁극적으로 이런 사회를 이루려는 정신으로 충만된 인간이다. 참다운 ‘선비정신’은 원천적으로 이런 사고의 역정을 거친 끝에 이루어진 것이다.
선비를 언급하는 경우, 우리는 단재 신채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독립투쟁을 위해 민족주의와 심지어 무정부주의까지 택하였던 그는 선비를 우리 ‘고유의 인간형’으로 생각했다. 그에 따르면, 선비란 단군교(수두교, 선교)의 신도들인 ‘선배’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그는 신라의 ‘국선’인 ‘화랑’을 그 고유한 선비의 전형적 인간상으로 꼽았다. 그의 이런 견해는 ‘구국’을 위해 자기 희생에 주저치 않는 인물을 고대하던 그 시기의 상황으로 헤서, 선비에 대한 인상을 한층 새롭게 하였다.
굳이 신채호의 견해를 따르지 않더라도, 우리 역사에서 선비가 높임을 받게된 데에는 두 가지 역사적 계기가 있었다. 그 하나는 조광조 등 ‘사림파 학자 관리’들이 양심을 바탕으로 위민·민본의 이상정치를 실현하려다가 사화의 제단에 목숨을 바친 봉공의 정신을 보인 것이다.
또 하나는 임진왜란 을사늑약 같은 외적의 침략을 받았을 때 궐기한 의병의 투쟁정신이다. 초야에 묻혀있던 유명 무명의 학자들이 연령의 고하를 불구하고 붓 대신 무기를 들었을 때, 그들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이미 관군에 대한 것을 능가했다. 그들이 의병대장으로 왜적과 치열한 전투를 치른 끝에 장렬히 전사하는 모습을 보인 뒤로 선비는 실로 높임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일찍이 사림파 학자들은 선비를 ‘나라의 으뜸 되는 기운’[士國之元氣]이라고 하여 오던 통념에 따라 선비 역할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했다. 선비의 의병활동은 멀리는 원초유학에서부터 가르쳐 온 지사 정신의 시대적 구현이지만, 가까이는 사림파 학자들이 심은 선비의식의 순기능적 구현이었다.
이러한 사실들을 앞세우면, 크게는 의병활동을 한 인물을 비롯해, 작게는 공과 사의 엄격한 분별의식으로 공무에 임한 ‘청백리’나, 아예 명리나 부귀를 초탈한 인생관을 지니고 학처럼 고고한 삶으로 일관한 ‘처사’들은 모두 선비의 긍정적 측면을 보인 대표적인 인물들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지식’을 한낱 이기적 욕망충족의 간교·교활한 수단으로 삼지 않고, 오히려 지식을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방향으로 ‘신념화’하여 ‘지조’ 있는 태도로 공인답게 ‘행동화’한 지성인이라는 점에서 그렇다고 하게 된다.
지식과 양심과 신념과 지조 및 공인다운 행위야말로 선비를 선비답게 하는 기본 요건이다. 유교를 낡은 사상으로 여기는 사람들마저 오늘날 선비를 찾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은 선비의 이러한 기본 요건들을 보편적·긍정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또한 오늘의 지도층 특히 정치인들이 특별한 지식도 없는 터에, 직업 윤리에 해당하는 양심도 신념도 지조도, 공인다운 행위마저 전혀 찾아지지 않는 현상에서 오는 실망감의 반영이라고도 판단된다. 오늘의 정치인들을 가리켜 그 누가 ‘나라의 으뜸 되는 기운’이라고 하겠는가! 그들 자신조차 스스로 이런 의미의 선비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 과연 하나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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