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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날의 遺憾
지나간 날의 遺憾
  • 이동춘 동아대 명예교수·인간공학
  • 승인 2015.06.29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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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시평] 이동춘 동아대 명예교수·인간공학

"정년이 다가 올수록 정년 제도는 참 좋은 것이라 생각된다. 법정 정년이 없다면 내 자신도 가없는 노욕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 이동춘 동아대 명예교수
白髮三千丈으로 시작되는 反理含情적 시 표현으로 더욱 유명해진 이백의 歎老詩 秋浦歌제15수에서는, 귀양 길에서 풀려나 추포에 와서 거울을 보니, 긴 세월 그간의 근심에 백발이 삼천장이라, 거울에 비친 노쇠한 자기 모습이 누구인지 잘 몰라보겠다고 했다. 이백 만큼은 아니지만 나 역시 신임 교수 시절과 퇴임 무렵의 나를 비교해 보면 무상한 세월 속에 많이도 풍화 작용된 외모는 차치하고, 내면세계도 크게 닳았음을 볼 수 있었다.

우선 기억력이 현격하게 감퇴됐음을 자주 느낀다. 신임 교수 적에는 한두 번 출석을 부르고 나면 80여명의 수강생도 출석부 없이 확인 가능했었는데, 퇴임 무렵에는 20명 앉혀 놓고도 5명의 이름을 기억하기 어려웠다. 아니, 아예 기억하려고 노력도 하지 않는다. 근 40년 간, 강의 자료와 강의 노트, 다양한 강의 매체에 의존하다 보니 그렇게 내 자신이 변했다.

또 젊은 날의 메마르지 않던 감성은 어디로 가고 매사를 논리적으로 분석하려고만 하며, 합리성·경제성으로 따져 세상사를 자리매김하는 습성이 몸에 배었다. “우리 전공의 의사결정 기준은 합리성과 경제성에 있지만, 그렇다고 거기에만 머무르면 거시적 안목을 저버릴 수 있으니 그 점을 경계해야 한다”라고 강의 때마다 강조해 놓고서는 어언 나도 그렇게 돼버린 것이다.

타협할 줄 모르던 곧음은, 지금은 많이도 굴곡돼 웬만한 것은 보아 넘기고 경우에 따라서는 불의를 보고도 외면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굳이 변명하자면 젊을 때 생각했던 곧음이 꼭 부동의 올곧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할까. 孟子의 枉尺而直尋(한 자를 굽혀 여덟 자를 곧게 함)과 枉尋直尺而利(여덟 자를 굽혀 한 자를 곧게 함)의 뜻을 알아차리게 됐다고 할까. 신임 교수 때 시험부정행위자를 붙들어 4명이나 퇴학 처분 시켰다. 학생의 장래를 봐서 정학처분 정도로 하면 안 되겠느냐며 안쓰러워하던 학장님께, 학생을 택하든지 나를 택하든지 하라고 우겼던 당돌함이 아찔하다. 뿐만 아니라 원숙한 나이가 되고서도 업무 수행상의 의견 차이로 대학의 최고 어른께 무례를 저질렀던 미숙함이 미안하고도 부끄럽다. 이 세상에 절대선이라는 건 없다는 것을 왜 그 순간에는 잊었을까.

매 학기 부지런히 교안을 수정 보완했지만, 마지막 학기에 발견한 몇 군데의 오류는 지나간 강의에 대한 강한 책임감을 느꼈다.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언제 어떻게 수정 설명해 줄 수 있으랴. 또 하루같이 새로 개발돼 나오는 새로운 디지털 기기를 생소하게 접하면서 몇 번이나 사용법 설명을 들어도 쉽게 익혀지지 않는 나는, 디지털 시대에 완전히 잠입하지 못하고 한 쪽 발만 살짝 담근 아날로그 세대임을 부인할 수가 없었다.

퇴임하기 전, 적잖은 흠결이 있는 지나온 날들을 회상하며 『敎授職을 마감하며-흔적』이란 책 아닌 책을 묶었다. 그 속에는 말없이 어물쩍 덮어두었던 구차한 개인 신상과 나의 빈약함을 가감없이 밝히면서, 용서를 구하고 감사를 드리는 내 진심을 많이 묻어 놓았다. 편집후기엔 “정년이 다가 올수록 정년 제도는 참 좋은 것이라 생각된다. 가령 법정 정년이 없다면 내 자신도 가없는 노욕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가 있을까?”라고 썼다. 그리고 그 파일을 중심으로 학과교수와 학생들에게 고별인사를 했다.

지나간 날의 유감을 고해하고 나니 얼마나 내 마음이 개운했고 감사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러운 고백을 했던가 하고 부끄러워할지도 모르겠다”던 윤동주 시인의 말처럼, 나도 또 한 번의 부끄러워 할 짓을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동춘 동아대 명예교수·인간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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